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5-03-18 16:50

ㆍIP: 115.xxx.86

베팅 (38회)

선우의 눈 밑으로 인공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거나 누워있는 사람들과 말이 달리는

트랙과 우뚝 세워진 큰 전광판이 보였다. 앞이 확 트인 경관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오

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관람객 중에는 중년여자와 젊은 커플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여

성들의 입장으로 상막한 전쟁터 같은 분위기가 부드럽게 느껴져 좋지만 한편으로는 걱

정이 되어 그가 무의적으로 말을 던졌다.

“생각보다 여자들도 엄청 많네.”

“가급적 여자들은 하지 말아야 집이라도 안 팔아 먹을 건데 말릴 수도 없고 말이야.”

민기가 한심 반 안타까움 반으로 혼잣말을 했다.

“선우야, 여기 오는 여자들의 변천사를 내가 말해줄까?”

“어떤데?”

“나는 여자들의 자세와 행동을 보면 그녀의 마장 출입 세월을 기막히게 알 수 있다.”

“어떻게?”

준식이 헛기침을 하고는 주위도 의식하지 않고 마치 연설하듯이 입을 열었다.

“한 달된 여인, 다소곳이 앉아서 순박한 얼굴로 경주를 보며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예쁜 손에는 보라는 듯이 1천 원짜리 몇 장을 쥐고 있다.

두 달된 여인, 꼭 남친이 있다. 슬슬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지. 아직은 해맑다. 가녀린 손

에는 가끔 5천 원짜리도 보인다.

반 년 된 여인, 이 바보야 하면서 남친을 핀잔주기도 한다. 아직은 잘 웃는다. 드디어 세

종대왕 몇 장을 대수롭지 않게 들고 다닌다.

1년 된 여인, 이젠 혼자다. 독고다이로 뛴다. 이젠 미소가 없다. 하얀 예쁜 손에는 돈 대

신 경마정보지가 몇 장 더 늘었다.

3년 된 여인, 예쁜 얼굴에 맞지 않게 사인펜 뚜껑을 질겅질겅 씹어댄다. 절대 안 웃는

다. 예쁜 허리에는 돈 가방인지 아주 자세가 나온다.

5년 된 여인, 힘든지 신발 벗고 양반자세로 자리에 앉는다. 슬슬 욕도 나온다. 조금 거

칠어진 손으로 주위에 있는 정보지를 싹쓸이하여 들고 있다.“

준식의 디테일한 설명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10년 된 여인, 욕은 기본이고 사인펜을 뒷머리에 꽂고 다닌다. 다른 여인들에게도 가

끔 훈수를 둔다. 예쁜 손은 두 배로 커졌다.

20년 된 여인, 마장에 도착하면 이제 바로 눈감고 잔다. 사인펜은 머리에 두 개씩 끼워

져 있다. 이젠 고수가 되어서 베팅을 안 하고 실눈만 뜨고 보기만 한다.

30년 된 여인, 지하철을 타고도 기수 이름을 부르며 이 죽일 놈, 년이라고 큰소리로 하

소연 한다. 이미 몸매는 두 배로 살이 쪄 있다.

40년 된 여인, 지하철 가득한 승객에도 불구하고 한쪽 구석에서 경마지를 보고 있다.

내가 보기에도 너무 당당하다.

50년 된 여인, 마권을 한 움큼 쥐고 계신다. 100원, 300원, 500원 구멍 수는 많지만 환

수는 나온다. 별 욕심 없어 보인다. 반찬거리 살 돈만 따도 웃는다. 끝. 이상으로 마 여사

의 변천사를 마치겠습니다.“

목이 마른지 준식이 음료 캔으로 목을 축이자 여기저기서 웃어 죽겠다며 박수를 치며

난리다.

곧이어 아나운서의 소개를 받으며 말들이 경주로에 나오고 있었다. 경주마에 관심을 가

져야 하는데 선우의 눈에는 여자기수가 더 들어왔다.

‘헐, 그놈 무지하게 조그마하네.’ 사복을 입으면 어떤 모습일까를 연상해 보는데 답이

안 나온다. 선우는 자그마한 기수들을 바라보면서 신은 참으로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경

마 기수로는 말에 부담을 적게 주어 적합하지만 사회에서는 엄청난 핸디캡이기 때문이

다.

경주가 시작되자 경마장이 흥분으로 들떴다. 한가했던 공간이 갑자기 쉼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각자 무언가 부지런히 자신의 할일을 하면서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한다. 일을

저렇게 하라고 하면 아무도 그리 못할 것이다. 자기 돈을 걸고 배팅을 하므로 딸 수 있다

는 생각과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서 저렇게 바쁜 것이다.

“자기야, 이번 한번만 더 베팅할 테니 돈 좀 줘라. 응.”

“벌써 몇 번째야. 안 돼!”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야. 약속할게. 꼭. 꼭.”

앞자리에 털조끼를 걸친 중년사내가 부인인 듯한 여자에게 애걸하고 있었다. 선우는 애

처로운 사내를 보며 그 돈 아저씨가 벌어다준 것이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여자의 심한

구박을 받으며 돈을 타낸 사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총알같이 나갔

다.

정찬열 2015-03-19 22:20	안녕하세요 이인철 작가님 제가 장모님 상을 당해 몇일동안 서재 출근울 못했습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글 35~38회를 한꺼번에 멋진그을 살폈습니다. 감사히; 보고 갑니다.

백낙은 2015-03-22 19:39	이인철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눈썰미가 없어서 서재의 사진으로는 직접 뵈어도 잘 알아 보지 못합니다. 어제 모임에 참예 하셨는지요? 두루 좀 살펴 볼걸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베팅 38회까지 꾸준히 써 가시는 모습 참으로 보기가 좋습니다. 역사에 기리 남는 역작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화이팅입니다.

이인철 2015-03-23 17:40	《Re》정찬열 님 , 정 작가님! 장모님 상을 당하신 것에 안타까운 조의를 표합니다. 경황이 없을 시에도 이렇게 격려를 보내 주심에 고맙습니다. 부디 슬픔을 이겨내시고....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늘 정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인철 2015-03-23 17:47	《Re》백낙은 님 , 백낙은 작가님! 촉박한 공모전 출품 관계로 참석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 모임에는 참석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졸작에 격려를 보내주심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멋진 작품 많이 산고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베팅 (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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