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박목철
ㆍ작성일	2017-09-27 10:15

ㆍIP: 118.xxx.100

이삭줍기의 浪漫,

요즘 사람은 이삭줍기(줏기)란 말 자체가 생소할 것이다.
줍는다는 것은 남이 버린 것을 갖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니 거부감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만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신, 시골에서 성장한 분들은 이삭줍기는 해마다 추수가
끝나면 보게 되는 흔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자기 땅을 소유하지 못해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빌릴 땅도 없어 이집 저집 다니며 품팔이로 먹고사는 농민도 상당히 많았다.
일제에 압박에서 해방되고 나서 남이나 북에서 제일 먼저 단행한 일이 토지 개혁이었다.
북에서는 토지 전체를 빼앗아 국가 소유로 했지만, 남한에서는 지주에게 보상을 채권으로 하고
징발한 토지를 실제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2정보(6천 평)씩을 나눠 주었다.
이런 토지 개혁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의 진단도 있다.

토지 개혁과 이삭줍기가 무슨 상관? 하시겠지만, 상당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제 땅이 없는 사람이 남이 수확한 농산물을 맛볼 수 있는 수단이 이삭줍기가 아니었을까?
지금이야 먹을 것이 지천이지만, 옛날에는 고구마가 주식의 역할 외에도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소운이 어릴 때만 해도 어른이 외출하면 귀갓길에 사 오던 군고구마는 너무 기다려지는
맛있는 별식이기도 했으니,

동네 고구마밭에서 가을걷이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가난한 분들도 상당히 많았으리라,
고구마밭의 가을걷이가 끝나기가 무섭게 호미와 광주리를 준비해 일차 걷기가 끝난 밭에서
미처 캐지 못한 고구마나, 잔챙이들을 열심히 캐는 게 소위 이삭줍기(줏기)이다.
이삭줍기에는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모두 동원되어 열심히 이랑 언저리를 파헤쳤다.
힘은 들지만, 생각보다는 수확이 괜찮은 것이 이삭 줍기고, 아이들은 맛있게 쩌낸 고구마를
생각하며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침을 삼키었을 법 하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삭줍기에도 우리만의 생존 법칙이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과일을 거두면서도 까치를 위해 까치밥이라 하여 남겨 주던 미덕이 우리에게 있었는데 하물며
사람을 위한 인정이 없었겠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농산물 -서리-도 단순 도둑질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이 현장에서 한두 개 먹고 가는 것은 범죄시하지 않는 인정도 있었다)
아마도 땅을 가진 지주는 가을걷이 할 때 너무 야박하게 싹쓸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 게 밭에는 가봐야 건질 게 없어" 이런 야박함은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협회지인 공재룡 시인의 초청을 받고 충청도 일죽 인근 삼성이라는 곳에서 이삭줍기를 했다.
옛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기계로 가을걷이를 한다는 점이지만, 걷기가 끝난 밭에서의
이삭줍기 풍경은 지금도 낯설지 않게 남아 있었다.
여기저기 자가용을 타고 와 이삭줍기에 열중하는 분들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분들도 옛
정서를 맛보려고 신발에 흙을 묻혀가며 열심히 땅을 파고 있을 것이다.

공재룡 시인의 집에서 도축장에서 사 온 싱싱한 고기로 배를 채운 우리는 쇠스랑과 호미로
무장하고 기대에 찬 이삭줍기에 나섰다. 문회숙 시인과 문 시인의 지인이라는 변갑진 님,
최상근 박사와 소운, 처음 생각보다는 참가 인원이 적었지만, 열심히 땅을 파헤친 덕에 상당한
분량의 이삭줍기 성과를 올려 수확의 기쁨을 맛보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공 시인께서 선물한 술까지 더해, 고구마의 무게로 조금 걷다 손을 바꿔 가며 들어야 할 만큼
고구마의 양이 많았다)

소운도 그렇지만, 최상근 박사도 어디 노동을 해 본 적이 있었겠는가?
열심히 땅을 파헤치는 최상근 박사를 보며 한마디 했다. "입으로 벌어 먹고살기보다 손발로 하는 게
힘들지요? 쇠스랑이 질 몇 번에 숨이 턱에 차는, 어쩌면 스스로에 한 소리가 아니겠는가?
풍요로운 세상을 살며, 힘겹게 생존을 유지해 온 이 땅의 농민을 생각하는 좋은 기회가 이삭줍기였다.
트랙터가 훑고 간 황량한 황토밭에 잔챙이 고구마가 싹을 새로 틔우고 있는 것이 곳곳에 보였다.
싹을 틔워 본들 머잖아 몰아치는 삭풍에 다 얼어 죽을 터인데, 문득 인생의 허무함이 가슴에 와 닿았다.
풍성하게 열매도 못 거두고 철 지난 계절에 싹을 틔워서 뭘 어쩌려고?

이삭줍기,
말 그대로 주운 것이니, 삽날에 찍히거나 꼬맹이거나 볼품은 없는 고구마지만 땀 흘린 대가이니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이삭줍기 고구마, 공재룡 시인님의 우정까지 더해 어떤 맛일까?

이삭줍기, 소운/박목철

가을걷이가 끝난
虛虛한 고구마밭에서
이삭줍기를 했다.
까치밥 남기듯
트랙터가 흝고 간 이랑 사이에
꽁꽁, 숨은 고구마,

계절을 잊고
턱도 없게 새싹을 틔우는
철 지난 꿈이 안쓰러워
봄 아니야,
가을이거든,

땀을 훔치며 하늘을 봤다
파랗고 높은 하늘을
이렇게 지는 것인가?
이삭줍기를 잠시 잊었다.
가을 때문에,

백낙은 2017-09-27 10:45	소운 작가님. 아주 좋은 시간 가지셨군요. 우선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시인님들이 가까이 계신다는 것에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삭줍기"는 추억을 되살리는 추억여행이었네요. 저도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을 다녀 왔습니다. 저의 외할머니는 벼를 벤 자리에 가셔서 자주 이삭을 줍곤 하셨답니다. 그러나 수확은 그리 많지를 않았지요. 요즘은 기계로 수확을 하기 때문에 버려진 이삭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가 푸드뱅크 원장을 할 때 수확을 못한 무 배추를 손수 거두어다가 이웃과 나누기도 했습니다. 요즘 어린이 들은 떨어진 감 홍시도 주어 먹지 않더군요. 이삭줍기로 버려지는 식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파랗고 높은 하늘" 그냥 보내지 않으렵니다. 감사합니다.

박목철 2017-09-27 11:46	《Re》백낙은 님 , 일요일에 협회 행사가 있는 탓에 오래 뵙지를 못했습니다. 이렇게 나마 뵈오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고구마도 트랙터가 그냥 훑고 지나가니, 잘 건지면 제법 이삭줍기도 짭짤 하다 하더군요, 우리가 어리던 시절에는 최고의 간식이 군 고구마 였는데 지금 애들은 먹기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모임을 갖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저도 양평에서 삼성까지 서너시간 가야 하더군요, 몇 번이나? 하는 심정으로 모임에 갑니다. 늘 따뜻한 댓글로 격려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위원장 님, 오랫동안 건강하시고 좋은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정찬열 2017-09-28 20:13	소운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이삭줍기의 浪漫" 즐겁게 배독했습니다. 그런데 어릴적 저역시도 이삭 줍기는 했지만 요즘 트랙터로 캐는 고구마밭에도 이삭이 있나 했는데 의심이 풀렸습니다 요즘 벼를 기계로 탈곡 까지 하는 탓에 벼이삭이 없어 들쥐가 없고 들쥐가 없으니 뱀까지 없어지는 농촌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운봉 시인님과 소운 작가님 최박사님 함께한 이삭줍기(줏기) 가 눈에 선하게 새록새록 하셨겠습니다. 몇일 남지 않은 긴연휴와 중추가절 행운이 충만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늘 건안 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박목철 2017-09-29 15:15	《Re》정찬열 님 , 정찬열 작가님, 반갑습니다. 시골에 사는 엄도열 시인께서 그러시더군요, 요즘은 트렉터로 수확을 하는 탓에 오히려 이삭이 많이 남는다고 합니다. 대충 잘 된 고랑만 수확하고 잔챙이는 버려 둔다고 합니다. 상품 가치가 없으면 캐지 않는 답니다. 일차 추수가 끝난 뒤 바로 가면 꽤 수확이 있다고 합니다. 긴 연휴가 시작입니다. 평안하시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김종덕 2017-09-29 16:23	박목철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이삭 줍기. 옛날 국민학교 시절에는 이삭붑기를 학교에 가져다 낸 시절이 있었읍니다. 그 때는 참 왜 그런 일들을 시켰을까하는 생각과 그 벼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끝까지 이삭줍기를 시켰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참,.... 그냥 추억으로 남습니다. 왜 거두었는지도 알 수 없엇고, 적게 가져오면 좋지 않은 말을 들어 그렇게 좋은 기억은 없습니다만, 시인님의 글에서 고구마 이삭줍기는 낭만 처럼다가옵니다. 사실 우리 감자밭 끝나면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고 할머니는 감자를 더 챙겨 주시곤 했읍니다. 이삭줍기는 이삭을 줍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줍닌 것이었읍니다. 그 낭만 간직하고 싶습니다. 건강하시고, 고운 가을에 고운 추석 맞으시길 기원드립니다.

이석희 2017-10-01 08:35	소운 작가님! 볼품 없이도 가난했던 지난 날이 떠오릅니다. 변변한 밭뙈기 하나 없는 시골 촌구석에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어머니와 둘이서 사는 저는 이맘 때쯤이면 책보퉁이를 방구석에 내던지고 어머니와 함께 먼 산자락에 자리한 다 거두어간 고구마 밭으로 향합니다. 밭이 꽤나 넓었기에 이삭줍기를 하는 데만도 한 나절은 족히 걸렸었지요. 어쩌다가 몸집이 큰 놈이라도 만날라치면 어머니와 나는 신이 나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요. 며칠 전에 텃밭 고구마를 수확하였습니다. 집사람과 둘이서 그 이야기를 하면서 숙연하였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옛날 빛바랜 앨범을 다시 보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소운의 일요 放談(댓글은 술잔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