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고국의 첫봄.

  시골 철도역에서 고향 땅 끝까지 아버지 친구 김 씨가 태워다 준 트럭 덕택에 편안히 도착했다.

 큰 아버지 집에 들어가니 사촌들이 모두 짚신을 신고 짚으로 꼰 새끼로 둥글게 똘똘 말아 공을 만들어 공차기를 하고 있었다. 의복은 무명배로 한복을 지어 입은 듯 남루해 보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 삼형제는 양복차림에 소가죽으로 맞춤구두를 신고 있었으니 얼마나 달리 보였겠는가?

 큰 집에는 행랑채에 사랑방이 있고 본채에도 사랑방이 있었는데, 우리 식구는 모두가 본채에 있는 사랑방의 상하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큰 어머니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닌 줄 알고 있었지만 당장에 어디로 이사할 수 있는 형편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진짜 주인인 처지인데도 샛방 살이를 하면서 떠날 일을 염려하고 있는 형편인 셈이다.

 이렇게 고국의 농촌에서 한 일주일 지내니까 음력10월 보름의 시제 날이 되었고 해원 도선 산에서 시제를 모시고 집에 오니까 일본에서 단체로 온 공장직공들이 큰 집에 모여 있었으며 공장장 류 옥천은 몸이 불편하다고 연락하고 오지 안했다. 몸을 추스르고 나서 며칠쯤 후에 오겠노라는 전언과 함께.

 그런데 시끄러운 문제가 발생했다. 공장직공 중에 두 사람이 행불이 되어 고국에 돌아오지 못 한 사건이 이미 잉태되어 있었으니 그 두 청년의 부모들이 찾아와서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니 이것도 보통일이 아닐 수 없다. 당초에는 징용 간 아들을 아버지 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정을 해서 대려와 편히 살렸으나 오사카 공습 때 명령대로 피신을 하지 않고 개인행동을 해서 실종된 것인데 아버지께 책임을 묻고 몸 값 보상을 해달라니 아버지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지만 어쩔 수 가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들 부모들에게 위로금조로 각각 논 5마지기씩을 가을농사가 끝나는 후에 주기로 하고 화해를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공장장 류 옥천이 아버지를 찾아와서 오사카에서 출항 후 쓰시마에서 배가 파선된 경위와 싣고 온 화물의 침몰로 인한 분실과 이를 위하여 직공들을 어떻게 동원하여 구제작업을 벌였는가에 관하여 열심히 경과보고를 하였다.

 “그렇다면 왜 준호(외삼촌의 이름)가 고리짝을 건저 방석에서 돈을 챙기는 것을 보고도 묵인했으며 그 돈을 회수하지 아니 했는가?”

 “바다 물속에 들어가 내가 수고해서 내가 건진 것을 내가 갖는데 무슨 잔소리냐 고 대드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말이라고 시방 지껄이고 있는 것이여? 배를 대절해서 공장장한테 책임을 맡기고 왔으니 그 배에 실려 있는 화물의 소유권을 주장하여 회수하여야지 습득했다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도둑놈을 그대로 방면하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냐?”

 “--------”

 “그리고 직공들한테 들은 바에 의하면 돈방석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으니 이것은 어떤 사유냐? 자네 부부만 알고 돈방석을 챙겼다는 이야기인가?”

 “천만에 말씀입니다. 우리가 건진 것이 의류나 비단포목이 들어 있는 고리짝이 대부분이었고 돈방석이 든 것은 하나밖에 건지지 못 했어라우. 그러니 직공들이 못 보았을 거구만요.”

 류 옥천공장장이 오리발을 내미는 데는 아버지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심증은 있지만 증거가 없으니 어찌할 것인가?

 첫날은 이렇게 헤어졌으나 그 후 한 달쯤 지난 어느 초겨울에 아버지가 같은 마을에 사는 옛 공장직공으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 즉 공장장이 부산에서 상당히 많은 일본은행권을 조선은행권과 바꾸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얼굴이 상기되어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강해행을 했다. 아버지가 강해에 찾아가서 큰 아버지(아버지의 동복형)도 계시는데 그 조카사위에게 얼마나 다그쳤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입수한 정보에 의한 내용은 확실하게 해명을 듣고 왔으리라고 생각할 뿐 결과는 어떠했는지 아는바 없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류 옥천의 진술과 맞지 않은 정보를 입수할 때마다 강해를 찾아가 공장장과 한바탕 설전을 하고 왔고 그 때마다 아버지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게 얼굴도 핼쑥해지곤 했다. 이런 일이 아마도 너덧 차례나 있었으니 얼마나 피차 괴로와 했을까 짐작이 간다.

 그러나 류 옥천은 아편중독이 되어 쉰 살을 넘기지 못 하고 죽었으니 인과응보라 할 수 있고 아버지도 그 후 20여년 더 사시다가 돌아 가셔서 돈방석의 사건은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는데 이것이 상기되는 일이 발생한다.

 류 옥천의 장남인 류 순명이 K시의 강동 구청장을 민선으로 당선된 후 재산공개가 된 내용에 관하여 기자회견장에서 문답을 한일이 있었다.

 “류 구청장은 재산공개에 의하면 25억 가량이 된다고 했는데 이 많은 재산을 공직생활 중 어느 때에 모으셨습니까?”

 그 당시 청렴하게 공직생활을 한 사람들을 평균해서 삼십년 근속이면 재산형성 실적이 대강 1억5천에서 2억원 정도의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므로 기자의 질문은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이 때 류 옥천의 장남인 류 구청장이 웃으면서 답변하기를

 “아~, 그 재산은 나의 선친으로부터 물러 받은 것입니다.”

 오막살이 초가삼간의 가난한 처갓집에 장가를 든 후, 무일푼으로 징용을 두려워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불러 들여 기술을 연마시키고 공장장까지 키워준 류 옥천이가 해방 후 일본에서 귀국하여 갑자기 부동산 부자가 될 수 있었단 다면 그것이야 말로 돈방석의 의문을 모두 풀어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 것이다.

 일본에서 나와 땅 끝 초등학교 4학년에 편입하여 말을 못하니까 아이들의 놀림을 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 당시 4학년의 또래 아이들은 모두 나 보다 두세 살 위여서(심지어 너덧 살 위도 있었음) 체격들이 대체로 모두 좋았다. 삼십 리는 보통이고 큰 산 고개 넘어서 학교에 통학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때 나는 산수는 잘 하는데 국어가 영 쉽지 않았다.

 그 해 가을도 수확이 끝나고 들녘은 텅 비여 어쩐지 가년스럽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만추에 우리가족은 M시로 이사를 가게 된다.

 대성동에 연립 식으로 일자로 지은 집에 이사를 했고 아버지는 무슨 용무인지 부산으로 출장을 자주 다니셨고 오실 때마다 연필을 몇 타수씩 사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는 산청국민학교로 배정되었고 교장실에 들어가 간단한 면접을 보았다.

 “아이가 일본에서 나온 지 몇 달 안 되어서 말을 잘 못하지만 집에서도 잘 가르치겠으니 교장선생님께 잘 부탁 들입니다.”

 “아, 그러고 말구요, 어린아이들이니까 말은 학교생활을 하면 그냥 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4학년 3반 교실에 배치되니 애들도 모두 내 또래들이고 시골학교 보다 훨씬 크고 깨끗하고 마음에 썩 들었다.

 누나는 아마 여중에 다녔을 것인데 통 기억이 없다.

 나는 우리말도 나날이 늘어나고 학교생활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 날 부턴가 한 책상에 앉은 짝이 나를 집적거리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기 용남이라는 애로 해방 후에 만주에서 한국으로 나왔다는데 얼굴은 흡사 원숭이 상을 하고 행동은 꼭 마적단 두목처럼 잔인하고 말은 욕이 아니면 못 하는 개망나니였다. 수업시간에는 조용히 앉아 있지만 일단 쉬는 시간만 되면 온 교실을 갈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못 살게 구는데, 손으로 발로 집적거린다. 나는 이 기 용남에겐 주눅이 들어서 고양이 앞에 쥐가 되어 살아야 했다. 그래서 매일 연필 한 자루씩을 달라는 대로 바쳐야 했는데 계속 한 보름정도 바치고 보니 집에 남은 연필이 동이 나고 말아 더는 바칠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나는 학교로 가면서 비장한 각오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틀림없이 연필을 내 놓지 않으면 나를 욱박지를 것인데 나는 어찌해야할 것인가? ‘한 판 붙자!’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야! 임마 연필 안 내 놔?”

 “없어! 오늘 부터는 없다!”

 “야, 이것 봐라 니가 나한테 감히 덤벼?”

 “연필이 다 떨어지고 없으니까 없다는 것인데 어쩌라는 것이냐?”

 “오메 나 미치겠네, 오이 애들아 이 새끼가 오늘 나한테 덤빈다 안 하냐 이따 시간 끝나면 한 사람도 가지 말고 한판 붙는것 심판해라잉.”

 이리하여 교사 뒤뜰에서 학급아이들이 둥글게 원을 그린 가운데 둘이 서서 격투가 시작되었다. 기가 놈은 권투 폼을 잡고 벌떡 벌떡 뛰면서 발로 차기도 하고 원투로 두 손을 뻗기도 하는데, 나는 이제까지의 굴욕을 오늘 이 한판으로 앙갚음하려고 성난 얼굴로 두 손을 뻗은 체 물러나지 않으니 그미가 기가 조금 꺾인 것처럼 보였다. 후닥닥 하고 몇 차례 부딪혔다가 떨어지기를 계속하던 중 나는 머리를 숙이고 잽싸게 파고들면서 그미의 허리를 잡자마자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그미 가슴팍에 올라 타 두 주먹으로 연속 후려치기 시작하자 대번에 그미 코에서 코피가 흐르고 울고 만다. 주위에 있던 심판원들이 ‘그만, 끝!’하며 싸움을 말리니 진짜 게임 끝이다. 나는 먼지를 털면서 기가에게

 “내일 한판 더 붙을래?”‘ 한마디 던지고 가방 끈이 긴 일본에서 얻어온 가방을 메며 그 자리를 떠났다. 많은 동무들이 내 뒤를 따랐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분위기가 싹 바꿔졌다. 기가는 내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흡사 고양이 앞에 새앙 쥐처럼 주눅이 들어 옛날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다른 애들도 나를 대하는 것이 아주 달라져 조심스럽고 호의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 기분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이것은 오로지 나에게 씨름을 가르쳐 준 아버지 덕이라 생각하면서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얼마 후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 아버지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좁다는 이유로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를 서둘렀다. 그 집은 2층 양옥집으로, 예수교 선교사들이 살았던 돌집이 여러 채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의 초입에 있었다.

 우리 집 뒤에는 여러 가지 꽃들을 잘 가꾼 정원이 있는 초가집이 아담하게 앉아 있어서 2층 창에서 바라보면 그 집 마당이 우리 집 1층 지붕 높이의 언덕 이어서, 곱다단 할머니가 꽃나무들을 손질하는 것이 잘 보였고 갓방에서 가끔씩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을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할머니는 장로교회 권사라 했고 그 갓방의 연주곡의 주인공은 중학교 5학년인 형인데 얼굴이 어찌나 백옥 같았는지 내 마음이 불안 할 정도로 창백했다.

 나는 동무들과 함께 뒷동산에 있는 선교사 돌집에 가서 놀기도 했다. 서너 채의 돌집이 약 10 미터 간격으로 오롯이 서 있었지만 하나같이 텅 비어 있었다. 계단으로 올라가 현관 안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지하계단으로 내려가 어두컴컴한 지하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슬쩍 훔쳐보고 달아나기도 했었다. ‘선교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는 일요일이면 그 건물 앞에 있는 샛길로 교회 주일학교에 오고 갈 때 노상 혼자 묻곤 했다. 너무나 훌륭한 건물을 내 버려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겨울은 가고 새 학기가 다가올 무렵 내 어린 날의 회상 가운데 처음으로 슬프고 가슴 깊고도 애잔한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우리 집 뒤 언덕의 아담한 초가집에서 장송곡인 찬송가가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라고 들려오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대는 말에 의하면 클라리넷을 다루는 그 형이 죽었다고 했다. 그 악기로 인해 폐에 무리가 돼서 생긴 병이 죽음의 원인이라고들 했다. 그리고 그 곱다단 할머니도 곧 돌아가실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형은 물론 홀로 된 할머니가 몹시 불상하고 가련해 여러 날을 우울하게 지냈다.

 그러나 세상엔 슬픔만이 길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투수용과 일반용등 여러 개의 야구장갑과 야구공과 함께 야구방망이도 몇 개 사서 들어오면서, 새 학기가 되면 동네에 아이들을 모아 공설운동장에서 야구시합을 할 수 있도록 해주마고 약속 하였다.

 ‘아~,새 학기에 5학년이 되면 나도 중학교 형들과 함께 운동하게 되는구나, 이제 어린 날은 어언 사라지려는가?’   끝.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송 담  김 일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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