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복희
ㆍ작성일	2021-01-17 13:00

ㆍIP: 222.xxx.26

미완성 1

6월 하지가 지난 지 얼마 안 되는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날 시골 중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하나가 머리에 손을 올리고 뒤뚱거리며 오리걸음을 걷고 있다. 학생의 등에는 땀이 배어 젖었다 말랐다 하며 멈춤이 없이 끊임없이 150m 정도가 되는 나인을 따라 10바퀴 20바퀴 30바퀴 40바퀴가 넘도록 돌고 있다. 나는 학생 뒤에서 뒷짐을 끼고 따라서 돌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학생들도 다 귀가하고 선생님들도 ‘수고하시라’고 인사하고 다들 퇴근한 지가 쾌 되었다.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학생 몇이 나무 그늘 밑에서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사건은 1988년 6월 25일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 나는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과 갈등을 빚고 있었으며 교감 선생님은 정년을 눈앞에 둔 분으로 나에게 중학교 때 사회를 가르치셨던 은사님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지난해 9월에 오셨는데 11월에 학생 생활지도 문제로 나와 의견 대립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과 처음 부닥친 것은 그분이 우리 학교 부임 후 3일 차에 일어났다. 교장 선생님이 부임하여 환영회를 해 주기 위해서 전 직원이 시내에 나와 환영식을 해 줬다. 우리 학교는 중소도시 주변에 있는 면 단위 학교로 시내에서 12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교장과 교감 선생님은 다 학교 주변에서 하숙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시내에 거주하면서 시내버스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환영회가 끝나고 교장과 교감이 택시를 타고 하숙집으로 가는데 그 길목에 내가 사는 집이 있어 나도 같이 택시를 타게 되었다. 택시 안에서 교장 선생님은 갑자기
“김 과장은 우리 학교에 몇 년 남았어요.”
“예 1년 남았는데 내년에 내신을 내려고 합니다.”
“그래요. 내신을 어디로 내려고요”
“집이 금산이라 대전으로 내려고 합니다.”
“나랑 내년에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
“큰아들인데 부모님들이 연세가 드셔 집 가까이 가서 모시려고요.” 그러면서 집이 가까워져 나는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그다음 날 2교시 때 수업이 없어 교무실에 일을 보고 있는데 교감 선생님이 교장실에서 찾는다고 하여 교장실에 들어갔더니 소파에 앉으라고 권한 다음 직원 명부를 탁상 위에 꺼내 놓으며
“내년에 갈 사람을 이야기해 보세요.” 한다. 나는 남의 인사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하기가 껄끄러워 멈칫거리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은 몇몇 과장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 사람은 떠납니까?” 하고 물어 아는 대로 답해 드렸다. 교무과장은 지역 만기라 꼭 떠나야 하고 연구과장과 3학년 과장은 온 지 2년 차라 아직 3년이 남았습니다. 했더니 손 고락으로 내 이름을 가르치며
“이 사람은 가는 겁니까? 안 가는 겁니까?” 하고 묻는다.
“교장 선생님 저는 가야 합니다. 큰아들인데 부모님 곁에서 떠나 온 지가 20년이 넘었습니다.” 했더니 좋지 않은 표정을 짓고 퉁명스럽게
“나가보세요.” 했다.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엊그제 온 교장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기에 가지 말라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나는 지난봄에 대전으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는데 전임 교장이
“김 과장은 나와 같이 살아.” 하면서 내신서를 써주지 않아서 이 학교에 붙잡혀 있는 꼴이 되었다. 그런데 교장은 9월 1일부로 시내에 있는 가장 큰 중학교로 이동을 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 교장 선생님은 내가 미워서 그런지 일을 못 해서 그런지 사사건건 학생과를 지적했다. 내용은 청소를 학생과에서 담당하고 있었는데 분리수거를 못 한다고 계속 나무랐다. 알고 보니 이분은 일본에 파견되어 4년이나 살다 온 사람으로 일본에서 분리수거가 몸이 배어 있었는데 그때 우리나라는 분리수거에 대해서 전연 알지 못하고 있을 때다. 몇 번을 지적받자 나는 화가 나서
“교장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지시대로 실천하겠습니다.” 했더니
“학생과장 쓰레기통을 한 곳에 3개씩 설치해서 종이와 일반 쓰레기, 캔과 공병. 종이와 비닐로 분류해서 쓰레기장에 가지고 오면 종이와 비닐은 즉시 소각하여 일반 쓰레기와 같이 나무 밑에 묻던지 구덩이를 만들어서 묻고, 쇠붙이와 캔 및 공병은 따로 모았다가 고물상과 가게에다 처리하세요.”
“교장 선생님 그럼 쓰레기통이 많아야 하는데요.”
“얼마나 필요한지 신청하세요.”
“예, 알았습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하면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서무실에 쓰레기통을 사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전임 교장 때 직원회 석상에서 늘 교장이 학교 예산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종이 몇 장 쓰는 것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서무실에 있는 장부에 기록하고 가져다 쓰는 체제에서 살았는데 교실마다 쓰레기통을 3개씩 배치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우리 학교는 정부나 타 학교가 시작하기 전인 1987년에 분리수거가 철저히 실시한 학교가 되었다. 교장 선생님은 서무실에 지시하여 쓰레기장을 네 개로 분리하여 다시 만들어 주었다. 즉, 캔과 공병 모으는 곳, 종이와 비닐 모으는 곳, 일반 쓰레기 모으는 곳, 소각장으로 구분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새로운 것을 배웠다. 학교는 교장에 따라서 예산이 있고 없고 한다고 하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분은 선생님이 학생을 지도하는 데 학습 교구가 필요하다고 신청하면 다 사주는 교장으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때 깨달은 나는 뒤에 교장이 되어서 선생님이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을 신청하면 학교 예산 중 제일 우선으로 결재해 주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분은 집이 대전인데 토요일 날 집에 가면 월요일 오후나 화요일에 출근했다. 지금 같으면 절대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지만 그때는 학교라는 곳은 학교장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정도로 교장의 권위가 막강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학교가 월요일 날 하는 애국 조회를 우리 학교는 화요일 날 하고 학급 활동도 화요일 1교시에 하는 학교로 바꾸었다. 그리고 애국 조회 시간이면 선생님을 학생 앞에 일렬로 세워놓고 훈화했으며, 훈화 내용은 “문학이 어떻고? 등등” 아무도 듣지 않는 이야기를 근 30분 이상 하는데 학생은 그만두고 선생님들도 죽을 맞이였다. 특히 임신한 여선생님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교장에게 붙인 별명이 “쪽바리” 이였다. 그분은 왜정시대 때 세워진 대전중학교를 졸업한 데다 일본에 파견되었다 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런데 11월경 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 젖다. 화요일 날 평소같이 일찍 출근하여 각 교실을 한 바퀴 돌아보고 교무실에 들어왔는데 교무과장이
“김 과장 오늘 훈화는 학생과장이 하래” 한다. 교무과장은 나보다 5살 위였다.
“갑자기 왜요.”
“교장 선생님이 화가 단단히 났어.”
“뭐가 잘못되었나요.”
“화장실 문짝이 떨어져 있데”
“그래요” 하며 생각해 보니 오늘 아침 밖에 있는 화장실을 점검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간부회의 시간이 되어 교장실로 들어갔다. 우리 학교는 전체 간부회의는 금요일 날하고 평소는 교장과 교감 그리고 서무과장, 교무과장 학생과장만 모여 간부회의를 했다.
교장실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싸늘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학생과장, 오늘 아침 화장실 돌아봤어요?”
“아침에 실내 화장실은 돌아봤는데 실외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하자
“실외 화장실에 문짝 떨어진 것 알아요, 몰라요” 한다. 그러면서
“오늘 조회 훈화는 학생과장이 하세요.”
“예, 잘 알았습니다.” 하고 간부회의가 끝나고 학생들이 모여 있는 운동장으로 나갔다. 나는 교장 선생님 인사가 끝나고 나면 바로 훈화를 하려고 조회대 뒤편에 서 있었다. 대부분 학교가 그렇지만 운동장이 교사보다 3m 정도 낮아 조례 대가 높게 설치되어 있었다. 국민 의례가 끝나고 교장 선생님이 인사를 받으면 바로 내려올 줄 알았다. 그런데 분명 나에게 훈화를 하라고 해 놓고 자기가 조회대에 올라가 근 20여 분이 넘도록 화장실 문짝을 부쉈다고 학생들을 혼냈다. 학생들이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시설을 부순다는 것이다. 즉 화장실 문을 우리 학생들이 부순 것으로 단정하고 말씀하셨다.
우리 학교는 1970년대 나타난 학교로 두 개 면 경계에 있는 학교로 마을과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공휴일이나 방과 후에 우리 학교 학생뿐이 아니라 고등학생이나 지역 청년들이 학교에 와서 축구를 하고 놀다가 갔다. 그러다 보니 휴일 다음 날 출근해서 보면 운동장 주변 나무 밑에는 술병 등 쓰레기가 흐트러져 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아마 지난 일요일이나 월요일 오후에 누가 화장실 문짝을 부수고 간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훈화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리하다 교장 선생님이 20여 분이나 학생들을 나무랐으니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바라보더니
“학생과장, 당장 문짝 부순 녀석을 잡아내세요.” 하고 명을 내린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실큰 학생들을 쥐 잡듯이 해 놓고 운동장에서 나보고 문짝 부순 녀석을 당장 잡아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이 충분히 혼내 셨잖아요.” 하자
“지금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거요.”
“지금은 할 수 없습니다.” 했더니
“그럼 학생과장을 그만두겠다는 거요.” 한다. 나는 순간 화가 났다. 그래서
“그만두라면 그만두겠습니다.” 하고 돌아서 교무실로 들어와 버렸다. 교장이면 교장이지 시킬 것이 있고 시켜서는 안 되는 일이 있지 않은가? 생각하며 들어와 버린 것이다. 그러는 사이 눈치 빠른 교무과장이 대신 학생들을 나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교무실에 들어와서 생각하니 화도 나지만 교장이 안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 선생님과 학생이 보는 조례대 앞에서 40대 초반의 젊은 교사가 시키는 말을 듣지 않았으니 당황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리 교장이라도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자기는 월요일 날 학교도 안 나와 놓고 죄 없는 학생들을 아침부터 나쁜 사람으로 매도할 수 있는가? 차라리 학생과장을 조용히 불러 문짝 부서진 것을 조사하라고 지시했으면 왜 거절하겠는가? 그분의 교육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성품이 차분하고 조용하여 교장실에서 책도 많이 보는 것 같은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회가 끝나고 교무실로 들어오는 선생님들 표정은 통쾌하다는 표정이었다.

미완성 2

히말라야 ABC 등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