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종덕
ㆍ작성일	2017-07-18 12:25

ㆍIP: 168.xxx.229

꾸리무리한 날

물 길 / 김 종 덕

요즈음 날씨가 참으로 참기도 힘들고 견디기도 힘들고 왕짜증이 많이 난다. 특히 누가 스트레스를 먹이는 것도 아닌데, 몸이 찌부둥하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견뎌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인데도, 머리를 싸잡고 이건 아니야를 외쳐야하는 이 마음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선조들은 기다리고 견디는 것에는 이골이 난 듯하다.

꼭 더운 날이 아니라 추운 날씨에도 전혀 바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면 금방이라도 얼어 죽을 것 같은 기세인데도 평안해 보인다. 조금은 외로워 보여서 그렇지, 영 버티지 못할 것은 아닌듯하다. 갓도 마찬가지의 내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갓끈을 매지 않으면 덜렁거려서 움직이는 데 아주 불편할 것이고, 빨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환경이 사람의 성격을 느긋하게 만들지 않았나라고 생각되어진다.

농경사회에서도 소처럼 느긋해야 논, 밭을 갈 수 있었을 것 같다. 소가 말처럼 파닥거리며 빨리 움직이면 전혀 따라 갈 수 없어 농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놈의 소 보소, 급한 것이 전혀 없고, 주인이랑 소랑 그렇게 닮아 있을 수기 없다. 이라~ 한마디하면 이랑 끝까지가고 한번 더 이라~ 하면 다음이랑까지는 별 말 없어도 간다. 얼마나 친화적으로 살아왔는가를 보면 가히 감탄이 나올 정도이다. 모심기 쓰레질하면 주인의 발이 질퍽한 논에서 잘 빠지지 않으면 이 놈의 소 또 기다려준다. 정말 목가적인 풍경이다. 소 풀을 먹일 때도 애타게 따라다니지 않는다. 그늘에 앉아 곰방대 물고 흰연기 쭉 뱉어내고 있으면 저놈의 소는 군말 없이 풀을 뜯다가 주인이 잠들어 있으면 혼자 느긋하게 집에 돌아와 안주인을 놀래키기도 한다.

무슨 일을 해도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는 걸 보면, 참으로 여기가 천국이구나 하는 것도 스스로 느꼈을 만도 하다. 무슨 일이 내키지 않으면 내비둬~ 하는 말로 집안을 조용하게 만들어버린다. 언제해도 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조으냐는 말일 것이다. 참으로 낭만적이고 전원적이라. 그래도 집안에서 가장 빨리 움직이는 것이 견공이고 보니 이놈은 귀찮다 할 정도로 식구들을 따라다니며 일을 거들어 주는 걸 보면, 이집은 견공 때문에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개벼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 때는 충청도에서만 돌내려 가유~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전국적으로 그랬을 것 같다. 이것이 여유인지 게으름인지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고 오늘하나 내일하나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에야 더 서두를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또, 논 매는 것도 그렇게 박자가 맞다. 얼굴에 볏닢이 항칠을 해도 천천히 천천히 풀을 뽑아 묻어 가면서 간다. 빨리 갈라치면, 뭐그리 바뻐~ 하면 또 진도가 맞아진다. 참으로 평화스러운 농촌이었다.

이 놈의 날씨가 간을 빼먹을 정도로 덥고 땀을 질질 흘려도, 뭐 그러다가 그만 두겠지뭐하는 여유로 징한 여름을 지내오고 견디어 왔다. 곰방대 연기나는 것처럼이나 꼬물꼬물 천천히 여유롭게 지내 왔다.
근데 이렇게 느긋하던 세상이 워찌 이렇게 빨리빨리로 바뀌어 졌는지 이해가 통 되지 않더라고. 그 때나 지금이나 소의 발걸은 변함없는데 왜 이제 사람들이 소를 앞서간다고 난리인지 모르겠단 말이시. 말 그대로 소가 웃을 일이 아닌감? 지금 곰곰이 생각해봐도 어디서부터 달라졌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아마도 그 눔의 새벽종이 울고 나서 부터인가? 느긋하게 잠 좀 더 자볼라치면 그 눔의 확성기에 너도 나도 일어나 새아침을 일구세~ 이런 때 부터인가.

아부지가 야! 일어나, 돼지 죽 주야지, 여물 끓여야지, 소 먹이러가야지, 길 넓히러 가야지, 풀베어 퇴비 만들어야지... 이틀에 걸쳐서 하던 일들이 하루가 단 축되고, 또 반나절이 단축되고, 그것도 기다리지 못하여 빨리 빨리가 나오지 않았겠냐고.

요즈음의 꾸리무리한 날씨에도 선조님의 덕을 이어 받아 이렇게 엉덩이 꾹 붙이고 앉아서 땀을리며 일한다는 그 자체가 지금 우리에게 대물림이 되지 않은가 싶네. 요즈음 날씨 정말 너무 한 것 같다. 비가 올려면 콱 와 버리든지, 아니면 쫙 햇볕을 뿌려서 사람들을 잡아먹든지, 화이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신경질만 돋구고 있네. 엣날 사람들은 왜그려~ 할 것 같은데 쬐끔 빠른 시대에 살았다고 견딜 수 없다고 난리를 치는 이 몸을 보면 참 역사가 이래서 재미 있구나 하는 것을 느껴본다.

이런 꾸리무리한 날이 계속되고, 좋은 말을 하더라도 툭 튀어 나올 것 만 같은날,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일과가 빨리 끝나면 소주에 고춧가루 타서 확 마셔버리고, 화끈하게 윗통 벗고 달리기나 해볼까. 청명하고 더운 날의 매미소리는 참으로 노래하는 것으로 들리는데, 이러한 날씨의 매미소리는 떠날 날이 되어가는 아주 애절한 눈물 소리로 들린다. 이런 날을 맞으려고 땅속에서 7년을 버렸냐고 한탄하는 소리 같다. 좀 상큼해졌으면 한다. 정말 상큼하다는 말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고추잠자리가 짝을 지어 유영하다 잠시 쉬러 내려앉은 코스모스의 미소를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백낙은

2017-07-19 13:48

김종덕 작가님. 반갑습니다.
꾸리무리하다는 말 오랫만에 들어 봅니다.
우리 지방에서는 더 줄여서 꾸무리하다라고 쓴답니다.
옛말에 3년 가믐에 비 안 오는날 없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 포항 지역이 그렇답니다.
여기는 한번도 비다운 비가 안 왔습니다.
빗방울 조금 떨어진 것 뿐이랍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 밭에 물주기가 일이랍니다.
"좀 상큼해졌으면 한다."고 하신 말씀 처럼 비 개인 하늘 삼큼함이 그립습니다.
작가님 건안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김종덕	백위원장님, 안녕하십니까? 참으로 상큼해 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후덥지근하게 견디기 힘들기도 하고, 그 더위도 끝을 모르고 치닫고 있어 이 여름은 조십히 보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건강하시고, 감사합니다.	7/21 12:27

이석희

2017-07-20 18:46

김종덕 작가님!
반갑습니다. 목가 한 편을 들은 기분입니다. 농촌 가난한 집에 나서 자랐기에 소 키우는 일은 감히 생심도 못하였지만 어깨 너머로 구경은 그래도 못하였다 할 수는 없습니다. 몇 안되는 학생이 진학을 하였지만 학교에 다니면서도 논일 밭 일 조금씩이라도 손에 간단히 익을 만큼은 하고 자랐었지요.
그래서 이 글들이 전혀 낯설지 않아 보이는가 봅니다. 참 엉뚱한 생각이지만 쇠똥 냄새가 그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지푸라기 향내 나는 소 내장 한 번 막는 게 평생 소원이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노라니 그 생각이 더욱 더 간절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종덕	이석희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참으오 그 때의 시기에는 선조님의 지혜에 따라 그렇게그렇게 지내왔읍니다만, 요즈음은 그 여유가 어디로 갔는지 매일 허덕이며 살고 잇는 것을 보면 황소걸음의 그 때가 나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도 작가님계시는 곳은 물날리가 심하실것 같은데 작가님 댁은 평안하신지요? 더운 날씨에 더욱 건강을 챙기십시오. 건강하시고, 감사합니다.	7/21 12:31

정찬열

2017-07-20 23:00

물길 작가님!
아닌게 아니라 꾸무럭진 날씨에 30도를 웃도는
불같은 지옥의 연속속에 짜증나는 하루하루다.

조선조 양반들의 느릿한 지난날은 어디로 가고
초스피드시대가 되어 빨리빨리 가 우리 몸에 배여
그래서 100세 인생이 되어도 세월은 빠르다고만 느끼는가 싶지요
곳에따라 물폭탄을 퍼붓는 것도 예전에는 지금처럼 지나치지는
않았었다. 좁은 광주에도 북구 쪽에는 많은 비가 오는 가하면
남꾸쪽에는 먗방울 떨어뜨리고 말때도 있으니 좁은 대한민국의
국토 에서도 이럴진데 광활한 중국이나 미국, 쏘련같은 나라의
서로다름을 가늠해볼뿐이다.
"꾸무리한날" 멋지게 집필해주신 글에 한달음 배독하고 갑니다.
후덥지근한 저녁에도 편안한 시간 되시길 빕니다.


김종덕	정찬열 작가님, 이런 여름에 어떻게 잘 지내십니까? 저의 사무실은 5층건물의 5층이라 그 복사열이 사람의 숨소리를 가쁘게 만들고 있읍니다. 이런 후덥지근한 날은 다른 대책이 없습니다. 그냥 물에 푹 잠겨 있고 싶을 뿐입니다. 건강하시고, 감사합니다.	7/21 12:33

박목철

2017-07-21 08:19

지금 이 순간도 너무 습해서 짜증이 납니다.
유유자적 옛 선조들의 느긋함을 배워야 하는데 쉽지 않네요,
어제는 개 집 손좀 보다보니 옷이 완전히 땀에 절더군요,
이런 더위와 습도도 며칠이면 지나가겠지요,
법정스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무더위에 짜증 내다고 문득,
살아서 이런 더위를 몇 번이나 더 만날까? 하니 더위가 정겹더라고
그 분 그후 얼마 더 사시지 못하고 돌아가셨지요,
그런 마음으로 더위를 견뎌 보렵니다. 작가님 건강하십시요,


김종덕	박목철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말씀을 새깁니다. 몇번이나 더 만날 여름이 될까에 짜증나는 마음을 접습니다. 참아 보게요. 땀샘없는 개들도 이 여른을 넘기는데 땀샘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견디지 못할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좀 쉬울 것 같습니다. 건강하시고, 감사합니다.	7/21 12:36

장종섭

2017-07-21 19:45

글속에
머물다 갑니다
시인님~


김종덕	장종섭 시인님, 안녕하십니까? 될 수 있으면 옛 선조 같이 많은 여유를 가지고 지내십시오. 빨리간다하더라도 그 시각에 맞는 기차가 없으면 뒤에 오는 사람들과 같은 차를 탈 것입니다. 건강하시고, 감사합니다.	7/22 19:00

매미의 탄원서

복(伏)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