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정대수
ㆍ작성일	2021-12-23 14:14

ㆍIP: 123.xxx.203

12월이 되면

12월이 되면 한 해의 성적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노력하고 수고한 결과에 만족하는가 하면, 반대로 반성을 하면서, 다시 계획을 세우고, 마음도 새롭게 다지고, 목적한 바를 다음 해는 꼭 이루기를 결심하기도 한다. 교회, 성당, 사찰 등에서도 새해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점술가, 철학원에도 발길은 이어지고, 해돋이 명소에는 코로나19와 추위가 무색하리만치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마음의 소원을 빈다. 꿈과 희망으로 부풀어 시작된 해가 날이 가면서 의지는 약해지고, 계획도 줄어들고, 급기야 미루기까지 하다가 하나씩 포기하며 지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 달, 두 달 지나다가 다시 12월이 되면 밀린 숙제를 하듯, 미뤘던 일을 하듯, 마라톤 선수가 멀어진 거리를 좁히기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쏟아내듯 마음이 바빠진다.

12월이 되면 월동준비를 끝내고, 절기상으로는 대설과 동지가 있고, 성탄절이 있어서 길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간간히 흘러나오고, 땡그랑 땡그랑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가 연말을 실감케 하면서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진다. 게다가 TV, 라디오, 유튜브, 각종 방송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한 해가 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광화문에는 "사랑의 온도탑"을 세우고 사람들의 온정을 기다리고, 개인, 회사, 그룹, 단체, 기관 등에서는 연래 행사처럼 기부가 이어진다. 기업과 기관들은 종무식을 하고 사람들은 모임과 망년회로 한 해를 갈무리 한다.

11월부터 시작된 "위드 코로나"는 사람들을 들뜨게 했다. 이제 살았다고 했다. 조였던 숨통이 트이자 사람들은 모임과 행사에 열을 올렸고, 못다 한 축제도 열고, 시장에도 활기가 돌았다. 상인들은 그동안의 적자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연말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전철, 버스, 거리와, 상점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모처럼 모인 사람들은 한껏 고조되어 보였고, 기뻐했다. 노래방의 노랫소리가 상가를 요란하게 만들고 사람 사는 것 같은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등장으로 일상 회복이 점점 불안했다.

12월이 되면 일상 회복 2단계를 기대했다. 코로나는 그때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급속히 늘어난 확진자는 급기야 7 천명대를 웃돌았다. 13일부터 실시된 방역 패스는 효과가 없었고, 위중증 환자의 병상이 부족한 사태에 이르자 위드 코로나 45일 만에 정부는 단계적 일상 회복을 멈춘다고 하고, 16일 거리두기 재조정을 발표했다. 18일부터 전국 사적 모임은 4명으로 제한하고 식당, 카페, 노래방 영업시간도 밤 9시로 단축한다는 발표와 문재인 대통령도 사과했다. 22년 1월 2일까지 16일간의 거리두기에 연말 특수가 물 건너가자 상인들은 다시 울상이 되었고, 22일 광화문에서 자영업자들이 대규모 궐기를 한단다. 12월은 만만히 넘길 달이 아니었다.

12월이 되면 나는 겁난다. 추위보다 더 무서운 게 가난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가난과 지독하게 싸웠지만 어머니에게 덮친 병마는 가난이라는 올무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가난하면 몸이라도 건강해야 할 텐데 못 먹고 힘들게 일을 하다 보니 몸이 망가진 것이다. 비빌 언덕도 없는 객지에서 맨손으로 일어서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란 걸 그때 알았다. 그래서 지금도 12월이 되면 무섭다. 90년대 서울에서 생활할 때 나는 난방용 도시가스를 여러 해 끊었던 적이 있었다. 집이 오래되고, 외풍이 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스비가 너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고액의 가스비에 비해 집이라도 따뜻했으면 참았을 텐데 너무 추우니 억울해서 가스공사 사람도 불러서 가스가 어디에서 새는 것인지, 계량기가 오작동을 하는 것인지를 따져보았지만 별 대책이 없기에 화가 나서 극단의 처방으로 도시가스를 끊고 전기난로와 전기장판으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나마 젊을 때니까 견뎠지 지금 생각해보면 끔찍하다.

12월이 되면 혹한보다 더 무서운 가난, 그보다 더 두려운 외로움을 이겨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나이가 많으면 더하고, 몸까지 아프면 절망적이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몰라서, 어려워서, 힘들어서, 창피해서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기부나, 자원봉사 단체는 연말이 되면 연탄, 쌀, 라면, 부식재료, 집수리, 옷, 이불 등을 독거노인, 쪽방촌, 소년가장, 소녀가장, 장애인 등의 가정으로 찾아다니며 전달을 하고 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이것도 점점 참여율이 낮아진다는데 코로나로 더 부진하다는 방송을 접하면 걱정이 된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코로나가 제일 무서운 것으로 자리바꿈을 하였다.

우연히 인터넷을 뒤지다가 세계적인 면세점 DFS(듀티 프리 쇼퍼즈)의 공동창업자 척 피니( C.F. Chuck Feeney)의 기부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기부가 다 그렇지 뭐."
"생색이나 내고, 방송 좀 타고, 세상에 이슈가 되는 것이겠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부정적이다. 그렇게 넘기려다가 자세히 보게 된 것은 일반적인 기업가나 유명인들의 기부와는 좀 달랐기 때문이다. 주변의 시선, 기업의 위신, 유명세, 정치적 압박으로 마지못해 던져주는 듯한 기부와는 차원이 달랐다. 피니의 기부에는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마태복음 6장 3,4절)

"내게는 절대 변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부를 사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략)
"우리 부모님은 열심히 일했지만 부자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늘 살피고 도와주셨습니다."

검소함은 일상이었고, 돈밖에 모르는 무서운 사람, 구두쇠, 스크루지라는 오해를 받아가면서 기부를 했다.
"그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 없습니다."는 그의 검소함을 보여주는 명언이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겪으면서도 부모님으로부터 보고 배운 것을 실천하되 성경을 바탕으로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피니는 어디에 얼마가 기부되는지, 또 기부받는 사람이 누군지, 기부를 받는 사람도 누가 도와주는지 조차 몰라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기부자와 수혜자의 관계가 알려지면 기부는 즉시 끊어진다고 했다. 25년에 걸쳐 4조 원이라는 어머어마한 기부가 드러나지 않고 지속되었던 것은 철저한 비밀이었다. 1997년 1월에 DFS를 일부 매각하며 회계장부가 공개되면서 그의 기부가 드러나게 되었고, 38년간 9조 4천억 원에 이르는 기부를 하며 그는 꿈과 행복을 찾았다고 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신념으로 살면서 다 이룬 것이다. 돈을 버는데도 열심이었고 돈을 나누는 대도 열심이었던 피니의 기부 이야기는 "아름다운 부자 척 피니"라는 책으로 "코너 오클리어리" 작가에 의해 출간되면서 날개를 달고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척 피니"가 6.25 전쟁 참전 용사였단다.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오래전 기부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부터 기부를 생활화하며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품앗이라는 전통이 있었고, 가족, 이웃, 동네에서 옷, 책, 가방, 모자, 신발 등을 기부하듯 대물림하여 나누어 쓰고 있었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것을 나누는 이름 없는 기부천사들이 있다. 그들로 인해서 나라와 사회가 밝아지고, 이웃 간에 정이 있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콩 한쪽도 나눠 먹어라."는 우리 민족의 밑바탕에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기부에는 재능기부, 봉사활동, 물품 기부, 헌혈 기부 등이 있는데 "네이버 해피빈"에서는 다양한 기부 방법으로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12월 초에 아들이 전화를 받고 외출을 하기에 물어보았다.
"어디가?"
"응, 헌혈하러"
"헌혈을 하라고 전화도 해?"
"피가 부족한가 봐."
"헌혈은 얼마나 해?"
"필요하다고 하면 해야지."
무심한 듯 말하지만 아들의 헌혈은 어림잡아 수십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모든 게 못마땅해서 잔소리만 했던 것이 미안하고, 대견하고, 고맙게 느끼지는 순간이었다.
헌혈은 피를 나눌 뿐만 아니라 생명을 나누는 기부였기에

12월이 되면 어머니는 김장을 하시고,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을 만들 준비를 했다. 예전에는 카드가 제법 비싸게 판매되었기에 살 엄두를 못 냈다. 그래서 사용하던 재료들로 만들면 비용도 절감할 수 있고, 나름대로 의미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레용, 물감, 붓, 도화지, 한지, 풀, 반짝이, 봉투, 칼, 가위 등 집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한다. 카드를 만들기에는 인내와 집중력이 요구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종이를 자르고, 크기에 맞게 접고, 속지로 한지를 붙이고, 마음에 담은 글을 쓰고, 물감과 붓으로 그림도 그린 후, 반짝이로 마감을 하고, 봉투에 넣는 작업이 거의 스무날이 걸린다. 작은 방의 한쪽 귀퉁이는 나의 작업장이 되고, 밥상은 작업대가 되어, 5w 꼬마전구가 불을 밝히고, 새벽까지 작업은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칼날에 손가락도 베이고, 밤잠도 많이 반납하고, 노는 시간도 없이 만들어도 숫자가 적어 친구들과 가까운 분들에게만 보낸다.
"이제 그만하고 자거라."
"참 이쁘구나. 내다 팔아도 되겠다."
어머니는 만들어지는 카드를 보시면서 칭찬을 하셨는데 어머니, 아버지께 카드 한 장 드리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되고 내내 마음이 아픈 달이기도 하다.

언젠가 보신각 타종 행사를 구경삼아 종각역으로 갔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유명 연예인들이 사회를 보며 가수가 노래하는 등으로 요란하게 축제를 하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모여들었다. 카페, 주점, 식당 등 전망 좋은 주변 상가에는 초저녁부터 자리를 잡은 사람들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심지어 예약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주변 포장마차에도 어묵, 떡볶이, 호떡, 붕어빵 등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 특수를 누리고 있었고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가수들의 노랫소리에, 사람들의 함성 소리, 각종 악기 소리, 그리고 새해맞이 하이라이트에 빠질 수 없는 폭죽 소리는 귀를 멍멍하게 했다. 자정이 되어 타종행사가 끝나자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각종 쓰레기, 장갑, 목도리, 모자, 짝 잃은 신발 등이 널브러져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더욱 황당했던 것은 입고 갔던 잠바에 작은 구멍들이 났었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폭죽으로 인해서 생긴 상처 같았다.
이렇게 요란하게 맞이했던 새해는 특별한 해가 되었을까? 12월이 되면 생각난다.

염규식

2021-12-23 22:50

`정대수`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작가님 오랜만에 서재에서 수필다운 수필 한 편을 만나보고 감동으로 배랍합니다
저는 11시쯤해서 1시 정도 시와 수필을 습작하는 시간입니다
불켜진 시인님의 창가에 잠시 두드리고 갑니다 항상 고운 작품으로
문운 창대하시기를 바라며 서재의 고운 인연 이어나기기를 기원합니다
2021년 해는 어느새 저물고 계획했던일 잘 마무리하시고
늘 승리하셔요 성탄절 축복 많이 받으십시요---^^


정대수	존경하는 염규식 작가님 반갑습니다. 부족한 글에 이렇게 극찬을 하시니 부끄럽습니다. 조용한 시간대가 집필하기에는 참 좋지요. 저도 일을 하면서 짬 나는 대로 쪽 글을 쓰다가 집으로 오면 정리하고는 합니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은 날입니다.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성탄절과 연말 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12/24 05:59

한영택

2021-12-26 10:18

`정대수`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정대수 작가님 안녕하세요?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작년부터 계속되는 코로나 변이에 변이 오미크론까지~~~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으레 연말이면 송년회나 성탄절 분위기에 분주 할 텐데 거리는 조용하고 썰렁한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양극화로 소외된 이웃에게 관심과 사랑이 무엇보다 절실할 때입니다. 행동하는 자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따뜻합니다. 날씨가 엄청 춥네요. 건강 관리 잘하시고 따뜻한 휴일 보네세요.
톡 한번 주세요 010-5676-0447
happy new year!


정대수	존경하는 한영택 작가님 반갑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와 오미크론 바이러스로 많이 힘든 나날을 지나고 있습니다. 성탄절도 정말 조용하게 보냈고 연말도 거리 두기에 꼼짝 못하고 지나게 될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좋아 지길 바라며... 21년이 딸랑 6일 남았습니다. 마무리 잘 하시고 22년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으로 많은 사랑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고맙습니다. 아!! 톡 드리겠습니다. 환영합니다.^^	12/26 10:39

신축년을 보내며

외출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