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1-07-1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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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세월을 디자인하다

“공간” 세월을 디자인하다

이 도 연

새로운 것과 지나간 것 오래전에 지나가서 오래도록 변하지 않아서 새로운 옛날의 이야기를 만나러 가는 길은 살짝 밀려오는 기대와 흥분으로 가슴이 콩닥거리며 침목이 헐거워져 덜컹거리는 열차의 소음마저도 사랑스럽다.

동인천 철로 변에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배다리 책방 골목을 찾아가는 길이다.
동인천역에서 내려 저마다의 갈 곳을 향해 떠나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발걸음을 비켜서면서
북 광장으로 나오자 넓은 공터에 칠월의 햇살이 하얗게 쏟아져 내린다.
화도진 쪽에서 불어오는 서풍이 살랑살랑 목덜미를 간질이는 시원한 느낌에 기분도 상쾌하다.

광장을 바라보고 우측으로 조금을 걸어가자 혼수 거리라는 커다란 아치가 보인다.
은하신전, 바늘이야기 수없이 많은 세월과 시간을 한 땀 한 땀 수 놓았을 폭포와 진수 산경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늘의 끝에서 멋들어진 치마폭을 수 놓아 열두 폭 병풍을 이루고 펼쳐졌으니 이 또한 경이로움의 절정이라 생각한다.
과거의 추억을 뒤로하고 발걸음 아래로 펼쳐지는 지난날의 삶의 향기와 역사가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과거의 길은 현재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며 일직선으로 난 길 양쪽으로 이 삼층 규모의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상점들의 사이사이로 수 없는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골목의 집들은 모두가 일제 강점기나 구한말 멋스럽게 지어진 건축양식으로 벽면에 타일을 붙여 멋을 낸 근대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오래 묵은 건물들로 낡아 보이지만 어린 시절 보아온 풍경 속으로 시선을 잡아당기며 모두가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다.

물자가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 이곳에 오면 없는 것이 없고 못 구할 것이 없다는 이른바 인천의 도깨비시장 골목이다.
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과거의 풍경들을 보느라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니 철길 아래로 요란스러운 굉음을 울리며 지나가는 굴다리가 나온다.

전철 다리 아래 배다리 지하상가는 여느 지하상가와 조금 다른 것이 예술인들이 모여있는 특화된 상가로 앞치마를 두르고 그릇에 반찬을 들고 서로의 공방을 찾는 정감 어린 모습과 아담하지만, 각종 공방이 모여 있어 예술인들이 서로 한 가족처럼 지내는 것 같은 풍경이 이색적이다.
공예품을 둘러보면서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는 각종 예술품이 정말 신기에 가까워 어쩌면 저렇게 아름답고 신묘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참으로 사람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배다리 지하상가를 빠져나오자 첫 골목에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라는 현판이 눈앞에 보인다.
배다리라는 지명은 배를 댈 수 있는 다리가 있던 곳 또는 여기까지 물이 들어와 배가 들어오는 곳이라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제물포 해안에 1883년 개항장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마을이며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 형성된 것은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들이 헌책을 헐값으로 내다 팔면서 생겨났고 서울 청계천과 부산의 보수동과 함께 전국 3대 헌책방 거리로 명성을 날렸으며 1960~ 1970년대에는 20여 곳이 넘는 헌책방 들이 들어서면서 호황을 누렸으나 80년대 신간 서적이 쏟아져 나오면서 쇠락의 길을 걸어 오늘날에는 아벨서점, 한미서점, 삼성서림 등 6~7개 정도의 헌책방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남아있다.

골목 초입에서 제일 먼저 반겨주는 나비 날다 책방의 검은 고양이가 인사를 한다. 옛 모습을 거의 잃지 않은 아벨 서점을 바라보며 청년시절 이 거리를 누비며 문학전집이나 소설, 시집에 심취해 자주 들락거리던 그 시절이 그립다.
천장 높이까지 쌓여 있는 책과 책장과 책장 사이 좁은 틈에서 쪼그리고 앉아 묵은 책에서 나는 곰팡내와 먼지 풀풀 날리는 책을 뒤적이던 모습이 아련한 추억을 소환한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책과 헌책방은 그대로인데 한때 문학을 꿈꾸던 소년 소녀는 어느덧 중년이 되어 주름진 얼굴에 백발이 날리는 초로의 모습으로 정겨운 미소를 띠며 이곳을 다시 방문한다.

“배다리 작은 책방 시가 있는 길”이라는 멋진 간판이 걸려있는 서점에서는 아래층은 서적을 판매하고 2층에는 문화공간으로 차를 마시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벨서점 역시 위층은 소통과 문화의 장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사람을 기다리고 그들의 가슴을 채워주는 공간을 지키는 것이 책방지기의 행복이자 사명이라는 말은 오래 묵은 책방 늙은이의 곰팡이 피어나는 오래된 된장 같은 감동이다.

양옆으로 늘어선 각종 서점과 옛 모습이 변하지 않은 풍경들이 낯설고 새롭게 눈에 들어오며 오래된 건물과 아기자기한 카페, 갤러리, 공방 등은 옛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고전적이고 클래식하며, 화려하면서 온화한 현대식 감각으로 주변의 상가들과 부드러운 조화를 이룬다.

한미서점은 노란색 외벽이 독특한 모습으로 드라마 도깨비 작가가 직접 헌팅을 한 곳으로 공유와 김고은이 토닥거리는 외부 촬영 장면과 천장 높이 쌓여 있는 책들 사이에서 책을 읽고 있는 공유의 멋진 모습을 촬영한 장소로 알려 지면서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이곳이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고 인천시는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역사문화 마을로 지정하였으나 아직은 한산한 거리풍경이 쓸쓸하다.

책방 늙으니

이 도 연

늙어 주름살이 책장처럼 차곡차곡 싸인
영감의 누런 치아 사이로
묵은 책들이 벽돌처럼 누워 있다

고서점의 깊숙한 터널에는
곰팡내 나는 책들이 시공의 흔적을 지우며
서로의 언어로 열변을 토하며
줄지어 늘어서고

산 자와 죽은 자
치열한 삶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눕고
책방 늙으니 풀풀 거리는 먼지를 일으켜
책장을 정리하면

잠자던 지성의 언어가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며 흩날리는
활자의 파편이 아우성치며 일어난다

형광등 엷은 불빛 사이로 그들의 혼령이
끝없이 깊은 진리의 무덤에서 깨어나

누렇게 변색된 표지 위로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학문의 지평을 열어 지혜의 바다를 건넌다.

인천 양조장과 인천의 성냥공장
이곳 거리에는 헌책방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공간으로 동화연구가인 조은숙 씨의 책 읽어주는 “창영당”이 있고 흙길 도예 공방, 마음이 쉬어 가는 곳, 마을 사진관 다행, 등 다채로운 문화 공간이 있으며 특히 인천 탁주의 효시가 되는 인천양조주식회사의 건물이 있다.

인천양조주식회사는 황해도 출신 최병두가 정미업을 하다가 1926년 인천조선주식회사라는 양조장을 설립하여 인천의 옛 지명인 소성을 따서 소성주라는 이름으로 막걸리를 생산하다 11개 양조회사가 통합하여 1996년까지 배다리에서 소성주를 생산하였으나 막걸리의 주원료인 수질이 좋지 않아 중단하고 지금의 부평 청천동에서 소성주를 생산하고 있다.

양조장 앞에는 깡통 로봇이 어린 시절이 생각나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내부를 들여다보자 너무 조용해서 문을 닫을 곳인가 생각했으나 안쪽의 공장 내부가 양조장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계단 옆으로 올라와서 구경하라는 문구를 보고 조심스럽게 위로 올라가자 발효실, 시험실 등, 여러 공간으로 나누어 공장의 옛 모습을 보존해 놓았으며 그 시절 사용하던 각종 집기류와 여러 형태의 추억의 물건들을 정리해 놓았다.

상근 근무자를 만나 설명을 들을 수가 있었다. 문화공간으로 배움을 통한 꽉 찬 만남 스페이스 빔이라는 단체와 몇 개의 문화단체들이 입주해 있으며 인천 지역의 공공성, 지역성, 자율성을 모토로 지역 미술, 문화 예술을 통한 만남과 생성의 장으로 다각적이고 바람직한 도시 공동체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양조장이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도시공동체의 모습으로 지역사회에 활력을 주는 공간으로 변신한 것에 따뜻한 정을 느낀다.

스페이스 빔을 나와 아기자기한 건물들을 구경하며 위로 올라가자 도시 속에 아담한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도시 속의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넓은 공터에는 눈부시도록 투명한 보라색 천일홍과 꽃잔디를 비롯해 벽에는 능소화가 둥실둥실 피어 있는 전경이 사계절 꽃을 정성스럽게 가꾸어 놓아 별천지를 이루고 있으며 조그만 정자에 앉아 뜨개질하는 여인의 모습은 도시 속의 또 다른 풍경으로 작고 평화로운 마을의 정적이 자아내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마을을 돌아 위로 올라가면 3.1운동의 발상지인 100년 역사의 창영초등학교 건물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붉은 벽화를 바라보는 마음은 뜨거운 역사의 현장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언덕을 내려와 왔던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내려오는 길에는 배다리 성냥 마을 박물관이 있다.
“인천의 성냥 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배다리는 인천의 최초 성냥공장인 조선인촌 주식회사가 있던 곳이다. 저급한 내용인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를 목청껏 부르며 객기를 부리던 가요가 생각나지만, 그것은 하루 13시간 강도 높게 시달리던 우리 누이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노래했던 것으로 그 시절 험난했던 질곡의 삶은 이해 못 할 인천의 상처 깊은 흑 역사의 상흔일 뿐이다.

성냥 박물관에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통 성냥과 당시 휴대하고 다니던 작은 성냥의 모습은 젊은 날의 초상같이 음악다방의 추억과 장발의 머리와 일명 도깨비 빗이라는 커다란 빗을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던 것이 멋스러운 시절 작은 성냥은 아날로그가 아닌 그 시절의 클래식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용도 외에도 멋진 카페 분위기를 재현하는 듯한 성냥이 진열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며 취미로 수집하기도 했던 추억과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로 불린 옛 시절을 대변하는 붉은 이끼는 녹슨 쇠못 보다 더 아픈 과거와 로맨틱한 아름다운 그리운 삶의 전경이 공존하는 기억이다.

이름있는 명소들의 간판과 멋진 문구로 유혹하는 아날로그 추억을 소환한 과거 노포의 모습이 빛 바란 현실 속에 재현된 성냥들이 진열된 것을 바라보며 지난날 행복했던 추억을 더듬어 보고 성냥을 만드는 과정을 재현해 놓은 것을 바라보며 성냥 곽을 만드는 부업을 해서 생계를 이어 가던 이곳 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이 일대 사람들에게 성냥공장이 미쳤을 영향을 가늠해보며 박물관 밖으로 나온다.

하늘 높이 쌓여 있는 고서점의 진풍경이 하나의 역사 테마 속에 녹아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고 인천 최초의 양조장에서는 누룩 냄새 대신에 각종 문화 행사를 주관하고 인천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역동하는 인천의 모습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새로운 변신을 하였으며 거리는 예쁜 찻집과 공방, 인천 문화 예술인들의 터전으로 거듭나고 있다.

짧지만 인천의 오랜 역사를 더듬어 거칠어진 숨결을 따라가 본 오늘의 발걸음이 감동으로 밀려온다. 켜켜이 쌓여 있는 지난날의 순간을 타임머신 타고 다녀온 것 같은 여행은 짜릿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으며 인천의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낼 산실이 될 것을 기약하며 서울 인천 최초의 경인선 철로를 힘차게 달려오는 기차의 요란한 소음에서 개항 100년 인천 역사의 힘과 역동성이 느껴진다.

아우라지 정선아라리

누군가의 디딤돌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