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복희
ㆍ작성일	2020-12-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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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위해 사는 인생

오늘은 새벽 일찍 산책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내 인생은 걷기 위하여 사는 인생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지리산 등산로에서 제일 험하다는 피아골 계곡을 새벽 일찍 마나님과 함께 천안에서부터 손수 차를 운전하여 8시간이나 산행을 하고 왔으니 늦잠도 잘 만하건만 매일 아침 2시간씩 걷는 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새벽 5시에 산책을 나섰으니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했다.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지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는데 딱히 할 일도 없어 취미 생활로 농작물 가꾸기를 한다고 하고 있으나 그것이 내가 사는 이유가 될 수 없었다. 퇴직을 하기 2년 전부터 노후 생활을 위하여 골프를 배운다고 하였으나 그도 6~7년 하다 보니 그리 즐거운 생활이 되지를 못했고 건강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작년 12월부터 접어 버렸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친구들과 “살기 위해 먹는 거냐? 먹기 위해 사는 거냐?”이라는 논쟁을 하면서 말다툼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60년이 지난 지금도 뚜렷한 답을 얻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중학교 시절에는 위대한 과학자가 되겠다고 떠벌리며 과학자가 되려면 고등학교를 공업계를 가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될 수 있도록 문예인 이 되겠다고 글을 쓴다며 까불다가 가난에 학교를 그만두고 일꾼으로 변하여 집에서 죽도록 일을 한 적도 있었다.

그때, 어린 나이에 봄부터 가을까지는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거들고 겨울에는 도시락 하나 싸서 고개를 두 개씩이나 넘어 몇십 리나 되는 곳에 가서 나무를 해 나르는 나무꾼이 되기도 했다. 그때 깨달은 것이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어 다시 고등학교에 재입학을 했다. 다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생각한 것이 ‘왜 우리나라는 이리도 못사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때 내가 생각한 것은 우리가 못사는 이유는 위정자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정치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내 마음에 자리 잡을 때 사회과 수업 시간에 그 당시 아시아에서 제일 유명했던 정치인인 필리핀의 3대 대통령을 하다 암살당했던 ‘라몬 막사이사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라몬 막사이사이’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조금 철이 드니 나를 깨닫게 된 것이다. 내 현실과 능력에 맞는 직업이 무엇인가? 나도 살고 가족도 먹여 살려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생각지도 못 해 봤던 교직에 들어와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또래들보다 5~6년이나 늦게 교직에 들어왔는데도 교감도 하고 교장도 하면서 내 소신껏 학교를 경영하면서 ‘학생과 교사가 중심이 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하여 가는 학교마다 새로운 바람도 일으켜도 봤다.

이렇게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남보다 열심히 살아온 인생인데 막상 정년퇴직하고 나니 공허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런 공허함을 이겨내고자 시작한 것이 ‘밭 가꾸기’ 였다. 밭에다 컨테이너 하나와 조그마한 비닐하우스를 하나 만들고 놓았다. 그리고 삽 한 자루로 600여 평의 땅을 일구며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재배한 작물은 논에서 나는 벼 재배만 빼고 밭에서 재배하는 작물은 거의 다 재배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재배를 했다. 즉 일은 봄에 심는 완두콩부터 시작하여 11월에 수확하는 서리태까지 30여 가지가 넘는 작물을 재배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거의 1년간 작물을 심고 수확했다. 농기구도 없고 시간을 보내기 위한 농법이니 생산물에 대하여 신경을 쓰는 것도 아니고 잉여 농산물이 있으면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라인 현관에 가져다 놓고 드실 분은 가져다 드시라고 종이에다 ‘이 농작물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농산물이니 필요하신 분은 필요한 만큼 가져다 드시기 바람’이라고 적어 놓으면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게 없어지는데 흐뭇함을 느끼기도 하고, 어쩌다 마나님이 몇 푼 받고 아는 분에게 팔아오면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 생활을 한 지 3년 차 문제가 생겼다. 평소 해보지도 않은 일에 열중하다 보니 몸에 이상이 온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허리가 뜨끔하며 밭에 주저앉게 된 것이다. 병원을 찾아가 진찰해 본 결과 평소 척추 협착증이 있는 데다 디스크 파열이 나타났단다. 나는 디스크 파열이란 말에 놀라 의사가 당장 수술을 권하는데 수술은 피하고 그 즉시 시술을 받았다. 참 신기한 것은 시술을 받고 나자 아프던 허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사후 관리를 잘못했나 시술 후 3일 정도 지난 후 약간의 통증이 있어 병원에 가서 여자 의사로부터 척추에 주사를 맞았는데 주사 맞는 순간 신경을 잘못 건들었나 통증이 심하게 나타나더니 그날로부터 척추가 오른쪽으로 구부러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 후 시술받은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와 허리 교정 치료를 받아보았으나 효과가 없는 것 같아 유명하다는 한의원이나 척추교정센터 등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이때 한의원에서 침으로 허리를 잡아주면 고집 불통이가 시술해 준 의사가 운동해도 괜찮다고 말했다고 골프와 헬스 운동을 열심히 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을 뒤늦게서 깨달았다. 그래서 결국 시술 후 8개월 만에 다시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을 받은 후 문진하는 의사에게 내가 다시 척추 수술을 받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냐고 물어보자 의사는 하루 1만 보 걷기를 권장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은 다음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부터 다시는 내 허리가 옆으로 구부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걷기 시작한 지가 3년이 다 되었지만, 그동안 일만 보를 걷지 못한 날은 5일도 안 될 정도로 열심히 걸었다. 심지어 해외여행을 가서도 새벽에 걷기를 했으며 호찌민에 사는 딸 내 집에 가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만 보 이상 걷기를 실천했다.

나는 원래 시골에서 태어났으며 내가 다닌 초등학교와 중등학교가 집에서 2km 이상 떨어져 있었으며 더구나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꼴머슴도 하고 겨울에는 나무꾼 노릇도 했으니 걷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초·중학교 시절에는 동생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제출해야 했던 호적초본을 20km나 떨어진 고향의 면사무소에 가서 떼어다 주던 실력이었으니 걷는 것은 달인은 못되지만, 누구에게 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을 가겠다고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걷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었으며 그 후 학교에서 선생으로 평생을 살아왔으니 걷는 것을 다 잊혀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다 정년이 되어 퇴직하고 나니 비리비리한 갈비 시가 되어, 곡괭이질 한 번 하면 쉬어야 하고 삽질 한 번 하고 나면 허리를 펴야 하는 애송이 농부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고집은 있어 내 인내력을 테스트해 보겠다고 어렸을 때 부모님들이 지으시던 농사일을 어깨너머로 보아둔 실력으로 야채는 물론 콩과 깨 및 수수 농사를 지어 도리깨질하면서 사는 내 인생이 신기도 하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지만 결국 쓰러지고 만 것이다. 내가 쓰러진 것은 지난가을에 새로운 흙을 받아 복토한 밭에 거름을 내기 위하여 손수레를 60여 차례나 밀고 다녔다. 그런데 거의 마지막쯤 되었는데 거름을 손수레에 퍼 올리다 ‘아이코’ 하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나 주저앉아 있다가 통증이 조금 가신 후 일어나 쉬었다 집사람의 도움으로 병원을 찾아갔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하루 만 보 걷기를 생활화하면서 만 1년이 지나자 허리에 힘이 생겨 농사일은 말할 것도 없고 등산을 하는데도 50~60대 때보다도 힘을 들이지 않고 산행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걷는 것이 재미가 나 올해부터는 매일 걷는 걸음 숫자를 책상 달력에 기록하고 토요일이면 1주일 동안 걸은 걸음 숫자를 기록하고 다시 월말과 연말에 통계를 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새벽이든 낮이든 하루에 2시간 이상은 꼭 걷는 사람이 된 것이다.

퇴직 후 내가 왜 사는가?
더 살 가치가 있는가?

그저 밥만 치우는 노년의 인생이 인생인가? 하는 의문을 종종 같게 되는데 이런 생각을 하던 중 문득 내가 지금 사는 이유는 걷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아이들도 다 성장하여 분가해 나갔으며 직장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쫓겨났으며 지금 하는 일이라고는 늙어가는 두 늙은이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사는 것이 인간이 사는 의미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와중에 매일 쉬지 않고 걷기에 몰두하다 보니 내가 사는 이유가 ‘걷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오로지 걷기만을 위하여 사는 느낌을 받게 된 모양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걷기만을 위하여 사는 인생도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죽는 그 날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하여 걷기만 하는 노년의 인생 목표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며 앞으로 내 인생 목표는 죽는 그 순간까지 걷는 것으로 정하자는 생각을 가지며 웃어 본다.

걷는 것도 팔자인가?

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