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복희
ㆍ작성일	2020-12-26 10:25

ㆍIP: 125.xxx.48

늙은이의 변

모처럼 봄도 아니요. 여름도 아닌 6월 초 어느 날 정신이나 맑게 하자고 퇴직자 동기 모임에서 승용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보령에 있는 죽도라는 섬으로 여행을 떠났다. 모처럼 집에서 나와 툭 터진 서해안의 바다 풍경을 감상하면서 싱싱한 회에다 점심을 먹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지 술 한 잔 마시자는데 서로 사양한다. 운전하니 못하고? 몸이 안 좋아 못하고? 그러다 보면 술 마실 사람은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 주책없는 나는 겁 없이 마셔대니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한 친구와 주거니 받거니 한 것이 소주가 몇 병인가. 운전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출발할 때 화장실에 다녀왔건만 한 시간이 채 가기 전 다시 볼일을 보라고 신호가 왔다.

어느 날인가부터 한 번 마렵기 시작한 소변이 참을 수가 없으니 이것이 늙은이라는 징표인 모양이다. 결국 한가진 대로변에 차를 세우고 시원하게 볼일을 보면서 대학에서 헌법 시간에 교수님으로부터 들은풍월을 읊어 본다.
"내 사고는 도달주의를 원칙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니 아무 데서나 방뇨해도 돼." 이 말은 법을 해석할 때 발송이 중요하냐? 도달이 중요하냐? 즉, 원인이 중요하냐 아니면 결과가 중요하나 하는 이론으로 원인을 중시한다면 내 행위는 도로변에서 방뇨했으니 경범죄에 해당하지만 도달주의 즉 결과를 중시한다면 소변은 흘러서 결국 바다로 가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화장실에서 보는 소변이나 길거리에서 보는 소변이 흘러가서 결국 바다에서 같이 만나니 꼭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억지 논리를 펴 보는 것이다.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볼일을 보는데 머릿속에 스쳐 가는 추억이 하나 떠올랐다. 지난 3월 혼자 동유럽으로 패키지여행을 떠났었다. 같이 가는 일행이 없이 혼자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다 보니 행동은 자유스러웠으나 다른 일행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운이 좋았는지 첫날부터 일행 중에 대전에서 온 대학의 후배라는 60대 후반 사람이 친누나와 같이 왔으나 누나는 다른 일행인 여자들에게 빼앗기고 나와 어울렸으며 또 경상 밀양에서 60대 중반 사장이 장모님을 모시고 대학교 교수라는 부인과 같이 왔으나 부인은 장모님에게 빼앗기고 짐만 들고 다니는 신세가 되다 보니 나와 어울렸다. 그러다 보니까 60대 중후반 된 남자 세 사람이 여행 파트너가 된 것이다.

유럽 여행에서 가이드들이 가장 떠들어 대는 것이 와인과 맥주 타령인 것 같다. 프랑스 와인은 어떻고 독일 맥주는 어떻다고 칭찬하며 현지 와인이나 맥주를 꼭 마셔보라고 열을 올린다. 그리고 유럽인들은 맥주를 음료수 대신 마신다며 우리에게 유럽에 왔으니 체험하는 기분으로 마셔보라고 권하니 나잇살이나 먹었으며 평소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낮술이 좀 과했나 보다.

우리가 유럽 여행에서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여행 중 우리나라와 달리 화장실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유럽 어느 나라를 가도 우리나라와 같은 화장실을 볼 수가 없다. 특히 서유럽보다 동유럽이 더욱 불편한 것 같았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고속도로에서도 우리나라의 휴게소 같이 자유스럽게 들랑거리는 화장실이 아니라 유료 화장실이나 아니면 마트의 진열대를 거쳐 가야 화장실이 있다. 그러다 보니 급한 사람은 처음 가는 곳이다 보니 화장실을 찾는데 눈을 굴리지 않으면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아마 셋째 날인가 보다. 오전 관광에서 모차르트의 외갓집이 있다는 잘츠카머구트에서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에 도취 된 데다 호수의 유람 관광에서 서비스로 밭은 맥주에 기분이 좋았나 점심을 먹으면서 네가 한 잔 내가 한 잔 사다 보니 맥주를 거푸 몇 잔씩 마신 것이다. 분명히 차가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도 다녀왔건만 늙은이의 방관이 문제인지 아니면 괄약근이 문제인지 다음 휴게소에 가기 전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우리 여행단이 다음 여행지로 가기 위하여 관광버스가 출발하자 맥주 몇 잔에 기분이 좋아진 밀양에서 온 친구가 인솔 가이드에게 이야기하고 마이크를 받아 한마디 하려다 40대 젊은 아낙에게 혼이 났다.
"마이크를 가이드에게 돌려주고 자리로 가세요." 하자 성질깨나 있어 보이는 걸걸한 성격의 친구가 무안해하며
“아~ 예, 예” 하며 자리로 들어갔다. 간혹 여행 중 늙은이들이 흥이 나면 관광버스에서 하던 행위를 하려다 한 방 보기 좋게 당한 것이다. 이 아낙은 부부와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및 자기 여동생 등 4명이 온 사람으로 아이들 교육에 해가 된다는 논리인 것 같았다. 하긴 나도 차에서 노래하고 떠드는 것은 딱 질색인 사람이다. 가이드가 설명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여행할 때는 차창 밖으로 전개되는 풍경에 도취하여 사색을 즐기는 것이 나의 취미 중 하나인데 그것을 방해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없다.

비엔나를 향하여 차는 넓은 벌판을 지나 산을 넘고 또 넘으며 한없이 달려갔다. 가이드 말이 유럽에서는 운전기사가 아무리 바빠도 법정 속도를 위반하지 않으며 두 시간을 달리면 무조건 휴게소에서 쉬어서 간다는데 우리가 탄 버스는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산속으로 이어진 도로를 달렸다. 가이드 말뿐이 아니라 그동안 유럽 여행에서 경험한 것을 생각하면 분명 두 시간 운행하면 쉬었다 가는 것이 유럽 관광버스인데 2시간이 지난 지가 한참인데도 우리 버스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점심에 마신 맥주 몇 잔이 말썽을 부렸다. 한 번 화장실에 가고 싶다 생각되면 참지 못하는 것이 노인네들의 병이라 참으려고 애를 써도 통제가 잘 안 되었다. 별수 없이 인솔 가이드에게 다가가 쉬었다 가자니 급하냐는 것이다. 나는 더 참을 수가 없다고 하자 알았다며 기사에게 무어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이놈의 버스가 쉬지 않고 계속 달리는 것이 5분 10분 쉴 생각을 않고 달렸다. 나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 인솔 가이드는 지난해에 스페인을 여행할 때 내와 같은 방을 사용했으며 이번 여행에서도 혼자 온 나와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내 막내보다도 더 나이가 어리니 아버님이란 호칭이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호칭이었다.

나는 다시 일어나 빨리 멈춰 주기를 요구했다. 그러자 차는 한적한 산등선의 길을 얼마나 지나간 다음 휴게소에서 멈춰 주었다. 내 생각 같아서는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니, 공간이 있는 곳에 잠깐 멈춰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내 생각인 모양이었다. 차가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뛰어 내려가는데 기사가 손짓하며 무어라고 말을 했다. 아마 화장실을 가르쳐 주는 모양인데 급한 나는 그 말을 들을 상황이 못 되었다. 산길에 있는 자그마한 휴게소라 건물 뒤에로 돌아가니 앞은 휴게소를 돌아갈 수 있도록 도로가 있고 그 앞은 조금 넓은 한가한 공간이었다. 급한 나는 건물을 돌아 뒤쪽 벽에 대고 실례를 범했다. 그런데 바로 내 뒤에 밀양에서 온 친구도 실례했다. 맥주 몇 잔의 양이니 많기도 했다. 그때 우리가 돌아온 건물 반대쪽에서 국내에서부터 동행한 인솔 가이드가 슬쩍 보고 갔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어찌하랴. 옷에다 실수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문제는 다시 차를 타고나서였다. 차가 출발하자 국내에서 온 인솔 가이드는 마이크에 대고 점잖게
“여행 중 어른들의 품위를 지키쇼.”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미안한데 꼭 그렇게 핀잔을 주는 가이드도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대전에서 온 후배라는 사람이 직업이 평론가라는데 가이드만 옆에 나타나면 가이드 들으라고 한마디씩 했다.
"어른들의 품위를 지키쇼"라고 말을 했다. 다시 말해 네놈도 나이 먹어 봐라. 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행이 끝날 때까지 가이드가 기를 펴지 못하고 우리를 피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이드와 가까운 나는 한적할 때 가이드에게 점잖게 한마디 충고를 해 줬다.
"이 선생, 늙은이들은 소변을 참지 못한다네, 그리고 자주 본다네, 여행 안내할 때 참고하면 좋을 거야." 내 충고에 가이드는 잘 알았다며 신중히 받아들였으나 이놈의 늙은이들은 계속 가이드만 옆에 나타나면 놀렸다. "어른스럽게 행동하라고." 내가 그만하라고 타일러도 막무가내로 다음부터는 그러지 못하도록 단단히 버릇을 고쳐야 한단다.

그런데 오늘 또 차를 도로변에 세우고 실례를 범했다. 비록 같은 또래인 남자들만 있고 친구가 운전하는 차이지만 그리 좋은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제는 조심할 나이가 된 모양이라는 생각을 느끼게 되었다.

늙은이 겨울나기

내 취미는 밭 가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