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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5-03-13 17:24
ㆍIP: 115.xxx.86
베팅 (37회)

       5. 서울 경마공원을 가다.


 사무실을 나선 선우는 차를 갖고 가려다 4호선 전철로 한 번에 가는 것이 빠를 것 같아
 
전철 역으로 향했다. 경마장에 관해 준식과 민기에게 귀동냥해 들은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본장에 구경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경마공원역.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수많은 인파가 승강장으로 쏟아져 나갔다. 선우도
 
그들에게 휩쓸리듯 내렸다. 역사 안은 순식간에 짙은 회색, 검은색 작업 점퍼를 입은 사
 
람들로 북적였다. 한적한 일요일 오후의 모습이라기보다 평일 오전 출근길 광경에
 
가까웠다.

 역사 곳곳에서 20대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들이 ‘00경마 사인펜까지 천 원’이라고 외
 
치며 경마정보지를 판매했다. 계단을 오르던 사람들은 저마다 정보지를 한두 부씩 사 겨
 
드랑이에 낀 채 역사를 나섰다.

 역사를 나오자 이번에는 정보지를 한 움큼씩 들고 사라며 소리치는 아저씨, 아주머니들
 
의 음성이 들려왔다. 다들 얼굴에 희망이 가득 차 보이고 발걸음도 가볍고 빨랐다. 무언
 
가를 갈망하는 눈빛들로 어지러웠다. 가족이나 남녀가 함께 온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은 제조업체 작업복을 입은 40~50대 남성들이었다. 

 경마장 입구의 웅장한 기둥에는 ‘세계 정상급 기수들의 자존심을 건 승부’라는 플래카
 
드가 거창하게 걸려 있었다.
 
 생각보다 긴 말발굽을 형상화한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양 옆으로 식혜, 오징어, 꿀 등
 
특히 차 종류를 판매하는 상인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을 찾는 연령대가 대부분
 
40~50대다 보니 파는 음식도 거기에 맞춘 듯했다.
 
 그리고 유원지나 행사장에서나 볼 수 있는 번데기 장수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사람들이
 
번데기 컵을 들고 호호 불면서 먹으며 정문으로 힘차게 걸어 들어 갔다. 곧 자신이 번데
 
기가 되어서 나오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어느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경마장 입구에서 무료로 커피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늦
 
가을의 날씨가 제법 차갑게 느껴졌다. 선우는 갑자기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 잠시 망설이
 
다 옹기종이 모여 있는 그들 곁으로 갔다. 

  “내가 8년째 무료로 커피를 나눠주고 있는데 경마장에 오는 이들 중에는 밑바닥에 있
 
는 사람들이 많아. 밥 굶고 하는 사람도 있어, 빵 같은 거 나눠주면 다 받아가. 그리고 주
 
말에는 3천5백여 잔의 커피가 나갈 정도야.” 

  커피를 마시는 동안 선우의 귀에 책임자인 듯한 사람과 보조하는 아주머니와 속삭이듯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입구 대로 한 쪽의 정류장에서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어디가를 목이 빠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선우도 무심결에 따라 보니 저 멀리서 마차가 뚜벅뚜벅 오고 있었다. 꽃장식으
 
로 화려하게 꾸민, 무료로 운행하는 8인승 꽃마차였다. 한 가족이 올라타고 곧이어 마부
 
가 신호를 보내자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꽃마차에 올라탄 아이들은 무척 신이 난
 
듯했다. 불현 듯 그도 동심으로 돌아가 그 꽃마차를 타고 싶었다. 

 표파는 창구 앞에 도착한 선우는 1천 원으로 입장권을 구입하고 안내센터에서 경마가
 
이드 팜프렛과 경마공원 맵을 쥐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옆의 스마트게이트라는 창구에서 고속도로 통행 시 하이패스
 
를 이용하는 것처럼 티머니로 입장료를 지불하고 바로 입장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주
 
오는 단골들을 위해 편의를 제공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조금이라도 빨리 입장하여 한
 
경주라도 더 베팅하라는 배려인지도 모른다. 그는 스마트게이트를 보면서 이제 교통카
 
드까지 받으니 차비마저 떨어져 걸어가는 사람들이 생기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하니 야외 경마스크린과 웅장한 건물이 보였다. 날씨가 화창하여 경마장에는 사람
 
들이 많았다.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높게만 느껴졌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경마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구관 4층 관람대 앞의 붐비는 사람
 
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선우가 다가가 앉았다. 

  준식은 정보지에 아예 얼굴을 갖다 대고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기기도 하고 열정적인 면이 부럽기도 했다. 사인펜으로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정보지가 너덜너덜했다. 1장짜리 찌라시는 어디서 그렇게 많이 구해왔는지 그것도 일일
 
이 쳐다보았다.

  “공부 열심히 하네.”

 “공부라도 열심히 해 놔야지.”

선우의 말에 그가 싱긋 웃었다. 이 놈은 참 천성적으로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다. 민기를
 
쳐다보자 그도 예의 그 부지런함으로 정보지에 코를 박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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