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 덕

조금 따스한 겨울이었나, 냇가의 풀들은 조금씩 세수하러 일어나고 있었는데, 겨울 중에서도 더 따사하게 볕이 들어 땅에 붙은 하얗고 새침스런 아가 꽃이 찡긋하고 웃는다.

이제 조금 싸늘한 봄이 오나보다. 갓 틔어난 수양버들의 잎새가 계절을 잘 못 알고 나온 듯 움츠리고 있다. 아직 나에게도 겨울인지 봄인지 알 수 없는 속에 마음에만 봄이 와 있다.

그저께 보다는 시냇물의 대화소리가 즐겁게 들리고, 그간 같은 이웃 이었지만 이제사 마음을 트고 소리 질러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사람 뿐 만이 아니라, 순리를 지키며 지내는 물의 세계에서도 어떠한 인간의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침이 바쁘게 즐겁게 노래하며 멈출 곳을 모르는 참새들도 그 날개짓 속에 봄을 숨기고 있나보다. 그렇게 즐거운 건 사람들에겐 그렇게 기다리던 사람이 말없이 불쑥 나타나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 것과 같을 듯하다.

사람에게 기다림을 가르쳐 주는 봄은 사람들처럼 억지로 교육을 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습지에 잉크 스며들 듯이 그렇게 살포시 스며들어오는 것이, 난리를 피우며 입으로 봄을 맞는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다.

사람이 매화가 피어야 봄이라고 숱하게 세뇌되어 온 것 같이, 매화가 피지 않으면 봄이 아니라는 역설조차도 나올 만한데, 아마도 눈 속에도 애처러이 피어 있던 설중매가 사람들의 심중을 너무 깊게 찌른 것은 아닐까. 사람들의 눈과 생각이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되어, 얼음 속에도 피어나고 있었던 복수초는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봄은 자신이 따스하고 수려하고 꽃들을 동반한다고 스스로는 말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봄에 매료된 사람들이 봄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없기 때문에, 파종을 해야 되기 때문에 봄이 필요할 뿐 이었지는 않을까,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기다려 왔을 뿐, 봄이 전하고자하는 철학에는 감각이 없었을 수도 있겠다.

봄은 소란스럽게 오지 않는다. 들풀이 소리 내고 오는가, 꽃들이 소리 지르며 피는가, 잔설이 시끄럽게 녹아내리는가.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이어서 스스로 빙그레 웃고 있을 뿐이다.

봄은 스스로의 공을 드러내지 않는다. 봄은 겨울에 어려웠던 것을 말하지 않는다. 겨울이 있었기 때문에 춥고, 서럽고 견디기 힘든 일들을 감내할 수 있게 해주어, 너무도 감사해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온다. 꽃이 예쁘게 필수 있는 것은 꽃이 이뻐서가 아니라, 차가운 겨울이 없었다면 꽃을 피울 수 없다는 사실을 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악착같은 들풀로 민들레를 생각한다. 민들레는 스스로 홀씨를 내어 부모와 아주 떨어진 곳에서 독립적으로 자라서 자신의 일생을 일으켜 산다. 그곳이 아스팔트 위에라도 거역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억지로 민들레 씨앗을 밭에 뿌리고 싹이 나도록 두면 싹이 날 것 같은가. 어떻게 하면 날 것 같은가? 겨울을 겪게 해야 한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일주일 정도 두었다가 뿌려야 최소한의 싹을 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도 겨울을 겪어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겪지 않아도 겨울이 자신의 삶에 찾아들면 그 겨울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어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모든 열매들도 세파를 겪고 살아남아야 익어 갈 수 있음이다.

생명이란 끝없이 살 수 있을 수는 없다. 우리도 봄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봄이 가더라도 피해보는 자연은 없다. 왜냐면 우리에게 스며들어 왔듯이 조용히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떠난 그 자리가 원천이 되어 모든 생명을 더욱 활발히 움직이게 하는 미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