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뜻하지 않게 저지른 순간의 착각과 방심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기도 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까지 엄청난 피해를 준다. 잊히지 않을 잊힐 수 없는 수년 전의 일화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어이없는 일에 현기증을 느낀다. 입사 초기에 발령받은 근무부서는 보전부서였다. 입사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입사 초년생 시절의 웃지 못할 이야기가 문득 떠오를 때면, 그 날 일들이 몸서리쳐 온다. 모 자동차회사 엔진 가공라인 기계들은 첨단 기계들이라 작업이 없는 날을 잡아, 기계 점검 작업 및 사전 예방 작업을 한다. 그날도 예외 없이 기름으로 얼룩진, 기계 내부 NC, PC 자동제어 청소 및 주요 부품에 대해 예방 작업을 했다.

동료들과 오가는 농담 속에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기름으로 얼룩져 잘 닦이지 않자, 궁리하던 동료 한 사람이 어디서 갖고 왔는지, 두 대 되는 주전자에 휘발유를 담아 와서는 기계를 닦자고 한다. 휘발유로 기름때를 수월하게 닦고 있을 무렵 옆에 있던 "갑"이라는 동료가 생뚱맞게 "을"이라는 동료에게 묻는다.
"야! 을 여기 불붙이면 붙어 안 붙어?" 을이라는 동료 어이가 없어 기가 막히는 듯
"나 원 애들도 알겠다."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 “퍽”하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 있던 기름걸레에 불이 붙고 주전자에서도 불이 활활 타오른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이다. 워낙 일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열댓 명이나 되는 동료가 우왕좌왕 소리를 지른다. 불을 지른 갑이라는 동료는 얼마나 급했던지 휘발유 묻은 장갑 낀 손으로 불을 꺼려다 장갑에 불이 붙어,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고 비비고 난리일 때 누군가가 소리 질렀다.  
"장갑 벗어"
사람이 당황하면 침착해야 하는데, 막상 급한 일이 발생하니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차분히 대응하려는 자세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여러 사람이 합심한 결과 겨우 기름걸레에 붙은 불은 껐다. 여전히 주전자에서는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 만약에 주전자가 엎질러진다면 공장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는 건 시간문제다. 불을 붙인 "갑"이라는 동료는 어지간히 겁 했던지 이번에는 활활 불붙은 주전자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입으로 "후~" 하고 불타오르는 주전자에다 몇 차례 냅다 부는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아뿔싸 불춤을 추며 밀려갔다가 순식간에 밀려와서는 "갑" 얼굴에 불이 붙어 소리치는 갑을 옆에 동료가 수건으로 얼굴을 덮어 불은 꺼졌지만, 눈썹 머리카락이 그을려 생쥐도 저런 생쥐가 어디 있을까 싶었다.

이제 남은 건 주전자에 타오르는 불이 문제였다. 모두 주전자가 엎질러지면 큰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망설이는데 때마침, 옆을 지나던 일명 별명이 헐크라는 타 부서 동료가 그 광경이 우스웠는지, 꼬락서니가 우스웠던지, 거만한 투로 활활 타오르는 주전자에 안전화 신은 발로 주전자 위를 덮었다, 떼기를 반복하면서 비아냥대며 거들먹거리더니, 세상에나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헐크의 오른쪽 바지에 불이 붙어 일명 헐크가 날뛰기 시작한다. 미친년 널뛴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불붙은 다리를 들고 흔들다, 팔짝팔짝 뛰다, 그래도 불붙은 다리에 불이 안 꺼지니 죽는다고 소리를 꽥꽥거리며,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울부짖는 괴성이 평상시 헐크의 무게감 있는 모습은 어디 갔단 말인가? 세상에나 가관도 이런 가관을 볼 수 있을까 싶다. 공수부대 출신으로 무게 잡고 다니던 헐크였는데 체면이 말이 아니다. 범에게 물러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 급하면 앞뒤 겨룰 시간이 어디 있을까? 당장 눈앞의 현실을 모면하려는 발버둥 치는 본능이 앞서는 것을 어쩌라. 무심결에 사고를 겪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한가지일 거다. 날뛰는 헐크를 누군가가 쫓아다니며 불붙은 다리에 천을 덮어씌워 불을 껐지만, 헐크의 다리는 작업복이 눌어붙어 화상으로 검게 그을려 있었다. 헐크의 얼굴엔 식겁한 흔적만이 맴돌 뿐이다. 이제 조금은 진정을 찾은 동료들 활활 불붙어 오르는 주전자에 나무 널빤지를 덮어 공기를 차단하여 주전자의 불을 껐다. 주위에 소화기도 몇 대 있었는데 당황하니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5분 내외의 짧은 시간에 일어난 상황이 몇 시간이 지난 간듯하다.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화상을 입은 동료가 문제가 되었다.

화상 입은 헐크는 아직 채가시지 않은 두려움에 눈만 껌뻑이며, 구급차에 긴급히 실려 갔다. 짧은 시간에 일어난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들이다. 상식 밖의 일을 겪고 난 동료의 모습들 도무지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왜? 그랬느냐고 이유를 물어보니 "갑"은 단순히 장난삼아 라이터 불을 댕겼는데 불이 갑자기 번져 당황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온몸 전율이 부르르 떨리고 절로 웃음이 난다. 불조심!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말이다. 만약 그때 주전자 속의 휘발유가 엎질러졌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발생하였으리라. 직원끼리 조용히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불을 낸 갑이라는 동료의 얼굴과 일명 헐크라는 직원이 화상을 입어 내부적으로 처리될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 안전과에서 나와 경위를 조사하고, 불을 낸 갑이라는 동료는 반성문을 쓰고 경고 조치를 받은 것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헐크라는 직원은 두 달 가까이 병원에 화상으로 입원했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무엇이든, 빠르게 앞으로만 원칙 없이 치닫는 성급함이 뒤탈을 나게 한다. 교통사고나 산업 재해도 순간의 방심과 안일한 판단이 생명을 앗아가며, 뜻 없이 무심히 저지른 행동들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가져오기도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있듯이 조금은 느리게 가더라도 앞뒤를 살피는 여유가 필요하다. 어디에서나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말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할 안전이다. 안전한 생활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모두를 이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