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내 고향 5월이면 찔레꽃이 산들에 피어나지요. 찔레꽃 필 무렵이면 향기가 온 마을에 진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얀 찔레꽃이 필 때, 바람결에 실려 오던 풋풋한 향기는, 하늘에서 풍기는 어머니 젖 내음 같습니다. 찔레꽃을 보고 있노라면, 아린 듯하면서도 포근하게 가슴에 담겨옵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한 많은 삶이 서럽게 비취어지는 꽃입니다. 하얀 꽃잎에 노란 꽃술이 우리 민족의 애환이 담긴 향기 같습니다. 하얀 찔레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날이면, 먼 하늘 아른거리는 바람에 울 어머니 흰 치마저고리 곱게 꽃단장하시고, 사뿐히 나들이 오시듯 가슴이 울렁입니다. 어릴 때 찔레 줄기 순을 꺾어 먹던, 그 맛을 잊을 수 없답니다. 봄의 속살같이 씁쓸하면서도, 달짝지근한 그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찔레꽃은 양지바른 야산이나 계곡 등에 피어나는 우리나라 꽃이지요. 봄밤에 서러운 찔레 사연이 소쩍새 울음에 담겨 피어나는, 찔레꽃 사연을 들으니 더욱 애틋합니다.

구전으로 전해오는 설화에는 찔레는 여자였다고 합니다. 고려 때, 매년 몽골에 처녀를 바치는 관례가 있었는데, 아마 찔레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몽골의 찔레의 주인은 심성이 착한 찔레를 어여삐 여겨 수양딸로 삼았다고 합니다. 찔레의 생활은 그나마 고려에 있을 때보다는 호화로웠으나, 찔레는 그리운 고향과 부모와 동생들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답니다. 향수병으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찔레는, 가난해도 고향이 좋고, 지위가 낮아도 부모 형제가 좋고, 남루한 옷을 입어도 내 가족과 얼굴을 맞대며 사는 것이 좋았을 찔레였겠지요. 찔레의 향수는 무엇으로도 달랠 수가 없어 눈물로 지새우던 어느 날, 찔레를 가엾게 여긴 주인은 사람을 보내, 찔레의 가족을 찾아오라 했으나,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답니다. 낙담한 찔레는 눈물로 지새는 나날이 계속되자, 주인은 딱히 도리가 없어 가족을 찾으라고 찔레를 고향으로 보내 주었답니다. 고려의 고향 집에 도착한 찔레는 부모와 동생의 이름을 불렀지만, 집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찔레는 방방곡곡을 부모 형제를 찾아 산천을 누렸지만, 그리운 가족을 끝내 찾지 못했답니다. 크나큰 슬픔에 잠긴 찔레는, 부모와 동생을 찾아 헤매다, 가엽게도 죽었다고 합니다. 찔레가 방방곡곡 찾아다닌 곳마다, 찔레꽃으로 피어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찔레꽃은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꽃이지요.

찔레꽃은 꽃잎이 마르면서 내뿜는 특유의 향기는 더욱 진합니다. 장미과에 속하는 찔레꽃은, 꽃의 아름다움보다는, 우리 겨레의 마음같이 수수하게 다가옵니다. 민족의 애환이 서려 있는 꽃으로 꽃말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라 합니다. 순박한 찔레꽃 향기에 심취해 그리운 어머니가 생각나는 까닭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산하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찔레 넝쿨입니다. 보면 볼수록 참으로 정감이 가는 우리의 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꽃잎도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하얀 색이고, 향기도 어떤 꽃에 비해 특유의 개성이 묻어나고 진합니다. 인터넷 사이트 다음 '웹서핑(web surfing)'에서 찔레꽃 사연을 우연히 접하고 나서 더욱이 정감이 가는 꽃입니다. 오늘 하루 찔레꽃 향에 흠씬 취해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을 어머니를 불러보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