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정대수
ㆍ작성일	2022-05-17 14:22

ㆍIP: 123.xxx.203

마을버스

종로3가역 9번 출구로 나오면 12번 마을버스 정거장이 있다. 한때 개봉관으로 명성을 날렸던 단성사는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고 그 자리에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서 이름도 단성 골드 빌딩으로 바꿔 출구와 연결되어 있다. 9번 출구 계단을 올라서면 우측으로 종로 3가 치안센터, 종로소방서, 종로 3가 119 안전센터와 귀금속 주얼리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버스는 서울대학교 병원 현관을 출발해서 원남동 로터리로 나와 종로 5, 4가를 지나 종로3가역에서 국악로 거리를 달려 창덕궁 앞을 돌아 원남동 로터리로 다시 와서 성균관대학교 입구를 지나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에서 서울대학교 병원 후문에 도착하는 순환버스다. 특히 종로3가역은 1,3,5호선 3개 노선의 전철이 다니기 때문에 아침에는 출근길 직장인들과 서울대학교 병원을 가는 사람들로 작은 덩치의 버스에 버겁게 태운다. 그렇게 연두색의 아담한 버스는 종로의 한 부분을 쳇바퀴를 돌듯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고 병원으로 가는 마을버스이니 당연히 연로하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많이 이용한다.

버스는 06시 운행되는 첫차부터 오후 11:30분 막차까지 6~9분 간격으로 배차된다. 9번 출구를 나가면 오른쪽으로 버스가 정차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정거장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오는 버스를 탄다. 오전 8:40분에 정거장은 줄을 서있는 다양한 모습들의 사람들이 보인다. 어쩌다가 버스가 좀 늦게 오면 줄은 꼬리가 길어지고 사람들은 버스가 오는 방향을 번갈아가며 연신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것이 흡사 사막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미어캣을 연상하게 한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아침에 버스는 콩나물시루가 되기 때문에 꼭 출근시간대에 병원을 가야 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사정이 있을 것이다. 종로3가 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창덕궁 앞 정거장에서 내린다. 거리는 500m 정도로 두 정거장이다. 내가 일하는 작은 회사가 있는 곳이고 종로3가역에서 걸어 다니던 길이다.

정거장에 버스가 도착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줄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타는 분들도 있지만 그러려니 한다. 그리고 문 옆으로 "서울대학교 병원 타세요"라고 붉은색 글씨가 크게 붙어 있어도 확인차 꼭 물어본다.
"서울대병원 가요?"

(사투리 부분 중략)

겨우겨우 버스의 두 계단을 올라서도 노약자 석은 두 자리뿐이라서 불편함 몸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앓는 소리도 함께 덜컹거리며 달리는 것이 시골버스 마냥 정감이 느껴진다.

걸어 다니던 길을 마을버스를 타게 된 이유는 허리가 아프면 서다. 허리가 아프게 된 데는 지난 2021년 9월 추석 무렵으로 돌아가야 한다.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하던 때에 어머니(5.25)와 아내(9.30)가 몇 달 사이로 하늘나라에 가고 21년 추석이 가까워지면서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왠지 자꾸 마음이 공허해지기 시작했다. 코로나 펜데믹 장기화는 사람들의 이동을 자제시켰지만 고향을 향한 사람들의 의지가 강했는지 이동하는 사람들로 도로며 대중교통이 혼잡하다는 뉴스를 듣고 보면서 갈 곳이 없어진 나는 심경이 어수선하고, 고독과 외로움, 우울감에 몸과 마음이 허전하다 못해 괴롭기까지 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친구여, 나와 함께 슬퍼해주십시요.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모짜르트는 자신의 어머니가 파리에서 죽자 브링겔 신부에게 슬픔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20대의 모짜르트나 60대가 된 사람이나 이별의 슬픔과 아픔의 강도가 같은 것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 더 나약해진 마음때문인지 일년이 지났음에도 문득문득 살아 나는 기억들이 추석이 되어 무겁게 내려 앉았다.

그래서 산으로 갔다. 산은 놀이터, 보물창고, 고향 같으며, 말없는 친구다. 산속에 들어가면 잡념도 없어지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산은 나의 마음을 아는 것 같다. 올라와라, 내려가라, 빨리 가자, 천천히 가자 보채지도 않는 가을 산의 마력에 홀릭되어 매일 갔다. 추석 여휴 5일간을 김밥 한 줄과 막걸리 한 병, 땅콩, 멸치를 가방에 넣고 거의 미친놈처럼 오랜 시간을 다니다 밤이 되어 버스 정거장에 넋을 놓고 앉아 있으면 지나가던 버스가 와서 타라고 경적을 울려주기도 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녹초가 되어 집에 와서 땀과 먼지를 씻어내면 잡념이고 뭐고 쓰러져 꿀잠을 잔다.

연휴가 끝나고 일도 미친 듯이 했다. 종일 서서 하는 일이다. 무거운 것도 수시로 들어야 한다. 가끔 술도 마셨다. 그렇게 한 달여 정도 지날 무렵 허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허리에 파스를 붙이면서도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다.
"허리가 왜 이렇게 아프지?"
"잠을 잘 못 잤나?"
"무거운 걸 들어서 그런가?"
"나이 탓인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 말겠지 하며 병원을 갈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점점 심해지더니 가끔 뜨끔 거리던 것이 가만히 있어도 표현하기도 애매하게 꾀병 같은 통증이 계속 느껴지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앉았다가 일어서면 구부정하게 걸어야 되고 누웠다 일어나는 것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팠다. 허리가 아프니 하던 일에도 지장이 있고, 빨리 걸을 수도 없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손잡이를 잡아야 했다. 덕분에 계단에 설치된 핸드레일의 고마움은 알게 되었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트는 소중한 이동 수단이 되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 전국 장애인 단체에서 이동권을 요구하는 시위가 지하철과 버스에서 벌어져 출근시간대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은 일이 있었다. 나도 허리가 아파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보고서야 그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건강할 때는 모르지만 아프고 장애가 있어야 알게 되는 웃픈 현실이 바로 우리 앞에 있다.

결국 독립문역 근처에 있는 세란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신경외과로 예약을 해준다. 허리가 아프면 정형외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이었다. 종합병원은 아픈 사람들로 북적인다. 접수를 하고 번호를 뽑아 순서를 기다리다 진료실로 갔더니 의사는 일단 X-ray를 찍고 오라고 한다. 그리고 자세가 바르면 괜찮은데 허리를 움직이면 뼈와 뼈가 마찰을 일으켜 통증이 온다고 하면서 무리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약을 처방해주며 물리치료를 받으란다. 한 시간에 걸쳐 찜질, 전기 맛사지, 원적외선 등의 치료를 받고 나오니 그런대로 조금 좋아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환자가 되어 마을버스를 타게 된 것이다.

버스를 타면 카드 기계음이 승객을 먼저 맞이 한다.
"마스크를 착용하세요."
"환승입니다."
"승차입니다."
운전자도 손님에게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운전자의 부지런한 인사와는 반면 아무런 대꾸도 없이 핸드폰만 쳐다보는 무덤덤한 사람들이 야속하기도 하다.

의사는 무리해서 아프다고 했다. 국어사전에서 무리는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거나 정도에서 지나치게 벗어남"이라고 한다. 지나치게 뭘 했을까. 속된 말로 밤일을 열심히 할 상대도 없는데 무엇으로 무리를 했을까를 되짚어보니 환갑의 나이에 무리한 산행이 원인이었던 것 같았다. 설마 그런다고 허리가 그렇게나 아플까를 의심하면서 10일간 약을 먹으며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진통제가 포함되어서 그런지 날이 가면서 허리는 좋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무리를 하면 통증이 느껴진다. 과유불급이었다. 마음의 병은 좀 멀어졌는데 몸이 병을 얻고 말았고 지금까지 마을버스를 타는 고객이 되었다는 씁쓸하고 애잔한 이야기다.

박희홍

2022-05-17 16:24

`정대수`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존경하는 정대수 작가님

<정거장에 버스가 도착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줄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타는 분들도 있지만
그러려니 한다. 그리고 문 옆으로
"서울대학교 병원 타세요"라고
붉은색 글씨가 크게 붙어 있어도
확인차 꼭 물어본다.
"서울대병원 가요?" “으 >마을버스가
일찍 출발하고 늦은 밤까지 운행하는
서울은 역시 최고군요.
그만큼 이동인구가 많다는 뜻이겠지요.
<흡사 사막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미어캣을 연상하는 사람들.
우리들의 습성을 잘도 표현하셨군요.
즐감하고 배워갑니다. 고맙습니다.

가정의 달 오월도 중순을 넘어
하순으로 진입하려 합니다.
하시는 일과 하시려는 일 위에
신의 가호가 충만하여 술술 잘 풀리길
두 손 모아 봅니다.

정대수 작가님
즐겁게 많이 웃으시면서 행복하고 강건하세요.


정대수	존경하는 박희홍 시인님 반갑습니다. 서울시도 알고 보면 후미진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마을 버스가 구석구석 다니고 있지요. 때로는 동네 구경하기에도 좋습니다.ㅎ 바쁘신 중에도 부족한 글을 읽고 격려의 글 남겨주시니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봄은 이제 여름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는 듯 합니다. 코로나, 환절기에 모쪼록 건강 잘 챙기시고 가정의 달 가내 평안과 행복을 기원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5/18 16:20

염규식

2022-05-18 10:24

`정대수`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작가님의 마을 버스 감사히 배독합니다
주로 연로하신분께서 마을 버스를 많이 애용하고
이곳 부산은 산복도로가 많아서 마을 버스가 타 지방보다 유난히 많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늘 향필하십시요--*


정대수	존경하는 염규식 작가님 반갑습니다. 얼마전에 티비 생활의 달인 프로에서 부산의 산복도로 대형 버스를운전하시는 분이 출연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운전이 정말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것 같이 아슬아슬해서 손에 땀이 날 정도 였지요. 바쁘신 중에도 부족한 글을 읽어시고 격려를 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봄은 이제 여름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는 듯 합니다. 코로나, 환절기에 모쪼록 건강 잘 챙기시고 가정의 달 가내 평안과 행복을 기원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5/18 16:26

염경희

2022-05-20 17:00

`정대수`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존경하는 작가님!
마을버스에 관한 이야기 잘 배람했습니다
저는 아직 마을버스는 익숙하지않아 노선도 제대로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심한 운동으로 허리가 많이 아프셨군요~~
나이가 들면 산행보다 평지를 걸어야 된다는데
평지는 좀 답답하지요
산에가야 이런저런 나무도, 식물도 보면서 힐링이 되는데요
금요일입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늘 향필하세요
감사하게 잘 쉬어갑니다


정대수	존경하는 염경희 작가님 반갑습니다. 서울의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지만 구석구석까지는 미치지 못하여 마을버스 덕을 보는 사람들이 많지요. 작가님 바쁘신 중에도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소중한 글 남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가정의 달 오월도 후반으로 가고 있습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고 가내 평안과 행복을 기원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5/2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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