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들어 두 번째 눈이 내렸던 날의 다음 날인 일요일, 아버지는 예고 없이 우리들과 함께 오까다우라의 사자끼씨 집에 가겠다고 하셔서 우리는 통상 거래관계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남바에서 탄 전철이 도심을 지하로 뚫고 달리다가 전원지대에 이루면서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 지상 철로를 달리게 되자 기분이 매우 상쾌하였으나 사까이 부근에서 펼쳐지는 우중충한 바다와 모래톱을 경계로 줄지어 서 있는 어두운 색깔의 겨울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오자 내 마음은 어쩐지 우울해졌다.  

 사자끼 씨는 아버지로부터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다 맞아들이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거실에 오르자 대뜸 우리 남매를 사자끼씨 부부 앞에 무릎을 끌려 앉히고 ,그들에게 큰 절을 올리고 사죄를 청하니 일본인 부부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제 딸의 과실에 대하여 애비로서 대신 사죄를 올립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사자끼씨 부부는 이구동성으로 당황해 한다.

 “며칠 전에 제 딸아이가 귀댁의 장롱에서 밀감을 두 개 훔쳐 남매가 함께 먹었다고 자백해서 알았습니다마는 자백한 것은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증거이니 한번만 용서 해주실 수 없겠는지요?”

 “우리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세쓰짱을 그렇게 하도록 충분히 먹이지 못한 죄가 저희 부부에게 있으니 사장님께서는 너그러이 저희를 용서하시가 바랍니다.”

 사자끼씨 부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무릎걸음으로 누나에게 다가와 누나의 두 손을 잡고, 밀감을 하나 밖에 주지 않았던 자기의 인색함을 용서해달라고 하소연을 한다.

 “무슨 당치 않은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어서 용서해 주십사고 빌지 않고 뭐하느냐?”

 “아줌마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께요.”

 이렇게 누나가 사죄하는 것으로 모든 일이 끝나고 아버지의 소기의 목적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사자끼씨 부부와 술상을 맞이하여 담소를 나눈 후에 곧장 남바로 가셨다.

 그 다음날 아침부터 예의 고구마 덩이 죽은 우리 남매에게는 배식되지 않았고 흰 쌀밥을 공기에 가득 담아 별도로 주어졌다. 누나는 당연하다는 듯 태연히 먹었으나 사자끼씨집 두 딸들에게 몹시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오까다우라 어촌의 겨울은 회색 빛 바다와 하늘로 을씨년스럽기만 한 체 한겨울로 접어들고 있었고 우리남매는 즐거운 겨울 방학을 맞이하여 오사까로 철수 했다

 그러나 겨울 방학이 끝나기 전에 아버지는 오까다우라에 주택 한 채를 구입하고 모든 가족을 이사시켰기 때문에 누나와 나는 더 이상 사자끼씨 집에 가지 않아도 되었고 주말마다 전철을 타고 남바에서 오까다우라로 왕래 하지 안 해도 되었다.

 우리 가족이 오랜만에 함께 살게 되었는데 부모님과 남동생 둘과 간난이 여동생 그리고 누나와 나, 모두 일곱 식구다. 새 집은 어촌에서 비탈길을 오르면 신작로가 있다고 앞에서 예기한바 있지만 그 신작로를 건너 모여 있는 일반 주택가에 있었다. 그러니까 신작로를 막 건너서 세 번째 집으로, 한길 왼편에 대문이 있었고 대문을 들어서면 ㄱ 자 가옥에 왼편에 사랑방 거실 그리고 주방이 있고 ㄱ 자의 구부러진 쪽에 안방이 있었다. 마당은 아주 넓어서 대문을 들어서는 오른 쪽에 커다란 창고가 있어 후에 요긴하게 쓰였다.

 전황은 날마다 일본군이 옥쇄를 하고 태평양의 여러 섬이 함락했다는 기사로 신문을 도배질 하는가 하더니 드디어 1945년 3월10일 미군의 대공습으로 도쿄 남부일대가 완전히 허허벌판으로 변한 바 있더니 나흘 후인 3월 14일 오사카의 나니와꾸의 대공습은 소이탄만으로 공장지대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으니 아버지의 공장이 견뎌 남을 수 있었겠는가? 그 당시 미군의 보잉29 전폭격기는 10,000미터 상공에서 유유히 폭격하였고 일본 공군에는 그 높이까지 요격할 수 있는 전투기도 전무했고 그 높이까지 사격할 수 있는 고사포도 전무한 형편으로 전쟁은 아예 게임이 안 되는 실정이었다. 일본은 이미 심장부를 강타 당하고 있었고 민심은 흉흉하기 시작했으며 일본 군부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독전하고 있었다.

 3월14일 새벽에 대공습이 있었으니 그날 저녁 무렵이었을까 100여명의 피난민 떼가 우리 집으로 들이 닥치는데 얼마나 험한 차림인지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들어 구경하였으며 동정의 눈물을 흘리는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나는 어린 몸이었지만 여러 환자들의 진료를 위하여 병원으로 그들을 인도 하여야 했다. 두 귀가 화상을 입고 머리털이 타져버린 홍안 형님 손을 다치고나 발을 다친 사람 수십 명의 부상자를 인솔하여 병원에 가고 오고하는 것이 매일 매일의 나의 임무였다. 새 집에는 커다란 창고가 있어 훗날 유용하게 쓰였다고 앞서 말한 적이 있지만 전재민이 100여명이 되다 보니 그 창고가 커서 천만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집을 살 때에 이미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마당이 넓고 큰 창고가 있는 이 집을 골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장장 다마가와(玉川)매형의 가족은 사랑으로 모시고 부상자는 거실로 모시고 그 외 나머지 사람은 모두 창고에서 침식을 하며 지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공장장의 부인(아버지의 동복형님의 딸)인 누님과 정님 누님(고모의 딸)과 나의 사촌인 삼례누님이 있어 어머니를 도아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앉아 식사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이 사람들이 오까다우라에서 갖은 소문을 다 만들고 다녔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한번은 바닷가에 나가 보았더니 이 난민들이 떼를 지어 다니면서 바닷가에서 게를 잡기도 하고 감태를 채취해서 말리기도 하니 당시 감태를 모르는 그 곳 어민들이 사람마다 질문을 던지고 지나가곤 했다.

 “이것이 무엇인가요? 말린 후 어떻게 요리해서 먹는가요?”

 그 때마다 일어를 아는 사람이 있어야 통역을 해주지 대부분 징용에 끌려 일본에 왔다가 아버지의 구조로 오사카에 올 수 있었던 사람들이니까 손짓으로 설명해 보이고나 직접 감태를 입에 넣어 먹어 보이거나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오사카에 나가 화재보험과 저축예금등 금융 업무를 처리하면서 실직 중인 대식구의 보금자리 찾기에 골몰하였으니 그 많은 식구들이 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얼마나 초조했겠는가 짐작이 갈만한 일이다. 그 당시 아버지가 받은 화재보험금은 내가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의 큰돈이었다고 들었다.

 드디어 아버지가 새 공장 터를 구입하고 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꽤 큰 트럭을 네댓 대 대절하여 맨 앞차에는 우리 집 가구와 우리식구들이 타고 나머지 차에는 공장직공들이 분승하여 출발하였다. 요도 강 다리를 지날 때에는 군데군데 폭격으로 패인 큰 구덩이를 피해 요리 저리로 S자 운전을 하느라 운전기사가 애를 먹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도 강을 건너 강변을 달리다가 모리구찌의 평야지대를 지나 더 북 쪽으로 달려 가자 높은 산들이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5.이바라끼(茨木), 산 좋고 물 맑은 산촌.

 가쓰오지 강(勝尾寺川)은 이바라끼시(茨木市)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 미노시(箕面市)를 길게 가로 질러 서에서 동으로 수평으로 흘러 내려오다가 이바라끼시에 들어오자 갑자기 남행하면서 완만한 S자형으로 계속 남진하고, 다시 몸을 비틀고 북진하면서 완만하게 다시 활 모양으로 남진하려는 찰라 북 쪽에서 곧장 남진하는 훨씬 작은 사호 강(佐保川)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합류지점에서 약 300미터쯤 하류에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와 연결된 도로를 동 쪽 제방을 지나자마자 제법 큰 밭에 우뚝 서 있는 200여평 가량의 2층 건물과 만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가 구매해 놓으신 제2의 공장건물이다. 현대식 양계법을 전수하고자 2층을 수련생들의 기숙사로 꾸미고 아래층을 양계사로 설계한 건물이었기에, 2층은 그대로 직공들의 숙소로 사용하고 아래층에 기계 기구를 설치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버지는 전시체제의 생산을 떠나 평화시의 수요에 영합하기위해 여러 가지 품목에 착안해 보다가 결국 우산을 생산하기로 하였다. 대공습 이래 그 많은 직공들을 실직상태로 방치하고 피난민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오까다우라의 비참했던 지난날을 돌아볼 때 이처럼 짧은 시간에 공장을 재건하고 다시 개업할 수 있다는 것이 아버지에게는 얼마나 기쁨이 충만한 일이었던가를 어린 날의 나는 전혀 알지 못 했으며 그때를 회상하는 지금에서야 아버지의 불굴의 의지에 감동 감격하여 눈물이 머금어 질 따름이다. 더욱 더 기쁘게 한 것은, 공장과 함께 구입한 넓은 밭에서 여러 가지 채소를 가꾸며 자급자족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두 강이 만나는 합류점에서 사호 강 상류 쪽으로 500미터쯤 올라가면, 높이 2미터 폭 6미터정도의 보가 있어 폭포가 되어 물이 흘렀으며 그 아래로는 자연스럽게 물웅덩이가 만들어 졌다. 이 보 위쪽으로는 사호 강이 갑자기 작아져서 골이 깊은 시내가 되고 골이 깊은 만큼 다리도 높이 걸어진다. 이 다리는 나무다리로 강 양쪽의 동네를 이어주는 구실을 하고 있었는데 강 서쪽에 더 큰 동네가 있었고 강 동쪽은 동네가 보다 작아서 전통적인 농가 15여 호가 있을 뿐  일본 농촌에서는 보기 드문 붉은 기와를 인 양옥집이 한 채 있었다.

 이것이 우리 집이었다. 아마도 일본을 여행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깨닫게 되겠지만 일본 농촌에서 볼 수 있는 기와집은 온통 검은 색 뿐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어떤 사람이 그곳에 붉은 기와집을 지었으며 일본 전통가옥과는 판이하게 양옥을 지었을까?

 나무다리로 연결된 도로에서 학교 가는 쪽으로 십여 미터 쯤 나오면 큰 느티나무가 있고 그곳에서 오른 쪽으로 논을 보면서 비탈길을 조금 내려오면 우리 집 대문에 이룬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논가에 있는 셈이며 논과 우리 집과의 사이는 농로가 있고 이 길은 물둑으로 통하였으며 이 길 끝의 제방 가장자리에는 작은 농가 한 채가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은 아주 좁고 마당 경계는 길가 언덕인 셈이다.

 현관을 들어서면 미닫이문이 있고 거실에 오르면 왼 쪽이 부엌, 오른 쪽이 작은 방과 안방이 있었다. 특색이 있다면, 한 지붕아래 뒤 쪽으로 상당히 넓은 창고가 있어 현관의 반대쪽에 창고 문이 있었으며 양옆 벽체에는 가슴 높이로 미닫이 유리문이 여러 짝이 있어 창고 안은 밝았으며 한 쪽 구석에는 가정용 정미기가 있어서 농사를 규모 있게 지었던 농가인성 싶은데 예사 농가는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고 느꼈다. 길 건넌 동산 쪽에는 감나무 밭도 있었으니까.

 나무다리 건너 마을에는 공장장가족이 이사를 했으므로 단 한번 가본 일이 있었다. 학생들은 강 양 쪽 마을 모두 합해서 얼마 안 되었다. 학교 갈 때에는 우리 집  옆길에 모였는데 6년생이 한사람(이 형이 통솔하였음), 5년생이 두 사람, 4년생은 나 말고 여학생이 둘 합해서 셋, 3년생이 네 사람 그리고 2년생과 1년생이 각각 세 사람, 모두 합해서 열여섯 명 정도로 행진곡을 부르면서 학교에 갔다.

 우리 집 옆을 출발하면, 담장이 없이 좁은 마당이 한길과 합해 있는 전통적인 농가를 세집 지나고 도우소(屠牛所)로 가는 언덕길입구를 지나서 왼 쪽으로 대나무와 각종 나무로 하늘을 가린 터널 같은 언덕길로 올라서면 시야가 탁 트여 기분이 상쾌한 전원지대가 나온다.

 좌우는 논밭으로, 자운영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고 정면으로 저 멀리 보이는 파란 산 정상에는 하얀 건물이 햇빛을 받아 더욱 희게 빛나고 있어 노상 동경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것은 오랜 훗날 알게 되었지만 교토 대학의 지진연구소였다. 그 들녘을 건너서 길 끝에 만나는 대밭을 지나면, 고총이 있는 황무지가 나오고 다시 한 번 작은 대밭을 지나야 드디어 소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교문이 맞이해 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때가 소학교 4년생인데 학교교사의 모습이며 담임선생님이 수업하던 모습하며 수업시간의 나와 동무들의 모습이 전연 떠오르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학교 밖의 추억이 너무 강한 탓에 학교 안의 일들이 회상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아카시아 꽃잎의 향기가 코를 찌르는 초여름의 어느 날이던가? 우리들 예닐곱 명의 사내아이들이 딴 동네 사내아이들을 불러 뒷산에서 전쟁놀이를 했다. 산죽(山竹)을 베어다 한 매듭 토막 내 총통으로, 산에 지천에 깔려 있는 나무를 잘라 총신으로 하고, 산 나무 열매를 총탄으로 하여 쏘아대면 영락없는 전쟁놀이가 되었다. 뒷산 여기저기 뛰어 다니면서 형들의 작전지시에 따라 총알을 쏘아대던 전쟁놀이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강열한 추억이 되어 그 어린 날의 천진난만 했던 시절의 그 동무들을 그립게 한다.

 그 뿐인가? 연못에 가, 한 줄로 줄지어 지나가면서 연 꽃 방죽가에 지천에 널려 있는 양치류의 줄기 꼭대기에 타원형의 열매(쇠뜨기)가 솟아있는 것을 형들이 꺾어 주면서 먹여 주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 그 형들이 너무나 그립다! 그 쇠뜨기의 맛은 잊었지만 그 형들의 따뜻한 정은 지금도 기억하며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형들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빼 놓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우리 집 옆 사호 강의 보아래 웅덩이에서 내가 익사할 번 한 일이 있었다. 그때 일은, 누구 잘못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내 또래 아이와 내가 물속에서 한데 엉키게 되어, 내가 물 위에 솟구치려고 상대방의 머리를 잡고 힘껏 누르면서 물위에 솟아올라 “살려 줘요!”하고 외치고, 그 순간에 물속에 푹 잠겨 물을 연속 마신 다른 아이가 내 발을 잡고 힘껏 잡아당기면서 나를 가라앉히고 제가 물 위에 솟아올라 “살려 줘요!” 하고 외치고 그 순간에 물속에서 물을 거푸 마신 내가 다시 상대방을 잡아끌어 밑으로 내리며 발로 짓누르면서 물 위에 솟아올라 소리 치고 이렇게 여러 차례 반복하는 사이 너무 많은 물을 마셔버린 탓에 둘은 모두 개구리 배가되고 힘은 빠져 살려 주라는 소리도 지르지 못 하게 되자, 그 때 비로소 중학교 고학년인 형이 물속에 뛰어들어 엉켜있는 우리를 갈라놓고 뭍으로 끌어올려 물을 토하게 하고 우리를 살려 준 일이 있었는데 이 일도 잊을 수없는 추억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진짜 기절 할 번 한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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