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박목철
ㆍ작성일	2020-08-14 18:26

ㆍIP: 175.xxx.194

남도 여행(解憂所)

변소를 일컫는 명칭 중에 가장 멋진 것을 들라 하면 단연 해우소(근심을 더는 곳)가 아닌가 싶다.
뜻글을 소리글로 옮겨 뭔소리인지 모를 불경을 주문 읊조리 듯 합창하는 불교계에서,
-부처님 오신 날-이라는 산뜻한 소리글 표현과 해우소라는 오묘한 뜻글을 찾아낸 것은 박수받을 일이다.

좀 상스러운 표현이긴 하지만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건강하다는 말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질량 불변의 법칙에 따라, 먹은 음식 중 영양소로 쓰이고 남은 찌꺼기는 반드시 배출시켜야 하고,
이 과정은 은밀하고 편안한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 집이 아닌 장소에서나 주변이 시끄러우면 해우를
못해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은 먹는 것 못지않게 싸는 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지금은 화학비료가 널리 쓰이는 탓에 말 그대로 똥이나 오줌은 가치 없는 똥오줌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전 농사일에 종사하신 분들만 해도 자제분들은 학교 다녀오면 망태기를 들고
개똥을 주으러 다녔다고 한다. 아무리 급해도 남의 뒷간에 똥을 싸고 오면 호되게 꾸중을 들었던 추억을
새기시는 걸 흔히 듣기도 했다. 한국전 당시 피난지 부산 인근 촌락에서는 아침마다 드럼통 2개를
이어 만든 똥통 마차가 똥을 사러 몰려오곤 했다. "똥 파이소!" 피난지 부산의 아침을 깨우는 소리 중에는
똥 팔라는 소리도 있었다. 똥은 버려야 할 더러운 물건이 아니라 귀한 자원이었던 셈이다.

자연은 순환이고, 이 원칙이 깨지면 부조화에 따른 각종 피해를 피해 갈 수 없는 게 자연의 이치이다.
똥을 완전히 썩히면 기생충이나 세균이 소멸하고 훌륭한 비료가 되어 선순환의 한 축이 되는 셈인데,
심산에 자리한 절집에서 식량 자금을 위하여 농사도 지어야 했고, 똥은 쓰레기가 아니라 훌륭한 자원으로
재순환에 기여한 귀중한 존재였지만, 차가 절집까지 오르지 못하면 신도가 모이지 않아 절 보존이 어렵다는
세상이 되었으니 멋진 포장도로가 절집 코앞으로 이어지고, 수세식 변소는 뒷간의 기본이 된지 오래다.

절집과 뒷간과 관련된 얘기는 우스갯 소리로 여럿이 전해지기도 한다.
어느 절에 뒷간은 하도 높아서 똥 떨어지는 소리가 1년 후 들린다는 허풍도 있고, 비만 오면 물웅덩이로
변하는 뒷간에서 똥물이 튀는 것을 막는 비결을 스님들이 자랑하는데, 그네에 올라앉아 오가며 똥물을
피한다는 스님 얘기에 빙그레 웃던 큰 스님 왈, "튀어 오르는 똥물 위에 정확히 다시 한방" 하셨다니 고수는
뭘 해도 역시 고수답다 아니 할 수 없다.
일 년 열두 달 쉬는 날 없이 일을 해야 했던 옛 분들은 쉬는 시간인들 넉넉히 주어졌을 리 없다.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은 시간이야말로 자유롭고, 근심을 덜던 혼자만의 짧은 행복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선암사 해우소
지금은 어디에서도 푸새식 해우소를 만나기 어렵다.
여행길에 만난 선암사의 해우소는 "아직 이런 곳이?" 하는 반가움에 더해, 낯설지도 어색하지도 않았다.
나만의 감상인가 하는 의문을 떨치려는 듯 해우소 벽면에는 어느 시인님의 멋진 시구가 걸려 있었다.
뒷간에 시가 걸려 있다는 사실은 뜻밖이기도 하지만, 해우소와 시인과 만남이 전혀 서먹하지도 않았다.

선암사, 정소승 시인,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로 날아다닌다.

풀잎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라 했는데,
좋아진 세월 탓에 편하게 승용차를 타고 산사에 올랐고, 너와 나는 하나라는 일주문의 의미가
무색하게 너, 나의 간격은 2m, 그것도 못 미더워 마스크로 눈만 빠꿈, 사는 게 참 그렇다.
바라보면 온통 부처님과 극락세계가 가득 펼쳐진 절집에서,
해우소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떨구면, 버려진 근심들이 또 가득하나니, -南無阿彌陀佛-

* 이상으로 남도 여행을 다녀 온 감상은 5편의 글로 끝을 맺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칩거(蟄居) 중이신 분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상화

2020-08-15 19:02

반갑습니다. 박목철 작가님
그간 장마철에 별고 없으셨는지요
어젯밤에는 장대비를 밤새도록 퍼부어 댔습니다
장마철에는 특히 감기 조심하라 하네요
코로나 19는 지금 더 극성을 부리고 있답니다

존경하는 작가님
글로나마 자주 뵙고 안부도 전하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이 안타깝습니다.

남도 여행을 읽으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어쩜 제가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을 그리도
생생하게 엮어내셨는지 흥미진지하게 읽었습니다

6.25 피난살이를 할 때 똥을 팔고 사고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 보았습니다.
선암사 해우소 이야기 참으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작가님 장마철 몸 건강하시길 두 손 모읍니다


박목철	김상화 작가님, 반갑습니다. 코로나 사태에 더해 정치적 수까지 겹쳐 답답한 현실입니다. 다리 달린 생물을 묶어 칩거하라니 참으로 어렵습니다. 백성은 발이 묶이고 국정운영도 걱정이고 뭐하나 시원한 게 없습니다. 답답해서 나마 번잡함을 피해 다녀 보려해도 영 찜찜하긴 여전합니다. 하루 이틀새에 걷힐 사안도 아니니, 이런 시기에는 글이라도 열심히 써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습니다. 마음이 편해야 만사가 편하게 돌아간다는 걸 실감한답니다. 김상화 작가님은 산을 훨훨 다니시니 부럽기도 합니다. 좋은 산행기를 멈추지 않고 쓰시는 저력에 박수도 보냅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힘찬 모습 뵙게 되기를 기대 하겠습니다. 작가님,	8/20 10:04

정찬열

2020-08-17 06:47

존경하는 박목철 작가님
긴장마에 피해는 없으신지 요
"남도 여행기" 5부작으로 올려주신글
감명깊게 관심으로 배람했습니다.

우스게 소리 말마따나 예전에 백양사와
송강사, 선암사 총무원장이 한자리에 있을때
자기들의 사찰자랑에 마씀하신데로 선암사
총무원장은 자기네 해우소는 변을 누면 한시간후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자랑하니 송강사 스님이
송강사는 불자들을 위에 국을 끓이는 솥이 너무 커서
배를 타고 노젓듯이 한다하고 백양사 총무원장은
자기네사찰에 방이 너무 커서 아랫목에서 위목 까지 가려면
한나절이 걸린다는 우스개 소리 참 뻥치기 대회였나 봅니다.

항상 가내 건안 하시고 평안을 기원 드립니다.


박목철	정찬열 작가님 반갑습니다. 몸도 성치 않으신데 장마가지 겹쳐 힘드실 줄 압니다. 그래도 늘 긍정적이시고 밝으신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호남 지방에는 명찰이 참 많다는 생각입니다. 어느 절 김치는 하도 짜서 한번 먹으면 1년 간 물을 켠다는 우스게 소리도 들은 것 같습니다. 빨리 역병이 끝나서 자유롭게 다니게 되기를 빌어봅니다. 그간 역병에서 벗어나 있던 호남지방에도 병이 돈다니 걱정입니다. 늘 조심하시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기를 빌겠습니다. 작가님, 행복하세요,	8/20 10:11

피접(避接)과 피서(避暑)

곡선이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