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길 / 김 종 덕

요즈음, 사람은 참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하늘이 감동을 하려면 악한 사람의 지성과 선한 사람의 지성은 어딘가 다르게 하늘에 다다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선하게 살아 왔는지 시험을 해보기도 한다. 온 들판엔 물이 마르고, 들풀조차도 숨에 겨워 허덕이고 있고, 우리가 피땀 흘려 지어야할 농사가 하늘의 외면으로 속만 끓이고 있었다.

그래서 기우제라도 지내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커다랗게 재단을 만들고 하늘에 울림이 닿을 정도로 큰 굿을 하고 싶지만, 이 작은 사람이 한다는 것은 온갖 무리가 뒤따라 하는 수 없이 마음으로만 기우제를 지내본다. 굳이 어떤 형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 특별한 정성으로 하늘에 기도를 드려본다. 하느님, 우리기 이렇게 자연을 훼손하고자 지내온 것은 아닙니다. 먹고살고 후대의 자손들을 위하여 굳은 일들을 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 하느님의 원성을 사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무엇이 그렇게 잘 못되었다하더라도 일단 살려주시고 난 다음에 화풀이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고정하시고,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살아갈 수 있게 비를 내려 주시옵소서라고.

참으로 하느님이 옛다하고 비를 뿌려 주실 것 같은가. 인간은 자기 필요에 의하여 하늘에 의존한다. 뜻 대로 되지 않으면 나랏님이 무엇을 잘못했길래 하늘의 노여움을 샀을까하고 오히려 다른 탓으로 원망을 한다. 누구라도 그럴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만 아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이 기우제를 올리면 하느님은 더 좋아할까라고 생각해보자. 하늘은 그렇게 좋은 인상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자연을 훼손한 당사자가 인간이고 인간이 잘못을 실토하고 빌어야 이치에 맞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빌더라도 온 정성을 다하여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하늘이 그만해라 할 정도의 지성을 요구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해보기로 한다. 나름대로 선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주일을 애타게, 진정한 마음으로 나를 위해서가 아닌, 저 온 들판의 생명을 좀 살려주시옵소서라고 빌어보았다. 하늘의 대답은 한가지로 들려왔다. 너 같은 놈 백명이 와봐라고 엄하게 꾸짖는 소리만 들려온다. 나는 착하게 잘 살아오지 못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으로 단판에 뚫였다. 그러면 또 누구를 내세워 기도를 하게 할까. 참으로 해맑고 청순하고도 선명한 아기는 어떨까라고 생각해보지만 역시 길을 피해가는 나쁜 놈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몇 번의 여우비가 지나가 길래, 이젠 하늘을 잃어 버렸던 세월호 때처럼 아주 큰 비가 오겠구나하고 들뜬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그 간에 세월호가 얼마나 많은 하늘의 눈물을 가져갔는지 꿈쩍도 않고 내려다보며 흘기고 있다. 이젠 악으로 소리 질러보고, 악으로 버텨 보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음을 깨닫는다. 하늘에 대하여 내세울 만 한 것이 없다.

곧 장마가 온단다. 햐아, 이제는 하늘의 뜻이 아닌 가는 세월의 뜻으로 비가 오겠네라고 생각한다. 참 간사한 인간일 수밖에 없을까. 빌 때오면 마음에 찬 비이고, 세월이 흘러 장마가 오면 하늘의 마음이 아닌가. 좀 더 벌을 받아야 정신을 차릴 사춘기의 학생들처럼, 좀 더 하늘에 대한 심경고백을 더해야 할 것 같으다. 인명이 재천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재천이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가 그렇게 큰 나라인가. 한쪽에는 물난리가 나는데 다른 쪽에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으니 하늘은 선의와 악의의 장소를 가르는 것인가. 인간은 끝까지 인간이며 더 가치있는 사고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장마철에 들어섰다고 한다. 장마는 비가 연속적으로 하늘이 구멍이 난 것처럼 퍼부어 대는 것이 장마이지 않은가. 장마 때에는 밖으로 돌던 집 지키미도 혀를 날름거리며 담을 넘어 어슬렁거리며 집안으로 들어오는데, 이번의 장마는 그 대로 말라버린 장마이다. 조금은 풀렸을까, 대지의 아픔이. 예전에는 삽을 들고 나가 물꼬를 트고, 파닥거리는 미꾸라지에 미끄러져 홀라당 넘어지기도 하고, 하늘 비를 타고 온 미꾸라지가 뜰 마당에 꼬물거리기도 했는데, 미꾸라지가 타고 흐를 하늘비는 오늘도 주무시고 있나보다.

오늘 밖에 우산을 받고 지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참으로 시원해 보인다. 밖으로 나가 온몸으로 둘러 써 보자. 비가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네. 속으로 흘러 속옷이라도 젖어 털털 털고 들어왔으면 하는데 비가 말라버렸네. 옛날 고등학교 시절에는 모자하나 쓰면 모든 비는 해결되고 몸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그 때가 참 그리운데, 우리의 마음이 마르듯이 장마도 따라 말라버려 지금은 울 마음도, 기뻐할 마음도 떠나버린 광야에서, 마르지 않은 장마에 울컥 솟아오르는 고마움으로 무릎 꿇고, 하늘의 보살핌에 다하지 못한 정성을 회초리라도 맞아 하늘의 뜻을 새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