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
직장에 다니며 호남 지방으로 출장을 다니는 일이 잦아 저변에 깔린 문화를 살펴볼 기회가 많았다.
분재를 잘 가꾼다거나, 그림이나 잘 쓴 글씨를 담은 족자를 철에 따라 바꿔 건다거나 하는 것은 다른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었지만, 호남 지방에서는 웬만한 민가에서도 흔히 보게 되는 일상이었기에
호남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문화가 있는 지방이구나!- 하고,
특히 음식에 관한 한 호남의 맛깔스러움은 비교 대상이 없을 듯도 싶다.
시골 벽지에 마땅한 식당이 없어 민박 주인에게 부탁한 한 끼도 그 맛깔스러움은 고급 식당이 무색할
정도였으니, 호남으로의 출장은 일단 어디를 가건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좋았다.
(영광에 파견 나간 대구 출신의 직원이 본사에 들렸기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라고 권하니
"가다가 먹겠습니다. 전라도 음식 정말 맛 하나는 죽여 주더군요") 영 호남인이 솜씨는 달라도 입맛은
같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가 옛날 맛 보았던 남도의 풍성한 밥상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길에서 찾았던 식당을 대충 꼽아보면 순천만의 꼬막 정식, 선운사 앞에서 먹은 더덕 정식,
향일암 인근의 갈치조림 정식, 여수 충무공 광장 근처의 김치찌개 백반 등을 들 수 있겠다.
(세 끼 정도는 화개 쪽으로 넘어가 경상도에서 식사한 셈이고, 간단하게 때운 끼니는 기억에 없다)
호남인들은 꼬막을 즐겨 든다는 사실은 평소에 호남 지인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깨끗이 손질한 꼬막을 데쳐서 깐 후 꼬막 껍질에 하나씩 올려 양념장을 얹은 꼬막을 대하고는 낯선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손과 정성이 많이 간 음식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음식이 꼬막이고,
더덕구이는 강원도 사람들이 즐겨 먹던 음식으로 호남지방에서 더덕구이를 먹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던 음식이다. 갈치조림은 바닷가이니 당연히 있을 법한 음식이지만, 갈치조림이 호남 음식
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여수에서 맛본 김치찌개 또한 생각지도 않은 음식이라 하겠다.
전라도 김치는 젓갈이 많이 들어가 곰삭은 감칠맛은 생김치에서의 맛이지 끓이면 텁텁해서 찌개로는
적당하지 않은 음식이기에, 어떤 맛?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음식이기도 했다.
꼬막이라는 단일 식자재로 무침, 전, 회 등 다양한 음식을 선보인다는 것은 호남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호사라 아니 할 수 없고, 선운사 앞 식당에서 맛본 더덕구이 또한 푸짐한 호남 음식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오히려 향일암 인근에 자리한 갈치조림 백반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요즘 갈치조림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호남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고, 맛 또한 수준급
인 곳이 많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더니, 호남 하면 부식으로 나오는 밑반찬에 감탄하게 되는데
갈치조림집에서는 소문 값을 하는 탓인지 밑반찬이 아주 부실해 이곳이 호남인가? 싶게 실망이 컸다.
여수 거북선 광장 인근에서 먹은 김치찌개는 맛도 훌륭할 뿐 아니라 호남 인심을 확실히 보이는 곳이었다.
계란 후라이를 2개씩 주고도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하는 당부까지 있었다.
호남도 옛 호남이 아니더라,
돌산대교 밑으로 해가 지고 나면 낭만포차라는 포장마차 촌이 말 그대로 불야성을 이루며 성업 중이다.
타지방은 코로나로 인한 불황으로 한산하지만, 여수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코로나 안전지대라는 소문
탓인지 관광객이 몰린다고 했다. 마스크도 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환한 불빛 밑에서 젊음을 즐기고 있었다.
같이 어울려 보려고 포장마차를 찾았지만, 안타깝게도 음식은 모두 퓨전 음식 일색으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했다. "어디 가서 삼합에 막걸리나 한잔 더하자"
택시를 타고 시내에 나왔지만, 삼합을 하는 식당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부탁했다. "삼합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돌아온 대답은 "요즘 삼합 하는 식당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대신 재래시장에 있는 먹자 포장마차 촌이 그런대로 괜찮다며 안내하더니 내릴 때
친절한 조언까지 곁들였다. -2*호에서 2*호까지가 음식 솜씨가 좋은 원조이니 그리로 가시라고-
이곳에도 삼합은 없었다. 하지만 낚시로 건져 올렸다는 생소한 여러 물고기를 맛볼 수 있었고,
단골인듯한 옆자리 토박이 술꾼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낯선 음식과 낯선 이들과의 대화도 한몫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 않은가?
얼큰히 취한 눈으로 바라보는 바다도 아름다웠고, 낯선 이들의 사투리도 정겨웠다.
코로나로 주눅 들어 웅크렸던 어깨가 활짝 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여행은 행복한 것이다.
* 화개 장터로 넘어와서 점심으로 시킨 국밥은 몇 숟갈을 뜨고 포기했다.
저녁은 뭘 먹을까 걱정하다가 지방색이 없는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짜장을 시켜 먹기로 했다.
손바닥만 한 땅이라고 하건만, 어찌 음식 맛도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혀를 탓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놈의 혀가 문제여!
- 여행에서 느낀 큰 줄거리만 표현하였습니다. 한 두 편 더 소개할 예정입니다.
김상화
2020-07-18 17:30
반갑습니다. 박목철 작가님
음식 문화로는 최고인 호남지방을 다녀오셨군요
저는 자주는 다녀오지 못했지만 갈 때마다
푸짐하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대접받을 땐 그냥
기쁨이 쏟아졌답니다
호남지방은 멋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방 같습니다
작가님께서 지적하셨듯이 그림과 아름다운 붓글씨가
호텔이나 여관에 걸려있는 것을 볼 때면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느껴지지요
존경하는 박목철 작가님
작가님의 글은 순수하면서 속이 꽉 찬 잘 익은
수박이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준다고 할까?
그런 느낌입니다.
더위 잘 이겨 내시고 코로나 아직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늘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두 손 모읍니다
박목철
김상화 작가님, 반갑습니다. 늘 좋은 덕담으로 치켜 주시니 감사 도 감사입니다. 게으른 탓에 세세한 묘사는 피해 가는 제 글이랍니다. 힘이 넘치는 작가님의 글을 대하며 깨우침을 얻곤 한답니다. 나이가 있으니 코로나에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작가님,
물론 사전에 조율된 코스가 아니고야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사정이 허락되신다면 특히 삼합 말씀을 하시니 꼭 한번
광주 쪽에 오시면 연락을 주셔요 저에게
특히 홍어 삼합은 예전부터 숙성이 맛을 가름하는
천년고도 내가 태어난 고향 羅州 이지요
물론 목포에도 있다지면 호남지방에 홍어 축제를
하는곳이 나주 에서도 육지에 등대가 있는 영산포 지요
끝나지 않은 코로나와 계속 산발적으로 내리는
7월의장마에 건강과 편안한 여름나기 하시길 기원 합니다.
박목철
정찬열 작가님 너무 간만에 소식을 접합니다. 여전히 밝고 힘이 넘치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오래전에는 호남에 가면 정말 입이 행복했답니다. 지금도 맛이야 어디 가겠습니까 만, 예전의 풍성함이 느껴지지 않아서 서운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표준식단이 어떻고 하며 강제로 반찬수를 줄이라고 했을 때, "배 아파서 호남음식을 견재하는 구나" 하는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주에서 곰탕을 먹던 생각이 납니다. 좋은 고장이라 생각도 했고요, 다시 뵈올 때 까지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7/19 16:46
정대수
2020-07-20 10:53
박목철 작가님 안녕하세요.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 숙식이 제일 큰 문제지요.
호남지역의 음식 문화는 잘 알려져 있는데로 맛과 종류 그리고 양도 대단하지요.
저도 자주 접하지는 못했지만 그 인심만큼은 우리가 본받아야할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삼합이 막걸리와는 찰떡궁합인데...ㅎ
여름더위에 장마와 코로나19로 혼란한 요즘 건강관리 잘 하셔서 행복한 나날이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박목철
정대수 작가님 반갑습니다. 요즘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삶이 삭막합니다. 이 판국에 무슨 여행이냐고 말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역시 여행은 좋았습니다. 호남지방의 음식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정대수님,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지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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