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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도연 소설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1-05-31 09:38
ㆍIP: 175.xxx.88
오월 마지막 휴일의 단상
오월 마지막 휴일의 단상

이 도 연

오후 다섯 시 반 산책하러 나가야 하는 시간 낮에는 햇살이 한여름처럼 따갑더니 구름을 잔뜩 머금은 하늘이 눈살을 찌푸린다.
일기 예보를 검색하니 늦은 아홉 시경 비가 올 확률 60% 산책을 두시간을 하고 돌아올 정도면 비와 상관없이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우산 없이 길을 나선다. 비구름이 여기저기 하늘을 휘젓고 돌아다녀도 구름 사이로 봄날의 햇살이 부서져 내리고 산들산들하게 부는 바람이 오히려 시원한 것이 산행하기 안성맞춤이라 기분 좋은 발걸음을 시작한다.

오월의 마지막 자락의 숲은 물이 오를 대로 올라 짙은 초록빛 숲으로 달려가고 있다.        
화사하게 피어나던 봄꽃이 저만치 멀어져가는가 했더니 나뭇가지 끝에서 춤추는 나비 춤사위를 연상하게 하는 산딸나무 하얀 꽃송이가 지천이고 오솔길 오르막 옆으로 황금빛 물결로 이어지는 금계국이 만발하여 꽃 길만 걸으라는 당부의 말이 아닌 말 그대로 꽃길을 걷고 있다.
햇살 밝은 언덕에는 각종 빛깔로 곱게 단장한 패랭이꽃도 제철이라 무리 지어 피어나고 숲은 아늑하고 고즈넉했으며 푸름이 가득한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부드러운 황토가 깔린 오솔길을 걷는 기분은 상쾌하기 이를 때가 없다.

산책길의 중반을 지나 정상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할 즈음에 서쪽 하늘에 먹구름이 일기 시작하며 먼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가끔 들려오더니 급기야 가까운 곳에서 천둥을 동반한 마른번개가 코앞에서 푸른 섬광을 휘두르며 번쩍인다.
숲은 점차 어둠으로 깊은 동굴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커다란 나무의 우듬지가 바람에 물결처럼 흔들리며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기 시작한다. 발걸음은 조금씩 빨라지지만 가랑비가 토닥토닥 내릴 때면 기분이 좋아지고 숲속의 대화가 빗방울로 시작된다.

초록의 숲속에서 살금살금 내리는 빗방울이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소곤소곤 귀를 간지 린다
초록 초록한 숲이 깨어나는 소리, 생명의 소리는 언제 들어도 정겨운 리듬의 오케스트라이고 오솔길 적시는 빗방울 위로 한걸음한걸음 퍼지는 발자국은 뒤돌아보니 내 삶의 발자취인 것 같다.

우수수 거친 비가 내리기 전에 갈 길을 재촉하지만, 성미 급한 빗방울이 거세게 발길을 적시기 시작한다.
둥그런 나뭇잎 하나 머리에 받쳐 들고 후다닥 달려간 정자 아래 낙수지는 소리는 정겹고 고즈넉하며 먼 산에 비에 젖은 소쩍새 울음소리는 천둥소리에 스며들어 외로움에 사무친 기다림으로 멀고 아득하게 들린다.
굵은 장대비는 그칠 줄 모르고 천둥 번개는 산을 흔들어 포근하고 행복했던 숲속에 공포가 가득고여 빠르게 길을 잡는다.

비를 피하려 할 때 비가 두려울 수 있으나 비에 젖은 몸은 더 이상 비가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으며 싫지 않아 온몸으로 비를 받으며 또 다른 즐거움으로 부지런히 하산길을 달린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역경에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비에 젖은 새앙쥐 꼴이고 옷과 몸은 구별이 없이 한 몸으로 머리는 봉두난발이고 홀딱 젖은 온몸은 빗물이 뚝뚝 떨어진다.
욕실에 들어가 옷을 전부 벗어 세탁하고 따뜻한 물로 부드럽게 샤워를 하니 온몸이 노곤하고 기분이 금시 맑아지고 가벼워지며 개운하다.

탈수한 옷을 베란다 빨래 거치대에 걸어 놓으며 밖을 보니 언제 비가 왔느냐 하게 비가 그쳐 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 했던 가 조금만 기다리거나 부지런했으면 맞지 않았을 비일 수도 있었는데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빨래를 넌다.
술안주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며 창밖을 내다보니 또다시 세찬 비가 내린다. 인생은 새옹지마요 오 분 후에 일어날 일을 알 수 없으니 이 또한 인생인 것을 오월의 마지막 주말은 이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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