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 덕

태풍은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을 기울 수도 없도록 난도질을 한다. 세상에서 이름값을 하고 사는 것들은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들의 이름은 그 이름대로 살아라하는 커다란 염원이 깃들어져 있을 것이다. 나의 이름도 할아버지께서 은은한 덕이 종소리처럼 퍼질 수 있게 덕을 쌓으며 살아라하는 의미로 생각한다. 그 이름이 너무 커서 여태껏 이름값 한 번 못하고 살아온 것 같아 할아버지께 항상 미안한 생각을 하고 산다.

태풍, 이 놈은 확실하게 자신의 이름값을 하고 사는 것임에 틀림없다. 우선 듣기만 해도 몸이 뒤틀리는 것을 보면 호랑이보다는 몇 십배나 더 무서운 것 같다. 술 마시고 광기어린 돌아버린 사람처럼 눈에 보이는 것 없이 마구잡이로 해치는 것을 보면 확실하게 이성을 잃은 것 같다.

아주 자그마한 씨앗으로 눈을 떠서 그렇게도 빨리 자란 뒤 일주일 정도의 짧은 삶을 보내면서 확실하게 이름값을 하고 간다. 1969년 9원 17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정말로 화가난 비바람이 내가 사는 조그만 시골에 당도 했다. 우리 집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두 개의 시내가, 왼쪽으로도 두 개의 새내가 흐르고 있었는데, 평소에 내가 그렇게 좋아하고 멱을 감기도, 소를 목욕시키기도, 겨울엔 썰매지치기로 거의 이 시내들과 함께 지내왔다. 냇가의 모래 둔치에는 모래새가 알을 낳고 물총새가 피라미를 잡으려고 다이빙하는, 친구도 없는 외딴지에서 냇가와 친구 삼아 지내던 터였다.

이 때의 비는 빗줄기가 아니었고 냇가를 수직으로 세워 놓은 것과 같았다. 그냥 물속에 헤엄치듯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때는 내가 무엇을 잘못하여 이 친구들이 이렇게 화가 났을까하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엄마도 그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화를 낸 적이 없었는데 이 친구들은 잡아당겨 숨조차도 못 쉬게 할 것이었다.

그렇게 기차의 기적소리는 밤을 불러오고, 아버지는 이 기차로 퇴근하시면서 큰 고함으로 빨리 밖으로 나가라하고 고함치셨고, 옷가지를 챙기시던 엄마에게 호령이 떨어지고, 마굿간의 소, 젖 짜는 염소의 이까리도 풀어주지 못하고 뛰쳐나와 냇가의 언덕으로 달아났다. 바로 이어서 여태껏 참았던 냇가의 둑들이 힘없이 무너지고 집은 물에 집어 삼켜져 버렸다. 맨몸으로 큰 동네로 갔고 동네의 인정으로 발을 붙이고 살았다.

태풍이 온단다. 해마다 감당할 수 없는 생채기와 고독과 말문을 닫게 한 태풍이 온다. 아파트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이고 신문지를 끼우고 그 전조를 느껴본다.

태풍의 씨앗은 자연이 심고 사람이 키운다. 자연이 세상에 대한 혐오로 씨앗을 심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생명이든 태어나면 성장하고 더 활발하게 살기를 원하고 바랄 것이다. 자연의 지구에 대한 분풀이가 아니라 생각을 달리해라는 경고일 수도 있다. 온 산들이 개발로 산천초목이 다 패여 나가고 안일한 사람들은 그 다음을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한없이 포괄적인 자연도 함께 지내기 위하여 최후 보루의 선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태풍이 오는 날을 공포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하다. 태풍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먼 미래를 위해서도 자연과 같이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보는 것이 더 빠른 해결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