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으로 말미암아 소, 돼지가 살 처분되는 안타까운 광경에 가슴이 아리다. 농촌에서 유년기를 보냈는지라, 소는 가축이기 전에 식구나 다름없기에 소중히 여긴다. 내 고향 경북 울진군 근남면 성산동,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50여 세대가 옹기종기 터를 이루며 법 없이도 살 법한, 인심 좋은 곳이었다. 어릴 적 기억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소(牛)에 얽힌 추억이다.

소(牛)는 여느 농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각별한 가축이다. 재산 목록 1호이기도 하다. 자신은 굶어도 소에게는 여물을 먼저 주고 난 다음, 자신이 밥 먹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여느 집이나 다름이 없이 우리 집에서도 소를 키웠다. 쇠죽을 주시면서도 어머니께서는 자식 돌보듯 알 듯 말 듯 한 말로, 소와 대화하시는 걸 보고 자랐다. 봄이오면 농촌은 일 년 농사 준비에 분주하다. 논갈이 밭갈이에는 소를 이용하여 쟁기로 논, 밭을 갈아엎는다. 요즘은 농기계가 다양화되어 논, 밭갈이를 농기계를 이용하여 농사를 수월하게 짓지만, 예전에는 농가에서는 소를 이용하여 쟁기질하여 논, 밭갈이하고 손수레를 끌 때도 소를 이용하여 물건을 싣고 나르곤 하였다. 농촌에서의 소는 일꾼 중 상일꾼이었다.

초목이 무성해 질 무렵이면 동네 또래들과 어울려 산과 강으로 소에게 풀을 먹이러 간다. 방학 전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동네 사람들과 공동으로 산에 소를 방목하여 놓으면, 방과 후에 산에 방목해 놓은 소를 찾으러 간다. 봄부터 가을까지 소먹이는 계속된다. 우리 집 소는 당연히 내 담당이었다. 산에 방목해 놓은 소를 찾으러 가는 일을 “소 몰러 간다고” 우리는 표현했다. 소 몰러 조금 일찍 가는 날이면, 동네 개구쟁이들과 밀 서리, 콩 서리 감자, 고구마 서리를 하여 구워 먹으면, 입 주위가 굴뚝처럼 시커멓게 검정이 묻어난 모습을 보며 서로 깔깔거리며 웃곤 했었다. 나는 소 먹이러 가는 것과 소 몰러 가는 일이 정말 싫었다. 유별나게 남다른 우리 집 소 때문이다. 다른 소들은 어두워지면 알아서 내려와 고삐를 묶어 집으로 돌아오지만, 우리 소는 어두워도 내려오지를 않는다. 꼭 혼자 해 저문 산 위로 소를 찾는 번거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린 산속을 어린아이가 혼자 올라간다면 요즘 아이들은 상상이 가려나 모르겠다. 소 몰러 가면 당연히 소를 찾아 몰고 와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소를 찾으러 어두워진 산 위로 올라가면서 귀를 기울인다. 멀리서 기척 소리가 들려오면 분명히 우리 소가 있다. 정신없이 풀을 뜯어 먹는 소의 위치를 찾아 소보다 위쪽으로 올라가 소가 아래로 내려가도록, 돌이나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쫓아 내린다. 쫓아 내린다고 소가 알아서 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옆으로 가고 위로도 가는 소와 한참을 승강이를 벌이다 겨우 산밑으로 유도하여 소를 몰고 집으로 온다. 빈번하게 이러한 일이 많다 보니, 아버지를 졸라 워낭을 달아 주도록 말씀드려 목에 워낭을 매달아 놓았다. 그래야 어두워진 산중에서 워낭 소리를 듣고 소를 찾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워낭을 달고부터는 소를 찾기가 조금은 수월했다. 컴컴한 산속에서 소를 쫓다 가시나 덤불에 걸려 피가 나기도 하고, 풀벌레 쏘이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걸려 때굴때굴 굴러 눈을 떠보면,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의 별은 소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초롱이 내리고, 산 짐승 소리와 산새 소리에 겁도 나련마는 소년은 오로지 소를 찾아 집에 가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기에 무서움 따윈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어느 때는 소를 찾지도 못하고 털레털레 집에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와 형들이 소를 찾으러 나가곤 하였다. 새벽녘이나 되어서야 남의 산소에 앉아 있는 소를 몰고 오시기도 하였다. 어린 기억에 소를 잃어버리면 소는 꼭, 산소는 주변에서 앉아 있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때는 아버지도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러면 새벽녘에 자기 집이라고 혼자서 외양간에 들어와 있기도 하였던 말썽꾸러기 소였다. 때때로 산에 풀어놓은 우리 소는 해저 물기 전 아직 때 이른 시간인데도 내려와 남의 밭을 헤집고 다니며, 곡식을 뜯어 먹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또래들과 어울려 공기놀이도 하고 정신없이 놀고 있는데, 저 멀리서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소 봐라." “소 봐라.” 하는 소리가 메아리로 울리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십중팔구는 우리 소가 남의 밭을 휘젓고 있기 때문이다.
"네 이놈 뭐 했길래, 소가 밭에 내려오는 것도 모르고 놀고 있어."
동네 어른들께 꿀밤도 여러 차례 얻어맞았다. 유난히 별난 우리 집 소가 나는 정말 싫었다. 송아지를 낳으면 집에 두고 온 송아지가 애가 쓰였는지 해가 저물기도 전, 혼자서 집으로 돌아와 송아지에게 젖 물리기도 했다. 송아지가 커서 읍내 장터에 아버지께서 팔고 오는 날은, 어미 소는 송아지를 찾아 밤새도록 목쉰 울음이 가랑가랑하게 밤하늘에 울려 퍼질 때, 소년도 잠결에 함께 울었다.

그러던 우리 집 소가 중학교 때 누나 결혼 자금을 궁리하시던 아버지께서 소를 팔기로 하셨다. 도축장으로 끌러 갈 거란, 아버지의 말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장터로 팔려가던 날, 나는 “잘 가거라”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소가 읍내 장터로 팔러 가던 날 아침, 평소보다 많은 쇠죽을 정성껏 끓여주고

“많이 먹고 잘 가거라” 하시며 소머리를 쓸어 줄 때, 큰 두 눈망울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평소 쇠죽을 끓여주면 죽통을 깔끔히 비우던 소였지만, 여물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나설 때, 어머니도 울고 나도 울고 소도 음매 하고 울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다. 동구 밖까지 울며 가던, 우리 소 울음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두 눈망울에 흘러내리던 소의 눈물을 난 잊을 수 없다. 요즘은 일반 농가에서는 소를 키우는 집이 드문 것으로 안다. 예전엔 겨울이면 볏짚, 쌀뜨물 등을 가마솥에 넣고 아궁이에 불을 때어 쇠죽을 끓이던 그 시절이 그립다. 봄부터 초가을까지 동네 소들을 산에 방목하여 놓고 놀던 동무들도 그립다. 이제 소먹이 하던 날들은 아득한 옛이야기 전설 속으로 사라진 현실이 안타까움을 넘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