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길

내 연구실에는 내게 온지 10년 정도 되는 잎이 좀 큰 상록수 벤자민이 있다. 국제바이오에너지 심포지엄을 할 때 한국카본블랙의 대표님이 발표 무대에 얹혀 주셨다. 그 당시에도 키가 커서 둘 곳이 어려웠으나 나의 연구실에 옮겨 돌보기로 하였다. 훤칠한 키에 진한 녹색의 잎은 항상 나의 출근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원래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햇빛을 받아가며 유유자적하게 살아야 할 벤자민이 화분에 얹혀 비좁은 나의 연구실에서 그다지도 상냥하지 못한 주인과 함께 지내왔다. 참도 세월은 빨리 흘러갔다. 지금은 키가 천장에 닿아 목을 구겨가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매일 보기가 안스러워 천장에 닿은 부분을 잘라주어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줄까도 생각을 해보았는데, 꼭 산 짐승의 목을 자르는 생각이 들어 자르지도 못하고 쳐다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멍청한 주인에 말 못하는 나무, 어쩌면 서로 그렇게 닮아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도 멍한 주인은 같이 있는게 좋다고 열심히 물을 주고 아픈 데는 없는가, 진딧물은 없는지, 화분이 마르면 자책을 하듯 물을 주고 잘 자라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곤 한다. 특히 여름에는 형언할 수 없는 씩씩함에, 잎에 반사되는 빛이 너무 날카로와 눈길을 피하는 게 일쑤였다. 그래, 살려면 눈이 부시도록 빛을 내어보자, 그래야 물을 주는 주인에게도 덜 미안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주인도 환호하며, 다른 해에는 보지도 못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곤 해왔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벤자민 생활에 대해 주인은 생각해본다. 벤자민이 잘 자라고, 더 큰 자유를 주기위해서는 차라리 땅위에 갖다 심어 줄까하는 생각도 해왔다. 그러면 정말로 봄 빛, 여름 비, 가을 볕, 겨울 바람 등의 자연과 싸우며 부대끼며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었다.

늦은 밤에 주인이 퇴근하면서 전깃불을 끄고 나면, 쳐다볼 달조차 없는 깜깜한 공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참, 밤에는 쉬면서 에너지를 만들어야 하겠지, 주인이 올 때를 대비하여 깨끗한 공기를 만들어 놓아야 하나? 그냥 눈감고 쉬면 될 것을 그래도 주인이라 섬기는 모양이다.

밖으로 내다보는 주인은 아. 가을이 왔구나라고 생각하며 여름 내내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는다. 답답한 계절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지낼까하고 벤자민은 작년과 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또 주인은 벤자민이 추위를 싫어하기 때문에 문을 닫아 주는 것이 사리에 맞다고 생각한다. 사실 벤자민은 추위를 싫어하는 것으로 주인은 알고 있었다. 주인은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벤자민을 보살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거의 십년가까이 내 곁에 있었고, 때에 따라서는 선물해주신 대표님도 생각나고, 그 때 바이오에너지 심포지엄에서 바이오에너지를 개발해야만 우리나라가 잘 살수 있다며 정신없이 강열하게 발표했던 것도 떠오르고, 또 다시 큰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해야겠다는 의지도 표명한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가기도하고 화분에 물기가 있어 보이는 데도 아낌없이 물을 주기도 한다.

혹하다가, 창 빆에 흰 눈깨비가 날린다. 이제는 따스한 것이 차가운 것 보다 벤자민에게 좋을 것이라고 주인은 생각한다. 그래도 이제는 문을 자주 열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에서 한 참 동안 창문을 열어 벤자민에게 겨울이 왔다고 알려준다. 벤자민의 꺽어진 목이 알겠다는 긍정의 표시로 주인에게 비친다. 그리고, 주인은 나름대로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벤자민이 목이 타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겨울에도 나름대로의 일을 하러 연구실로 출퇴근한다. 그리고, 출장도 다녀온다.

그리고 서로의 믿음 속에 헌신적인 주인의 노력으로 겨울은 저만치 가는 듯했다.

봄이 올 무렵, 눈을 찌를 듯한 녹색 빛의 잎사귀가 노랗게 되어 떨어지고 있다. 주인은 한탄한다. 그렇게 벤자민을 위하여 일거리를 만들어가면서 물을 주러 오곤 하는데 무엇이 모자라 봄에 낙엽을 만드는지 이해하지를 못한다. 무엇에 홀린듯하여 그 원인을 찾기 시작 한다.

주인의 머리에 든 것은 식물이 살기 위해서는 비료의 3요소가 있어야하고, 빛이 있어야 하며 이산화탄소가 있어야 동화작용을 하여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급히 비료를 사다가 물에 녹여 주기도 하고, 빛이 잘 들어오도록 커튼도 조절하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단을 해본다.

주인의 식물에 대한 옹고집에도 불구하고 벤자민의 1/3정도가 억지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 얘가 왜 이럴까하고 주위의 모든 원인을 찾아보아도 항상 눈에 보이는 것들 밖에 없어 주인은 다른 쪽으로 획기적인 생각을 못한다. 그져 쳇바퀴 도는 하루를 살면서 몸에 젖었던 것만 떠오른다. 해결 방법이 없다. 사그라드는 벤자민을 보면서 주인은 또 당황하기 시작한다. 근 십년가까이 아무 일 없이 풍성하던 벤자민이 왜 올해에 들어서만 저럴까? 내가 무엇을 잘 못했을까? 저놈의 속에라도 들어가 볼까. 말을 해라 말을!

주인은 겉 자라서 목이 휘어진 부분 때문에 그럴거라고 그 부분을 잘라버리면 다시 풍성해 질것이라고 근거 없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생명의 기본 정도는 안다고 생각하는 주인은 자신의 믿음대로 목을 자르지 않기로 한다.

그래서 주인은 포기하듯 되뇌이듯 결심을 한다. 이래도 사그러 들고, 저래도 사그러 질 바에야 시원하게 깊은 숨이나 한번 크게 쉬어라며 창가로 자리를 옮겨주고 가볍지 못한 마음으로 2박3일 출장을 간다.

주인은 다시금 생각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고집스런 지식으로는 벤자민과 소통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겉으로 보이지 않는 복잡한 환경 속에서, 이 얘를 구출해 낼 원인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지 모른다. 스스로 아파하는 벤자민의 상처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자리를 옮겨 줌으로써 작년처럼 진한 초록으로 나에게 다가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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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오에너지 : 살아 있는 생물을 이용하여 우리가 사용할 에너지를 개발하는 기술, 유채씨앗으로부터 디젤유(경유), 볏짚으로부터 휘발유 대용의 알콜을 생산하는 기술, 전자를 바이오디젤이라하고 후자를 바이오알콜이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