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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2-05-26 17:05
ㆍIP: 223.xxx.63
상으ㅐ도 과일이다
상해도 과일이다

       권영심 ( 2022 , 5 , 26 )

어릴 때 과일이 선물로 들어올 때가 있었다.   나무로 된 커다란 상자에 사과
가 가득 들어 있었는데,톱밥으로 채워져
맨 위에는 보기에도 탐스러운 커다랗고
붉은 사과가 참 아름다웠다.   이럴 때
엄마와 아버지는 작은 다툼이 있었는데
항상 아버지가 이겼다.   엄마는 사과를
골라서 좋은 것은 놔두고 밑에 깔린 작
고 상하기 시작하는 것들을 먼저 먹자는
주의였다.   그 때는 왜들 그랬을까?
맨 위의 사과들이 아무리 크고 좋아도
톱밥 속에 묻힌 사과들은 작고 상한 것 들이 있었다.   그런 상태가 당연한 것인 줄 알던 시대였다.   썩어서 아주 못 먹 는 것이 나오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했었 다.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맨 위의 제 일 좋은 것 부터 먹었다.   어떤 과일이 어도 그랬었다.  나는 아버지의 방식이 좋았고,지금도 그렇게 한다.   그렇다고 뒤에 먹게 되는 반쯤 상한 사과를 버리 지 않았다.   아버지는 과일을 아주 솜씨
좋게 잘랐고 상한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먹으며 우리는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고기도 좋아했지만 땅에서 나
고, 나무에서 나는 모든 소출에 대한 감
사를 우리들에게 알게 해주었다.   억지
로 주입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숨 쉬는
것 처럼 자연스럽게 알게 했지 싶다.
시들고 썩어가는 사과의 성한 부분을
잘라서 우리의 입에 넣어주면서 먹지 못
하는 것을 아까워했다 .

"이거이 조금만 더 잘 간수했더라면 좋
았을 거인데 얼마나 아까우네?  나무가
이 사과 한 알을 낼려고 얼마나 수고했
을 꺼인데 우리는 그거이를 아까워하고
미안해 해야하는 거이디.  이 세상에 쪼
끄만 딸기 한 알이라도 땅은 애써 낸 거
이니 말이디.  그래서 우리들은 조금 상
했다고 생물을 함부로 버리믄 안되는
거이야."

값으로 따져서 아까운 것이 아니라 땅이 애쓰고 농부가 수고해서 낸 수확물에
대해, 감사하고 소중히 여겨야하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알았다.   나는 그래서
어지간한 과일은 버리지않고 먹는다.
제일 실하고 좋은 것을 먼저 먹으며 신 선하고 상큼한 맛도 즐기지만, 조금 시
들고 쪼그라든 과육의 맛도 좋아한다.
그것을 알게 가르쳐준 아버지가 사무치
도록 그립다.   살아가면서 깨닫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보기좋고 튼
실한 인간 관계를 원하지만 모든 인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함을 알게되고, 그 변함마저 내가 포용해야 함을 말이 다.   좋을 때만 내 편이 아니며, 인연은 때로 누군가의 고통마저 내가 품어야 할 때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게 고통의
파편이 튀어 옷을 더럽힐지라도 나는
그를 껴안고 놓치지 않아야할 인과 연이
반드시 존재한다.

상하고, 썩고, 쪼그라졌다고 과일이
아니랴?  그래도 성한 부분을 찾아, 도려
내어 먹으며 그 단맛에 감사하던 아버지
를 무한 존경한다.   어떤 이에게는 내가
썩어가는 상한 과일일 수도 있었겠다.
그래서 돌아보니 나를 품어준 그 사람들 의 인연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알겠
다.  아직도 힘든 것은 여전하지만, 나는
열심히 이 생을 살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과일을 좀 더 지혜롭게 잘  보관하면 싱싱함이 오래가는 것 처럼,
사람과의 관계도 모두 내가 하기에 달려
있다.  내가 소중히 여기고 조심하고 배
려하고 온유하면 된다.  타인을 탓할 일
이 결코 아니다.  억지로 하지말고 숨 쉬
는 것 처럼 ,오늘 내가 대하는 모든 이에
게 온유하면 된다.  매일 매 시간, 부딪히
는 갈등속에서 가급적 이해와 배려를 택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어럽고
힘들다. 그래도 그렇게 하기를 노력해야 하며,상하는 것은 버리고, 그 버림을 아 까워하면서 진정을 다 하면 된다.   타인이 무어라고 하든지 일일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상해도 과일인 것은 변함 없으며 힘들어져도 나의 인연인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을 놓치지 말자.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과일
이 상하고 썩어가는 시간과 흡사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호화로운 생을 살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그 끝은 시들고 상한
모습으로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것이 삶이다.   그러니 조금은 겸허해
지며 어루만지며 감싸주며 살아가는 것
도 나쁘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정조 임금이 화성 성곽을 지을 때 이런 어명
을 내렸다.

" 성곽을 아름답게 지어라. 아름다움은
적을 이기니라."

생의 아름다움은 온유와 이해,연민과 배
려,존중과 공감이다.   그 아름다움만이
삶의 상처를 낫게 한다.  얼마 전에 한 상자 사 온 사과들 중에 하나씩 쪼그라 드는 것들이 보인다.   쪼그라들다가,상 하고 물컹거리기까지 해도 나는 버리지 않을 것이다.  성한 조각 하나라도 찾아 내어 먹고 고마워할 것이다.  내 곁에 남아주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러 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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