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나간 일들을 되돌려 보는 데는 없어서 아니 될 소중한 기억 장치이다. 사진 중에서도 현대 문명의 총아인 칼라 사진보다는 아주 옛날의 추억이 머리를 되감는 흑백 사진이 더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주 옛날에는 손으로 그려서 도둑놈이든 찾을 사람이든 방을 붙여서 찾곤 해왔다. 사진의 발달은 기계의 발달과 더불어 매스콤의 발달에도 기여해왔다.

칼라 인쇄물이 나오기 전에는 사진을 동판에 새겨 무수한 점들로 영상을 구성하고 이것을 윤전기에 돌려 신문을 만들어 왔다. 그 때의 흑백사진은 참으로 어렵기도 했거니와 필름을 먼저 현상하고 정착시켜 먼저 필름을 현상한 후에 필름을 발광기를 통하여 그 빛으로 인화지를 감광시키고 적당한 노출에 따라 현상액에 넣어 상을 도출시킨 후 정착액으로 사진이 변하지 않게 정착시킴으로써 사진이 완성되어진다.

칼라사진은 요즈음 대부분 자동으로 현상되어 나오기 때문에 완전한 기술자가 아니고서는 칼라 사진 내에 작가의 의도를 넣을 수 없다. 그러니까 사진기가 감광 시킨 그대로를 볼 수밖에 없어 획일화되고 작품이 주는 깊은 맛을 보기는 어렵다.

흑백 사진은 이와 비교하면 사진을 완성시키는 작가의 혼이 들어 갈 수 있게 작업을 할 수 있다. 필름을 현상할 때 현상액에 노출 시킬 수 있는 시간의 조절이 가능하고, 현상액의 농도를 조절함으로 써 톤을 조절할 수 있으며, 작가의 의도를 필름 현상에 주입 시킬 수 있다. 다음으로는 사진을 현상할 때 발광기로부터 인화지에 닿는 빛의 량을 부위 별로 조절 할 수 있고, 작가가 표현하고자하는 톤의 짙고 엷음, 빛의 음영의 변화 등을 인화지에 옮기고, 인화지를 현상할 때도 작가의 혼과 솜씨를 반영시킬 수 있다. 그래서 사진을 촬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상하여 상을 나타내게 하는 데에도 무한한 노력과 정성과 작가의 혼이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흑백 사진을 보면 그 작가가 전달하고자하는 의도를 깊이 느낄 수 있고, 사진과의 대화도 할 수 있을 만큼 다가오기도 한다. 굳이 작가가 현상이나 인화할 때 혼을 불어 넣지 않더라도 흑백 사진은 고향 같은 포근함으로 다가온다. 내가 어릴 적에는 사진을 본다는 것조차도 신기한 때였다. 기껏해야 요즈음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도민증의 사진의 배경이 탱자나무이고 거기서 알 듯 모를 듯 미소짓는 어머니의 모습 떠오른다. 아주 작은 사진이 노랗게 물들어 있어 실제의 가을 단풍처럼 다가와 아련한 옛날을 이야기 해준다.

칼라사진이 오래되면 차마 보기조차 민망할 때가 많다. 얼굴은 술은 먹은 들 취해 있는 모습이고, 병기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하며 때로는 3일에 피죽 한 그릇 못 먹어 본 사람같이 보이기도 한다. 칼라 사진은 예쁘게 보이려는 데는 좋은 효과를 보이곤 한다. 또는 요즈음의 봄에는 벚꽃의 잔치, 노오랑 개나리의 환희, 분홍색의 진달래, 새 싻의 진초록으로 다가오는 기분 좋은 향연, 모든 게 풍족해지고 마음으로나마 부자로 만들어주는 요술 같은 일을 해내곤 한다.

흑과 백은 세상을 만드는 원초적인 색깔로 나타난다. 흑색은 어둡고 무서우며 견디기 힘들고, 해쳐 나가야할 역경으로 다가온다. 세월의 무게를 더하여 압도적으로 삶의 무게를 더해오는 색이다. 백색은 지구의 열림을 말하게 한다. 세상이 열리고 까만 검은 색을 배경으로 흰 생명이 생겨나고, 생명의 움직임이 검은 배경을 찢어 내고 빛의 탄생을 환희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에 감탄케 된다. 검은 색은 두려움으로 나타나 고독에 이은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흰색은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는 색이다. 따라서 흑과 백으로 나타내지 못하는 색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흑과 백을 양분시켜 그 단면을 판단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회색이론이라는 것도 생겨났다. 자신의 주간도 자신의 주장도 할 수 없는 그저 섞여저 가는 인생을 뜻해 왔다. 그러나 흑과 백 만으로도 세상의 이치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으며, 어쩌면 우주의 원리를 한가지로 묶을 수 있다는 뜻으로도 생각이 된다. 그것이 칼라이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겠지만, 흑백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처럼 순수하고 내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로 인식되어 진다.

지구 위의 모든 자연의 색을 부정하고자하는 것은 아니되, 색의 3요소가 모이면 흑색이 되고 빛의 3 요소가 모이면 흰색이 되는 것을 바탕으로 보면 우주의 근본 색은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흑백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색깔로 단장한 모습이 신기루처럼 다가오기도하고, 모질게 떼어 내었던 정이 어느새 내 눈사이로 들어와 있음을 느끼게 한다.

흑백사진은 그 속에서 역사를 느끼게 하는 암시가 들어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집중하게하며 그 사진이 하고자하는 말과 뜻을 수용하게 된다. 8 cm x 10 cm 정도의 흑백 인물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 인물이 꼭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바래진 사진의 배경으로 갑자기 고함칠 것 같은 눈, 무엇하고 있냐는 코의 벌름거림, 못마땅한 입술의 움직임이 보고 있는사람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굳이 당시의 상황을 글자로 표시해 두지 않았더라도 자연스레 읽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흑백사진에 묻어나는 추억은 긴 세월의 역사, 아스라히 보이는 그 시절을 말하지 않아도 거기에 담긴 추억만으로도 자신의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빛바랜 흑과 백의 조화가 이끌어 내는 그림자가 너무 진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