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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5-01-16 21:08
ㆍIP: 115.xxx.86
베팅 (26회)
 
 보육원 마당에 휠체어를 탄 2명의 신체장애우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팔을 비틀며 초점
 
없는 눈동자의 정신지체장애우 몇 명과 그 주변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

 이때 선우와 준식이 보육원 문을 열고 모여 있는 아이들 가운데를 지나 원장실로 들어
 
섰다. 그 뒤를 절뚝거리며 민기가 따랐다. 아이들이 겁먹은 눈으로 세 사람을 주시했다. 

 거실을 거쳐 원장실을 준식이 거칠게 들어서자마자 탁자 위에 있는 주전자와 컵들을 쓸
 
어버렸다. 와장창 소리와 동시에 컵들이 깨지며 쨍그랑 소리를 냈다. 밖에서 놀던 아이
 
들이 깜짝 놀라 달려와 창문과 방문을 통해 두려운 눈길로 안을 바라다보았다.
 
 “빚 갚을 생각은 안 하고 지금 한가하게 책상놀음만 할 때가 아니잖아.“

 준식이 원장을 향해 무섭게 고함쳤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친구가 아직 연락이 안 돼서 그래요.”

 “그런 말은 저도 수백 번 할 수 있어요. 친구 분이 사채 쓰신 것은 아시지요. 원장님이
 
보증인이므로 대신 갚아야 하는 것도 아시지요. 원금 3억에 이자만도 벌써 1억이 넘습
 
니다. 우리 돈은 급전이라 이런 식이면 며칠 내로 원장님 빚이 5억, 6억 되는 건 금방입
 
니다.”

 민기가 끼어들었다.

 “이번 달 안에 해결 안 하시면 이 보육원을 경매로 넘길 겁니다.”

 선우가 거들었다.

 “경, 경매로 넘긴다고요! 그리고 이번 달이면 얼마 안 남았는데….”

 “우린 무조건 달로 마감해.”

 준식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 오갈 데 없는 이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당신은 갈 데가 있는 모양이네.”

 울상이 된 원장을 향해 민기가 비꼬았다. 선우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경매로 넘어가는 것보다 지금 저희가 제시하는 가격에 넘기는 것이 훨씬 나을 겁니다.
 
그래야 원장님 전세방이라도 얻지 않겠습니까. 이건 원장님을 위해서 진심으로 말씀드
 
리는 겁니다. 복지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설마 이 아이들을 버리기야 하겠어요.”

 “일단 말미를 좀 더 주십시오. 어떻게든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말까지입니다. 그때까지 못하시면 바로 경매에 들어갑니다.”

 사정하는 원장에게 선우가 던진 소리는 얼음장과 같았다.

 “가자!”

 선우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하며 울부짖는 원장을 냉정하게 뿌리치고 밖으로 나갔다. 나
 
오는 세 사람이 무서워서 피한 아이들이 곧이어 우르르 원장실로 들어갔다. 원장이 아이
 
들을 붙잡고 슬피 울었다. 

 그때 특수학교를 마치고 보육원을 들어오려다 승용차를 타고 떠나는 선우를 본 혜성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선우 형을 꼭 닮았네.”


 비탈길 위에 지은 지 오래되어 낙후된 2층 단독 주택의 대문을 열고 반 지하 계단을 원
 
장이 내려갔다. 그는 한 손에 과일 봉지를 들고 그가 어느 집의 방문을 두드렸다. 좁은
 
부엌이 딸린 방 한 칸 지하방이다.  

 방 안에서 환자인 듯한 중년여성의 힘없는 음성이 들렸다. 여자가 아픈 듯 이불을 들추
 
며 일어나 원장을 맞았다. 옆에는 약봉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당뇨병이 늘 그렇지요.”

 “합병증은요?”

 “갈수록 눈이 침침하고 발과 다리에 감각이 점점 더 없네요.”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어렵게 기초수급자 혜택을 받아 겨우 약값은 보태고 있어요. 뭔가 해야 하는데 몸이
 
이래서 일하기도 어렵네요.”
 
 원장이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장 사장은 아직 연락 없나요?”

 “네. 갚아야 할 빚이 많아 돈을 벌어야 한다며 나갔는데…. 처음에는 집에 오더니 빚쟁
 
이들이 자주 찾아오니까 몇 개월 전부터 아예 연락이 없네요. 아무래도 자포자기한 것
 
같아요.”

 여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요!”

 “석구 아버지가 역전에서 노숙자 생활하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어서요.”

 “그 사람이 잘못 봤겠지요. 장 사장이 얼마나 생활력이 강한 사람인데요. 돈 많이 벌어
 
서 곧 돌아올 거예요.”

 “그나저나 원장님께 죄송해서 어떻해요. 석구 아버지 보증 서는 바람에 큰 빚을 지게
 
돼서요. 그이가 자기 때문에 유 원장님께 피해를 입혀 큰 죄를 지었다고 늘 마음 아파했
 
어요.”
 
 “할 수 없지요. 장 사장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요. 사업을 잘 해보려다 그런 거지
 
요. 그리고 그동안 장 사장이 우리 보육원을 얼마나 많이 도와주었다고요.” 

 그는 우울한 분위기를 바꾸려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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