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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5-01-25 14:15
ㆍIP: 115.xxx.86
베팅 (28회)
 
 다음 날 금문성 사채사무실에 혜원이 들어섰다. 직원이 방문한 용건을 묻자 일단 사장
 
님을 보고 직접 말하겠다는 그녀와 안 된다는 직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금문성과 세두, 지나가 이야기를 나누다 밖이 시끄럽자 세두가 나가서 그녀를 데리고
 
들어와 금문성을 사장이라고 소개했다. 혜원이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 지나는 수혜
 
를 보고 당황했으나 곧 냉정을 찾으며 그녀를 날카롭게 쏘아 보았다.
 
 “천사의 집 원장의 딸인 유혜원입니다. 긴히 말씀드릴 게 있어 미리 약속도 못하고 이
 
렇게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아버지께서 이 사무실에 빚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시다
 
시피 저의 아버지가 빌린 것도 아니고 친구 보증으로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지금 친
 
구 분을 찾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갑자기 집을 경매로 넘기신다면 이십여
 
명이 넘는 저희 식구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그것도 어린 아이들과 몸도 성치 않은
 
장애우란 것을 잘 아시잖아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간호사라 환자 대하듯 말은 잘하네.”

 지나가 작은 소리로 오물거렸다.

 “아가씨, 아버지 친구 찾는 거 포기하는 게 나을 거요. 빚 받을 우리가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겠어. 우리가 알아본 바는 이미 죽었어. 그런데 어디서 죽었는지 도대체 시체를 못
 
찮겠어.”

 “죽었어요!”

 세두의 말에 그녀가 깜짝 놀란다.

 “그러니까 시체 찾는 것보다 빨리 빚 갚는 게 나을 거야. 아버지 대신 여기까지 온 정성
 
이 갸륵해서 한마디 해주지. 그 집 경배로 넘겨봤자 몇 번 유찰되면 남는 거 하나 없어.
 
그 돈으로는 우리 빚 갚기에도 모자라. 부족한 돈은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갚아야 될 걸.
 
아버지가 못 갚으면 딸인 아가씨가 몸을 팔아서라도 갚아야겠지. 우리는 저승사자에게
 
도 빚을 받아내지. 그러니까 경매보다 우리에게 넘기는 것이 좋을 거야. 그나마 아가씨
 
식구 세 사람이 살 수 있는 월세방이라도 얻을 수 있을 거야.” 

 “저희는 세 식구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저희 가족은 수십 명이란 말이예요. 그런데 집을
 
비우라면 이 추운 날씨에 어디로 가란 말이에요. 제발 시간을 주세요.”

 금문성에게 울며 사정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지나가 끼어들었다.

 “내가 나설 일은 아니지만 여기 금 사장님 말이 맞아요. 경매로 넘기면 수수료도 만만
 
지 않고 한 번 유찰될 때 마다 20%씩 집값이 떨어져요. 무엇보다도 낙찰 때까지 빨라야
 
몇 개월 늦으면 일 년도 더 걸려요. 그동안의 이자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해요. 내가 알기
 
로 이 사무실 돈이 급전인 것으로 아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거예요. 아가씨와 가족이
 
걱정되어 하는 말이니 오해하지는 마시고요.”
 
 절망적인 표정의 혜원이 몸의 균형을 잃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금 사장님 많이 변하셨네. 아가씨네 가족 생각해서 월세 얻을 돈까지 준다하니 말이
 
야.”

 “하하하. 내가 불쌍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약하잖아. 그래서 민 여사처럼 큰돈을 못 벌
 
어요. 못 벌어!”

 그는 일부러 너털웃음을 내며 은근히 지나를 비꼬았다.

 “아가씨, 아버지가 약속한 날짜가 이제 며칠 안 남았어. 그때까지 돈을 갚던가, 집문서
 
를 넘겨줘야 해. 아님 강제로 모두 쫒아낼 거니까 그리 알고 있어.” 

 세두가 인상을 쓰며 협박했다.

 “이제 이야기는 다 끝난 것 같네. 아가씨 가신단다. 잘 배웅해 드려라.”

 세두가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하자 혜원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힘겹게 일어나 비틀거리
 
며 문을 열고 나갔다.
 
 은행 창구에서 혜원이 직원과 대출상담을 하고 있었다.

 “집은 가압류가 되어 있어 부동산 담보대출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유혜원 씨 신용으
 
로는 2천만 원까지만 가능합니다. 이 금액이라도 해드릴까요?

 “제가 급한 사정이 있는데 더는 안 될까요?”

 “그건 곤란합니다. 대출규정이 있어서요.”

 직원의 사무적인 말에 그녀가 고민된 표정으로 망설였다.

 “그럼, 그 돈이라도 빨리 해주세요.”

 혜원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병원 벤치에 앉아 열심히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

 “미영이니? 나 혜원이야. 다름이 아니라 너에게 부탁이 있어서. 집에 일이 생겨 돈이 필
 
요해서. 좀 안될까? 그래, 정말 고마워. 그런데 가능한 빨리 해주면 좋겠는데...”

 그녀는 몇 명의 친구들에게 같은 내용의 전화를 계속했다. 마지막 통화를 끊은 그녀가
 
안도의 숨을 쉬고는 밝은 표정으로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아빠, 급한 대로 3천5백만 원은 준비했어요. 이 돈으로 일단 시간을 벌어 봐요.”

 휴대폰에 저장된 선우의 전화번호를 본 그녀가 전화하려 머뭇거리다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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