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봄은 쉽게 오지 않는가보다. 복수초는 동토에 뿌리를 두고 가장 먼저 차가운 식민지에서 독립하여 자신의 개체를 떳떳하고 너무도 곱게, 수줍게 일으켜 세우는 꽃이다. 처음 복수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원수를 갚는 復讐로 생각했었다. 얼마나 식민지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생명은 자기가 있고 싶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생명의 가치이다. 우리도 생명의 가치를 강탈당하였을 때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속으로는 복수를 벼르고, 밖으로는 분출되는 분노로 가슴을 도려내며 숨죽은 듯이 살아 온 적이 있다. 우리가 동토에서 꽃을 피웠을 때 우리는 우리의 잘못으로 복수의 의미를 달리하고 말았다. 복수초는 얼음사이로 봉오리를 내밀 때 주위에 두더지 신이 꽃을 잘 피울 수 있도록 봉오리 주위를 치워주는 따스한 전설을 전해 듣고 왔다. 우리의 동토에는 도와주는 두더지보다도 멧돼지들이 옹기종기 봄볕 바른 곳에 앉아 있다가 얼음사이로 돋아나는 복수초의 노란 희망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멧돼지의 영리함과 야비함으로, 겨울을 이겨 낸 기쁨을 금잔으로 축배를 들고자 했던 복수초는 바람에 시달려 봄의 의미를 알지도 못하고 다음의 겨울을 맞아야 했다.

복수초는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자라는 꽃이다. 유럽에서의 복수초는 자라고 싶은 땅에서 자라고 있다. 우리의 현실과는 다르게 다른 색으로 행복을 누리고 있다.

식물은 자신의 힘으로 옮겨 다니지 못하는 한을 가지고 있다. 도망 다니지 못하는 만큼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고 지낼 것이다. 덩굴 식물이 챙챙 감아 숨을 못 쉬게 할 수도 있고, 온갖 날 짐승, 곤충들이 날아들어 괴롭혀 포근한 잠도 한 숨 이룰 수 없이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만들어 내는 물질이 피톤치드(phytoncide)이다. 피톤(phyton)은 식물을 말하고, 치드(cide)는 죽이는 것을 말한다. 이는 스스로의 개체가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나 진화되고 노력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써왔기 때문에 동토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다운 물성(物性)을 지켜야 한다.

복수초의 의미를 다시금 음미해보면 復讐가 아닌 福壽이다. 자신을 지키며 복스럽게 오래 산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우리는 아직도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땅 주인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땅 주인이 되었으면 봄이 되면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는 수확을 잘하여 주인 됨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

지금도 멧돼지들이 파손한 그 후유증으로 아직도 가슴앓이를 많이 하고 있다. 한 서린 우리의 소녀상을, 우리가 만들어, 우리나라에 세우겠다는데도 왜 떳떳하지 못하는가.

우리의 뜻을 우리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 못 피어나는 복수초와 무엇이 다른가.

왜 지켜주질 못하는가.

물론 진실을 숨겨오는 정부에도 큰 잘못이 있다. 이것들이 멧돼지들의 영향임이 틀림없으나 우리는 멧돼지가 아직도 우리 곁을 지켜보고 있음에 더 말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진실은 에너지가 강한 기체와 같아서 가두어 둘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눈물을 닦아 줄 수 없는 현실은 어디에다 하소연해야 하나는 숙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세월은 그냥 호락호락하게 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복수초가 염원하는 바를 지켜 나가야 한다. 복을 받으며 오래 산다는 것은 모두가 누려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한 편에만 다가오는 편향된 복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할 것이다.

마라톤의 전설처럼, 복수초는 평화를 알리기 위하여, 그 동토에서 맨 처음 우리에게 달려온 전사이다. 우리는 이 전설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스스로의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