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 덕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으면 잎을 내기도 아까워 꽃부터 올렸을까. 벚꽃도 이 마음만치 바쁜 모양이다. 아마도 님이 오시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나 보다.

봄바람이 코를 간질이고, 숲도 없는 머리카락을 날릴 때 무언가 목이 타듯이 기다려지는 것은 마음 속에 깊이 묻어 두었던 아지랑이가 봄 살 따라 살랑거리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도 일각이 여삼추이듯 그렇게 기다림이 바빠서 신발 벗고 뛰어나올 님이 있으면 이 봄이 더욱 포근할 것 같은데, 아마도 잎을 피우고 난 후에나 찾아올지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찾아준다면 얼마나 더 없는 깊은 삶이 되겠는가.

밤에 강변에 아무런 기다림 없이 가로등 속에 숨어 있는 벚꽃을 보노라면, 아직도 번창한데 밤이 되어 더 보여 줄 수 없어 안타까운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늘에 달을 띄우고 나지막하게 앉아서 너와 대화 할 수 있는 이 기회도 일 년에 딱 지금뿐이라 그대와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네.

밤의 강가에는 길게 늘어진 수양버들이 눈을 깜빡이며 새 순을 내고 지나가는 연인들에게 날개를 펼쳐 다가가기도 하는 걸 보면, 이 고요한 밤이 그렇게 나쁘지만 않은 것 같다. 혹 길거리엔 마시고 버린 막걸리 통이 발길에 채이기도 하지만, 이 고운 봄 날 벚꽃 아래에서 여태껏 못한 이야기들을 나와 나, 나와 너, 나와 그 혹은 그녀와 이야기하며 보낼 수 있는 깜깜한 밤에, 너의 존재는 꼭 옛날 날 버리고 간 님의 얼굴이 새하얗게도 벚꽂 속에 피어 있어 세월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지난 날의 아쉬움을 더 크게 밀어 올리기도 한다.

벚꽃 터널은 지나다보면 저 벚꽃은 누굴 위해 저렇게나 하늘을 가리고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어쩜 삶도 이와 같은 것이라 일러 주는 듯하다. 내 인생에도 분명 저렇게 흐드러지게 꽃이 핀 때가 분명히 있었을 것만은 틀림없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걸보면 헛살았거나 아직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인생에 있어 어느 누구에게나 꽃은 만발한다. 그 시기가 봄과 같이 너무 짧아서 스친 듯 지나가기도 했겠지만, 그 당시에도 아! 이것을 빼앗기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만 가졌을 것이다. 이 곱고도 작은 행복이 욕심에 묻혀 기억하지 못할 뿐일 것이다.

꽃은 위기가 도래 할 때 핀다. 삶은 위기가 도래하면 꽃이 졌다고 생각한다. 꽃은 위기를 탈출하여 후손을 남김에 정성을 다하지만, 사람은 저 위기가 왜 하필 나에게 올까하는 생각을 한다. 꽃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여 가을에는 열매를 위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억울함 없는 생을 마감한다. 사람은 그 분에 못이겨 자신을 들볶다가 울화통으로 간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고운 꽃이 왔을 때 그것을 지키려고 큰 노력을 하지 않는다. 또 오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사람도 짧고도 고운 시기를 기억해야, 벚꽃처럼 필 수 있다. 어떤 이는 봄이 벚꽃을 피운다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벚꽃이 봄을 찬란히 피운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 봄을 만들 듯이 저 벚꽃은 자신을 위해 봄을 피우지 않고, 봄이 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봄을 갖다 주는 것이다. 그래서 봄을 피우는 벚꽃이 참으로 여유롭고도 고마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