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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박목철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박목철
ㆍ작성일 2015-01-02 13:09
ㆍIP: 211.xxx.28
짧은 시의 씹을 맛,

예전에 내가 쓴 시를 보면 상당히 길고 난해한 단어를 많이 사용한 것이 눈에 거슬린다.
멋진 단어 찾기에 애쓴 흔적이 보이기도 하고,
아마도 너무 쉬운 단어로 구성된 시를 보면 왜인지 무게감이 없어 보이고, -가볍다. - 라는
시건방진 문학도의 치기를 벗지 못한 유치함에 낯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요즘은 난해한 시를 대하면 당혹스럽다.
댓글을 달려 해도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망설이게 된다.
대게의 경우 시는 제목을 읽고 본문을 보면 감이 오게 마련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이해도 못 한 글에 뭐라고 댓글을 달 것인가 한참을 생각하다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아주 쉬운 평어체로 쓴 시에서는 공감과 감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려운 단어나 비유로 함축한 난해함이 아닌,
아주 쉬운 말이지만 여운의 잔상이 길게 남는 멋진 시어를 대하면 감동을 받게 된다.
아! 시는 이렇게 써야 하는데, 하는 스스로에 대한 한탄이다.
오늘 아침 중앙일보 지면에 미당의 미발표 유작이 실려서(2015, 1, 1,) 읽어 보았다.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해 못 할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없어도 가슴이 따뜻해 오는 좋은 글이었다.

임세훈 시인님의 짧은 시 “정년퇴직,”에 대한 소감을 쓰려다 서두가 길어졌다. 님의 시에서
짧은 글이 주는 씹을 맛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허락도 얻었다.

-푹푹 찌는 여름날 아내가 외출했다. 곰국을 들이켜도 가슴이 시리다.-

글귀 어디를 봐도, 어려운 단어나 은유도 함축도 없는 평어체의 쉬운 글이라 하겠지만,
소운은 이 글을 읽고 한동안 마음이 시렸다.
평생을 바쳐 가족을 위해 헌신한 대한민국 남자의 위축된 모습과, 아내의 눈치를 봐야 하는
퇴직자의 모습을 시인님의 글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글에는 없지만, 이런 장면이 읽힌다. 시만이 갖는 상상의 함축이고 감춰진 은유이다.
-정년퇴직 전에는, 생계를 책임진 대우받는 당당한 가장이었다.
-쉬는 날이면, 남편 늦잠을 깨울까 봐 까치발로 다니거나, 중요한 모임도 사양하던 아내이다.
(남편 밥 차려 줘야 해, 모임은 못 나가겠어, 모두에게 잘 말해줘,) 이러지 않았을까?

-푹푹 찌는 여름날 아내가 외출했다.- 에 많은 생략도 있지만 상상의 날개는 무진하다.
정년퇴직이란 제목이 주는 무게, 아내의 외출, 곰국, 시린 마음,
정년퇴직이 밥도 스스로 챙겨 먹어야 하는 권위의 퇴직을 뜻하지는 않을까?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밥을 차리는 퇴직자의 심정, 푹푹 찌는 여름에 펄펄 끓는 곰국을 마셔도
속은 시리다는 심정은 이 시대 모든 남자의 공통된 아픔이 아닐까 비약해 보았다.

임세훈 시인님의 시를 소운에게 재구성해 보란다면, 이렇게 길어졌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런 사연을 다 담았다면, 그냥 평범함, 그 이상은 아닐 것이다.
한 줄로 줄이고도 많은 사연을 품은 임시인님의 내공에 박수를 보낸다.

정년퇴직,       소운/박목철

늦잠에서 깨보니 아내가 없다.
푹푹 찌는 여름날,
탁자에 달랑 쪽지 하나 남기고
“곰국 꺼내 놨으니 데워서 드세요,”

동창회 모임도,
눈치 보며 못 가던 아내가,
달랑 쪽지 한 장으로
나더러, 밥 챙겨 먹으란다
곰국 데워서,

가스 불에 곰국 데우고
냉장고 김치 꺼내며
문득 밀려오는 소외감이라니,

뜨거운 곰국에 발을 말아 삼켰다.
정년퇴직도 함께,
뜨거운 여름날, 뜨거운 곰국인데, 속이 시렸다.

시는 짧아야 한다는 소운의 생각, 물론 이론도 있을 것이다.
서사시나 장문의 시도 물론 있다. 하지만 수필이나 산문, 콩트 등, 긴 글을 쓰라는 그릇은 따로 있다.
시라는 그릇은 짧게 써 담으라는 적은 그릇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은유나 함축이 반드시 어렵고 난해해야 한다는 생각을 임세훈 시인님의 짧은 시를 보며 다시
생각해 보았다. 비록 삼십 자 미만의 글이지만, 많은 여운을 준 좋은 글 임세훈 시인님께 감사드린다.
참, 푹푹 찌는 여름날로, 뜨거운 이나 펄펄 끓는 곰국을 생략하게 한 생략이 돋보인다.

*이글은 임세훈 시인님의 양해하에 쓴 글임을 밝힙니다. (협회 방침이 남의 글에 대한 평을 금함)
이름아이콘 채영제
2015-02-02 00:27
 예,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는 쉽게 쓰야 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그리고 산문의 영역에 대하여도 적극 공감합니다.
   
이름아이콘 박목철
2015-02-02 12:26
회원사진 		《Re》채영제 님 ,
공감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문학인들이 보는 글방이라 더 조심스럽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이름아이콘 김경렬
2015-02-11 09:50
 너그러우신 임세훈시인님 덕분에
박 목철 작가님의 재구성 글 너무 훌륭 하십니다
몇번 보고 또보고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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