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등산 인구가 천만이 넘는다고 한다.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산을 찾는 등산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등산을 삶의 여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정상에 오르면 내려와야 하는 진리, 한발 한발 힘겹게 산 정상에 올라 발아래 탁 터인,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만끽하는 그 기분은 맛본 사람만이 알리라. 한발 두발 오르는 걸음에 턱까지 차오른 가쁜 숨결은 일상의 고뇌인 양, 토해 버리고, 자연과 벗 삼아 걷는 인내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 등산의 묘미라 생각해 보기도 한다. 주말이면 허기진 산은 등산객으로 배를 채우려는 듯,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일상에 지친 몸을 더 높은 하늘과 산천, 맑은 공기와 계곡 물소리, 바람 소리를 벗 삼아 온몸에 흐르는 땀방울에 근심 걱정을 씻어내는 산행 힐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에게는 젊은 날 등산에 대한 일화가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필자가 총각 때의 일이다. 10월 첫째 주 황금연휴를 맡아 직장 동료 6명과 설악산 등산 계획을 세웠다. 청량리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설악산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도착하여 속초에서 아침을 먹고 설악산 오색 약수터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가 되었나 보다. 계획한 등산 코스는 오색 약수터로 올라 대청봉에서 일박하고 천불동 계곡을 타고 신흥사를 거쳐 구설악동으로 하산하는 코스였다. 그날따라 비가 많이 왔었다. 등산로 입구에서 도착한 일행은 일회용 우비를 갖춰 입고 등산로에 다다르니, 입산 금지 푯말이 붙어 있었다. 대청봉에서 일박할 요량으로 왔건만 낭패다. 산을 오르자는 동료와 내일 아침에 오르자는 동료 간의 의견이 분분하였다. 나는 비 내리는 산은 위험하니 아침에 오르자고 했건만, 대부분 젊은 혈기 왕성한 동료는 막무가내로 산에 오르자고 한다. 이때가 오후 3시가 넘었을 거다. 설악산 등산로 입구에 이르러 술을 챙기기로 한 일행이 술을 챙기지 못했단다. 산속의 밤은 추울 테니 술 한잔 하고 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여기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하였다.

일행 중 한 명과 필자와 술을 사서 뒤따라 올라갈 테니, 네 명의 동료에게 천천히 산에 오르라 하고는, 술을 사서 등산로 입구에 이르자, 설악산 관리소에서 출입을 통제한다. 같이 온 일행이 산에 올라갔다고 사정을 하였으나 가로막는다. 많은 등산객의 발길을 묶였다. 틈을 봐, 필자와 동료는 옆길로 새 들어가 일행을 따라잡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계곡에는 불어난 물로 계곡과 계곡 사이에 건너기 쉽게 밧줄을 묶어 놓았지만, 가파른 물살은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일행을 따라잡을 생각에 한참을 산에 올랐지만, 하산하는 사람뿐, 산을 오르는 사람은 없다. 조금은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오직 일행을 따라잡겠다는 일념으로 발걸음은 분주히 움직인다. 가도 가도 일행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인적 또한 없다. 금세 어두워지기 시작한 비 내리는 산속은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온몸은 비에 젖어 들어가고 왠지 모를 음습함이 주위를 가득 메운다. 내심 조바심이 더해가는 필자는 20m 뒤에서 느긋하게 뒤따르는 강원도 영월 출신 동료에게 서두를 것을 종용하여 보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산에 오른 지 세 시간이 지났을까? 비 내리는 산속의 어둠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와 사방을 암흑으로 물들인다. 내리는 빗속에 묻힌 산중의 어둠은 불빛 하나 찾아볼 수 없이 정적이 흐르며 바람에 묻어오는 새소리에 조급함이 더하여 불길한 예감이 휩싸일 즈음, 한참 뒤에서 따르던 동료는 큰일 났다 싶었던지 달음박질치듯 필자보다 앞서 발걸음을 놓으며 서두른다. 비닐 우비를 입었지만, 몸은 빗물로 흠뻑 젖었다. 한기가 온몸을 휘감고 전신이 천근만근 무겁다. 사방이 암흑으로 휩싸여 앞을 분간할 수 없다. 진퇴양난이다. 내려갈 수도 올라갈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오르지 올라야 살 수 있다는 일념뿐이다. 산속에서 길을 잃으면 산등성이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익히 알았기에 산등성이로만 발걸음을 내디딘다. 산속에서 길을 잃어 죽는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음습해 오는 불길한 예감이 언뜻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함께한 동료와 필자의 배낭에는 먹을거리만 담겨 있고 텐트는 다른 네 명의 배낭에 있다. 텐트라도 있으면 자고 날이 밝으면 길을 찾을 수 있으련만, 살길은 오직 대청봉 산장을 찾아야 꽁꽁 얼어붙은 몸을 녹일 수 있다. 한참을 올랐다고 생각했으나 제자리에서 뱅뱅 맴도는 느낌이다. 공포와 배고픔에 추위까지 인내력은 서서히 무너져간다. 함께한 동료와 필자는 시골 출신이라 산을 어느 정도는 안다고 자부하였건만, 처음 찾는 설악산과 추위와 어둠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몸은 한없이 무겁게 지쳐간다. 배고픔까지 밀려온다. 곱은 손으로 배낭에 있는 오징어를 꺼내어 씹어가며 서로 위로해 본다. 산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을 평소 조금은 의아스럽게 생각해 온 터였다. 막상 닥치고 보니 초조와 불안 공포, 10월 초지만 비에 젖은 산속의 체감 온도는 엄동설한 한파를 더한다. 사방을 분간할 수 없어 넘어지고 부딪히기를 반복, 풀썩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체온이 떨어진다면 죽는다. 정신을 차리고 움직여야 산다는 일념뿐이었다.

이리저리 한참을 길을 잃어 헤매며 산등성이로 올랐나 보다. 순간 먼발치에서 희미한 불빛에 인기척이 들리는 듯하다. 어두운 산속에서 들리는 인기척은 혹 산짐승인가 하여, 소스라치듯 머리카락이 쭈뼛 솟는다. 같이한 동료가 인기척이 들리는 쪽을 향해 냅다 소리를 질러댄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순간 깜짝 놀랐다.
“누구 계세요.”라고 소리를 지를 줄 알았는데,
“사람 살려!”라고 악을 쓰듯이 소리를 냅다 질러댄다. 동료는 표현은 안 했지만, 내심 불안하고 초조했는가 보다. 저 멀리서 화답으로 들려오는 소리
“게 뉘시오?” 라고 화답하는 말이 얼마나 반갑던지, 이제는 살았구나! 라는 생각 들었다. 다행히 거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 등산로였다. 빈 지게를 지고 홀로 손전등에 의지해 산길을 내려오고 계신 아저씨는 연세 지긋하신 대청봉 산장 짐꾼이 셨다. 우리를 보고는 기가 막힌 듯이 죽으려고 비 오는 험준한 설악산을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늦은 시간에 올라왔느냐고 나무라신다. 30분만 등성이를 따라 오르면 대청봉 불빛이 보일 거란다. 오랜 산지기 생활을 하신 탓인지, 어두운 산길에도 혼자서 내려가신다. 그때 그 아저씨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대청봉에 오르니 우박이 내려 산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10월 초 날씨였지만, 설악산 대청봉의 날씨는 한겨울을 연상케 했다. 젖은 옷은 뿌득뿌득 얼어있었다. 산장 주위에는 텐트들로 가득하다. 대청봉산장에 들어서니 아뿔싸! 사람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먼저 올라간 일행이 있나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설사 먼저 와 텐트를 쳤다 해도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한기가 드는 언 몸에 앉을 틈도 없이, 겨우 서 있기에도 복잡하다. 선 채로 밤을 지새울 수는 없었다. 추위는 피할 수 있었으나 눅눅하게 젖은 몸에 피곤함 몰려와 졸리기까지 하다. 때마침 옆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귀에 쏙 들어온다. 텐트를 가지고 왔는데 추워서 텐트를 칠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다. 즉시 우리가 거들고 나서며, 우리가 텐트를 칠 테니 같이 묵으면 안 되겠노라고 청한다. 다행히 흔쾌히 응한다. 우리 또래로 보이는 남자 세 명이 서울에서 왔는데 이 사람들도 우리보다 한 시간쯤 앞서 도착했단다. 바람 부는 대청봉은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는 되는 듯이 추웠다. 텐트를 가지고 적당한 자리를 잡고 합심해서 텐트를 쳤다. 텐트라 해봐야 3인용에다 바람막이도 없는 텐트였다. 그렇지만 이만한 개 어딘가 싶었다. 젖은 옷, 신발을 다 벗고 놓고 다섯 명이 함께한 좁은 텐트지만, 바람을 막을 수 있고 사람의 훈기가 있어, 언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리고 추위가 가시니 시장기가 덮쳤다. 라면이라도 끊어 먹을 요량으로 우리가 짊어지고 온 배낭에 있는 라면을 꺼내어, 서울 사람들이 갖고 온 버너에 불을 붙이려는데 버너에 불이 잘 붙지 않는다. 몇 번이고 시도하다 불이 붙는가 싶더니, 이번엔 순간적으로 “퍽”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번쩍인다. 머리카락, 눈썹이 거슬리고 다리에도 불이 붙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질러대는 비명, 다행히 화상은 없었지만, 노린내로 가득하다. 고산지대라 버너 가스가 텐트 바닥에 깔려 불꽃이 튀는 순간 불이 붙은 것이다. 환기를 시킨 후 라면을 끓여 먹고, 동료와 헤어지게 한 발단의 술로 몸을 녹인 후, 피곤이 몰려와 금세 곯아떨어졌다. 그나마 추위를 피해 하룻밤을 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바짝 얼어 있는 바지와 신발을 버너로 대충 녹인 후, 젖은 옷을 입을 즈음 헤어졌던 우리 동료들이 흩어져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몇십년 만에 극적인 해후를 하듯이 반가움이 더한다. 자초지종인즉슨 오색 약수터에서 우리가 술을 사러 간 사이 등산로 진입로에서 설악산 관리소에서 입산을 통제해 우리를 기다렸는데, 오지 않아 우리가 술 사러 간 곳으로 갔지만 없더란다. 길이 엇나간 것은 등산로로 올라오는 곳에 관광버스가 한 대 서 있었는데 우리를 기다리는 일행은 관광버스 반대편에 서 있어, 서로를 보지 못해 결국 길이 어긋난 것이었다. 산 밑에 있던 동료는 출입사무소에 연락하고 파출소에 연락을 취해보고 집으로도 연락을 취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새벽같이 대청봉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설악산 계곡에서 불어난 물로 계곡에서 세 명이 익사체로 발견되었다니 오죽했으랴, 산에 오른 우리는 우리 대로 고생하였고, 우리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새운 동료들, 서로에게 악몽 같은 날이었다. 요즘 같으면 휴대폰이라도 있어 바로 연락을 취하면 간단했을 텐데 그 당시 휴대전화가 어디엔들 있던 시절이었던가! 함께한 동료와 설악산 대청봉에서 만나 일출을 기다렸지만, 그날따라 일출은 볼 수 없었다. 우리 일행은 대청봉에서 상봉 기념 사진을 몇 장 찍고, 간단히 요기 한 후 하산을 하였다.

젊은 날, 무모한 등산에서 얻은 서툰 경험이 두고두고 교훈으로 남아있다. 요즘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시간이 나는 휴일이면, 서울 근교 산들을 자주 찾는다. 등산이 건강에 좋은 이유를 몇 가지 꼽는다면, 첫째로 근력이 강화되고 심폐기능이 좋아지고 혈관과 말초신경을 강하시킨다. 둘째로 일상에 겹친 스트레스를 자연과 벗 삼아 풀 수 있다. 셋째로 지방을 연소시켜 살이 빠지며 신진대사가 좋아진다. 넷째로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그리고 등산을 할 때 주의할 점은 산을 오르기 전 일기예보를 알아야 하며, 산은 해발이 높을수록 기온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옷은 여벌 옷이나 바람막이 등은 필수로 챙겨야 한다. 새벽이나 밤 등산 시에는 전등을 꼭 챙겨야 하며, 등산으로 흘린 수분 보충을 위해 물, 오이, 등을 챙기는 것이 좋다. 충전이 잘된 휴대폰도 꼭 챙겨야 한다. 등산 시 등산화는 필수 중의 필수이다. 그리고 배낭의 무게는 자신의 몸무게의 10%가 넘지 않는 것이 좋다. 등산은 하산할 때 많은 사고가 뒤따르는데 하산할 때는 몸무게의 3~5배가 앞으로 쏠리기 때문에 무릎 연골 파열에 조심해야 한다. 특히 중장년층에 자주 발생하므로 내려올 때 무릎을 약간 굽히고 좁은 보폭을 유지하는 것이 좋으며 발바닥 전체로 땅을 딛고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의욕이 앞서는 무리한 등산은 삼가기를 당부한다. 요즘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산을 찾는다. 등산은 육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좋다. 팍팍한 콘크리트 삶에서 벗어나 일상의 스트레스도 풀 겸 건강한 삶의 활력을 위해서라도 자연과 함께하는 등산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