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입영, 그리고 밀월휴가.

  대나무 숲 사이로 바람이 흘러가는 소리 동백나무 잎에 비가 닫는 소리들이 미황사의 칠성당에 들어 앉아 있는 나의 가슴을 깊이 애잔하게 하였지만 그 보다 뜰 앞 화단에 서 있을 때 발아래 울창한 숲들로 덮인 능선들을 모두 감추고 저 멀리 다도해의 여러 섬들을 송두리째 모두 감추어버린 무변대해 해무의 일대장관이 더욱 깊이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 것 같았다.

  아침 해가 뜨기 까지, 바다 안개가 올라와 발아래를 감아 버릴 때의 그 중압감은 속세의 잡념을 잊도록 세뇌 하는듯했다. 그랬다. 사무치게 그리운 그녀의 가엾은 모습과 땅 끝 중학교의 성냥갑 같은 교사와 운동장과 들판과 농로와 수로와 큰 마을과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와 그 옆의 그녀의 숙부의 집과........ 속세의 모든 것들이 나와 세계를 달리하여 인연이 끊어진 것 같았다.

  논산 훈련소의 신체검사장에서, 대학4년의 수업으로 인해 입영이 연기 되었다가 이제 입영통지를 받고 나온 많은 동기들을 보았으며 그 중에 안경을 낀 고도 근시의 동료들도 많이 보았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수단방법을 다해서라도 신검에 합격하여 입영해야 된다는 일념으로 신검에 임하고 있었다. 그들 끼리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마치 절해고도에서 살다 나온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해 병역을 필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나는 아무런 대안도 없이 정직하게 불합격 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어리석은 처사가 훗날 다시 논산 훈련소를 찾아오게 되는 씨앗이 되고 말았지만 적어도 지성인이라면 자신에게 불리하게 옭아매어진 제도에 대하여는 재삼 심사숙고 하여 가장 합리적으로 대체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논산훈련소의 신검에 불합격하여 귀향하기까지의 논산훈련소 수용대의 4,5일간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난의 나날이었으며 자기모멸의 시간이었으며 자기성찰의 시간이었으며 자아 재발견의 계기가 되는 불씨를 얻게 된 수신의 시간이었다.

  이 후 나에게서 젊은 날의 낭만과 방황은 해 떠 오른 후의 안개처럼  깨끗이 사라지고 수험준비에 매진해야 한다는 굳은 결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시련이 또 하나의 시련을 부르고 있었다. 칠성당에 들어 온지 다섯 달 만에 말짱하던 오른 쪽 다리에 이상이 왔다. 오른 쪽 허리 아래 허벅지 쪽에 통증이 오기 시작 하더니 급기야는 무릎 아래로 힘이 가시고 앉아 있기도 힘들게 되어 버렸다. 부모님께 얼마나 죄스러운 일인가? 그 얼마나 불효한 일인가? 어려운 형편에 쌀과 반찬단지를 친히 챙기시고 누이와 함께 절까지 머리에 이고 오셨던 어머니!     쩔뚝거리면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걷는 내 연약한 모습에서 부모님은 무엇을 보셨을까?  너무도 괴로워 견딜 수 없었다. 더 괴로운 것은 꾀병처럼 식성은 그리도 좋은지......,먹기는 잘 하고 안색은 날로 좋아 지면서 다리만 불편하다고 하니 이것이 꾀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남도 부끄러워 두문불출하고 집 뒤 감나무 밭과 동산에서 산책 하는 운동만을 일과 삼아 나날을 보내야 했다.

  가엾은 어머니는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아 오셔서 그것을 옹기 단지에 넣어 주둥이를 솔잎으로 막고, 그보다 조금 더 큰 옹기 오가리와 주둥이 끼리 맞대고 엎어 놓아, 다슬기가 단지 안에서 솔잎에 얹혀 고여 있도록 만든 후, 이 두 옹기를 모닥불 속에 묻고 불을 지핀다. 오랜 시간 후 아마도 일주일쯤 지난 후 꺼내 보면 다슬기의 검은 진이 솔잎을 통해 여과 되어 오가리에 고여 있게 된다. 이것을 사발그릇에 부으면 딱 한 그릇이 되는데 어머니가 정성 드려 만들어 주신 약이라서 안 마실 수 없었다. 냄새가 너무도 고약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꾹 참고 마실 수밖에........  가엾은 아버지는 어떠하셨는가?  부산 상인을 통해 좌골신경통에 특효라는 <이루카피린>주사액을 구입 해 오셔서 치료 받을 수 있게 해주셨다.

  눈물겹도록 고마우신 부모님의 정성어린 간호 덕분에 내 병세는 차츰 좋아졌고 이제는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렵 아침 일찍 아버지가 제 방에 오셨다.

“일어났냐? 이 신문을 보아라. 시험을 치른다는데 한번 가볼래? 무리는 말고, 생각 해 보고 잘 결정해라”

  아버지 손에서 건너 받은 동아일보 광고란에 올라있는 것은 내각사무처 명의로 공고된 국가공무원임용고시였다. 채용인원은 100명, 시험 실시일은 한 달 후쯤으로 되어 있었다.

  물론 내가 이 시험을 위해 노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어 영어 때문에 합격 했다 해도 틀림없는 말이다. 100명중에서 31등 했으니까 그것도 전국구에서, 그렇다면 광주에서 응시한 전라남북도 지원자 중 몇 명이 합격했을까 생각해보면 꽤 어려운 시험이었을 것이 틀림없는 일이 아닐까? 모든 시험이 다 그렇지만.

  내각사무처에서 날아온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공무원 임용시험 합격통지서를 받아들고 기쁘지 안했다면 거짓말이고 그것보다 부모님이 좋아 하시는걸 보니 내가 좌절했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새 출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꼭 꿈만 같았다.

  “아야! 관운이 없는 사람은 밑에서부터 올라가야 한다고 안하느냐? 무시 말고 임용희망부서를 제출하라고 하니 써 내야 되지 않겄냐?”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나는 희망부서를 써 내기로 했다. 내가 경제학을 전공했으니까 상공부가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무지갯빛 꿈은 한 보름도 가지 안했으니 상공부에서 온 회신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었으니까.

 -귀하께서 금번 국가임용고시에 합격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임용 희망부서를 상공부로 지정하신 것을 접수하였습니다. 그러나 귀하께서는 병종이 제2을종으로 병역미필에 해당 되므로 병역을 필하시고 오시면 그때 임용하도록 조치하였사오니 해량 있으시기 바랍니다. 내각사무처장 정 헌주-

  미황 사 칠성당에서 5개월 만에 하산한 이력도 있고 하여 고시준비를 다시 시작하는 것을 부모님께서는 원치 않으신 것 같고 어쩔 수 없이 군대에 지원해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두 번째 논산훈련소 신체검사장을 통과해 제26연대 제5중대 제3소대로 배치되어 병사생활이 시작되었다.

 전반기 훈련이 모두 끝나는 날 연대 연병장에서 영어시험을 보았다. 영어 교육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모두 나와 응시하라는 것이니 좀 많은 사람이었을까. 운동장에서 쪼그리고 앉아 받은 시험지는 단단한 받침판과 함께였고 시험문제는 이솝 우화집에서 발췌한 것들이었다. 나는 10여 분만에 답안지를 제출했고 16명의 합격자를 호명하는데 제1번이였음은 말할 필요가 있으랴!

  지금도 나는 육군부관학교 군사영어 반 시절을 잊을 수 없다. 막사에서 아니면 훈련장에서만 쫓기듯 식사를 하다가 식당에서 차분하게 식사를 하게 되니 이런 별천지가 있는가. 또 책을 옆에 끼고 교육장에 보무당당하게 걸어가는 기분을 누가 알까? 처음 보는 녹음테이프를 돌리면서 영어 공부를 하던 기분은 어떻고…….더 중요한 것은 B,O,Q(장교막사)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이 일들은 같은 학교에 있는 한글타자 반이나 필경 반은 물론 울타리를 같이 하고 있는 육군헌병학교나 육군정보학교와 육군경리학교에서 조차 모두 알고 있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이런 연고로 내가 육군정보학교 연구실 번역 병으로 전출되어 막사에서 첫 신고를 할 때 이유 없이 빳타 세례를 받았는데 5대를 맞고 나니 일어 설 수가 없었고 볼기에 난 상처 때문에 밤이면 엎드려 자고 낮에는 보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침식사가 끝나 연구실에 출근하기만 하면 내 세상이다. 번역 병의 하루 일과는 중공군전술이라는 두터운 책자를 하루 5페이지 번역하는 것인데 어렵긴 하나 목표량을 달성할 수 가있었다. 연구실의 식구는 연구실장, 번역 장교1명 번역 병1명 연락병1명의 4명이었다. 다만 문제는 번역병인 내가 일등병이고 연락병이 상병인 관계로 연락병이 해야 할 주전자 심부름이나 보고 서류의 제출 또는 사역병의 동원 등을 대부분 내가 담당하여야 하는 관계로 번역 업무가 지연되고 실적이 부진하게 되니까, 번역 장교인 박 중위는 내가 번역만 하도록 조정을 해서 아예 심부름조차 면제받게 되었으니 이런 요행이 어디 있을까?

  나의 불운한 젊은 날도 군대에서만은 억세게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훈련소에 들어가자마자 어학사병으로 분류된 것하며 배출 대에서 영어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났던 일들이 모두 억세게 좋은 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병영생활이 여유로워지니까 고향생각도 나기시작하고 첫 사랑의 그녀도 그리워지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고향의 누이로부터 받은 소식에 의하면 내가 입영했던 며칠 후 그녀가 아랫집 박 양과 함께 집에 와서 놀다 갔다는 것과 박 양의 말에 의하면 그녀가 우리 집에 시집 가버릴까 했다는 얘기였다. 편지 내용을 분석 해 볼 때 그녀에게 결혼에 대한 촉박한 생각이 닥아 오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되기도 했다.

  하지가 지나고 여름이 영글어지기 시작할 6월 말경 나는 연구실장께 우리 집이 임야를 다소 소유하고 있는데 이번에 화재가 나서 그 수습을 위하여 고향에 꼭 다녀와야 된다는 사정을 해서, 얻기 어렵다는 임시휴가를 얻었다. 자랑스럽게도 6개월 만에 귀향하는 첫 휴가였다.

  첫 휴가는 즐거웠다. 주머니는 빈 털털이지만 전혀 걱정이 안 되었다. 걸어서라도 고향집에 갈 수 있을 것이다. 4개 학교 정문 앞에서부터 대구까지 부대 트럭을 타고 대구에서 송정 리 까지는 군용열차를 타는 것이다. 어디서나 헌병들은 내 어깨의 정보학교 마크만 보면 거수경례를 하고 최우대로 친절을 베풀어 주니 내 어깨가 절로 으쓱 해졌다.

  부모님은 많이 늙으셨다. 특히 아버지는 얼굴에 주름이 많이 늘었고 전보다 더 여위셨다.  들녘은 파릇파릇한 모들이 이제 막 땅 심을 맛 본 듯 청록의 싱싱한 색깔을 품어 내고 있었다.

  남창에서 집에까지 버스비가 없어 14Km를 걸어왔던 탓에 조금 피곤해서 하루를 푹 쉬고 나서 다음 날 나는 장석거리의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거리에 면한 유리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오빠! 언제 오셨어요?”

  “어제 왔어! 어머님은 안 계셔?”

  “응, 잠간 장 보러 ……. 올라오세요, 군복이 참 멋있어요!”

  나는 군복에 군화를 신고 있어서 벗기도 어렵고 그녀 부모님께 인사도 들이지 못 하였기에 그녀 방에 들어가기가 망설여 저서, 조용한 목소리로,

  “오늘 밤 달 밝으니 만날 수 없을까?”

  “응, 오빠 사랑방 쓰고 있어?”

  “안 사랑방 쓰고 있지, 화단 쪽 말이야!”

  “내일 틈나면 놀러 갈게.”

  “…….그래, 나 간다.”

  나는 적지 않게 실망하고 돌아 섰다. 그녀의 손이라도 잡아보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그날 밤은 유난히 달이 밝고 사위는 교교했다. 안마당 담 밖의 시누 대며 그 옆의 느티나무와 소나무와 후박나무들이 너무도 호젓하게 도열해 있는 밤이었다. 누군가 살금살금 오는 발자국 소리가 난가 싶더니,

  “오빠! 계셔요?”

  속삭이듯 부르는 소리, 그녀 목소리다. 나는 튕겨 나가듯 문을 열고 나가 그녀를 맞았다.

  “어서 와! 내일 놀러 온다 안했냐?”

  “...........”

  사랑방에는 방 가운데 큰 교자상을 놓고 안쪽에 요를 깔고 내가 앉아 지내고 있었는데 그녀가 들어왔으니 교자상을 사이에 두고 양편에서 마주 앉았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 두 손을 잡았다. 희미한 호롱불을 옆에 두고 마주 보며 마주잡고 있는 손이 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나이 스물여덟 그녀는 나 보다 세 살 아래니까 그 당시로는 모두 혼기가 넘은 나이로 인정되는 처녀 총각인 셈이다.

  “제대만 하면 병역필 증명을 상공부에 보내고 임용신청을 하면 국가공무원이 되니까 나를 믿어줘, 아무 걱정을 말고 ……. “

  “아버지가 김해 허 씨는 김해 김 씨하고 결혼 할 수 없다고 하셔서......,”

  “그건 걱정 할 것 없어! 우리가 부부가 되어 버리면 끝이야, 성이 틀린 이상 법으로 금하고 있는 규정은 없어야. 다만 종친회에서만 금하고 있을 뿐이라니까.”

  그 후, 얼마동안이나 침묵이 흘렀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 손은 더 떨리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일별하더니 교자상 위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며 하소연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워 졌어요. 식당도 전만 못하고 우선 손님들이 새 가게에 몰려가니까 수입은 줄고 동생이 교육대학에 진학하면서 학비로 진 빚이 자꾸 불어나기만 해요.”

  그녀는 고개를 들고 나를 응시하더니 결심을 한 듯,

  “제대는 언제 하셔요? 결혼이라도 빨리 해버렸음 좋겠어요.”

  “가능한 빨리 하도록 해 보자, 조금만 참아줘.”

  다시 침묵이 흐르고 교교한 달밤에 사위는 바람 한 점 없는 괴괴한 밤이다. 그녀는 다시 엎드려 흐느낀다. 나는 조용히 일어서 그녀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두 손으로 안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조용히 흐느끼고 나는 두 손에 힘을 실었다. 아! 얼마만의 포옹인가? 향기로운 머리카락 냄새하며 콧속에 스며드는 향수비누 냄새……. 몇 해 전인가 동구 밖 느티나무 옆 초가집 그녀 숙모의 집에서 첫 입맞춤하던 옛 추억이 되살아나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를 안아 일으켜 요위로 옮겨 눕혔다.

  온 세상이 고요하고 잠잠한 밤에 우리들의 입맞춤은 너무도 격렬하고 뜨거웠다. 어느 여름 날 그녀에게 전했던 고백 시 -바다여 모래여 태양이여!―처럼 우리는 핥이고 쓰다듬고 만지며 속삭였다. 온 몸이 뜨거운 피로 꽃피어 버리자 나는 영혼의 힘에 의해 그녀의 치마를 걷어 올리고 조그만 팬티를 아래로 내려 한 다리에 걸쳐 놓았다. 그리고 절정의 순간 나는 울부짖었다. 이렇게 우리들의 첫 교합은 나만 격렬했고 그녀는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아~,내 사랑!”

  “……. 오…….빠…….”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더니 간신히 오빠라 한번 부르고 나서,

  “머리가 어지러워요.”

  “뭐? 머리가 어지럽다고?”

  나는 깜짝 놀라 큰 방 어머니께로 갔다. 큰 방은 안사랑과는 한간이 마루로 떨어져 있고, 미닫이로 칸막이가 되어 아버지는 안방에서 주무시고 어머니는 더워서 그리셨는지 바깥쪽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어머니!,” 나는 속삭이듯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 “그 애 있잖아요, 그 앨 대리고 와서 잤는데 머리가 어지럽다고 그런디, 어떻게 하면 좋것는가?”

  “......점방에 가서 사과나 한 개 사 주어라.”

  나는 안심이 되고 용기도 생겨 되돌아가서 그녀에게 말했다.

  “자, 이젠 집으로 데려다 줄게, 일어날 수 있지?”

  그녀는 조용히 그리고 조심히 일어섰다. 밖으로 나오니 교교한 달은 더욱 깨끗하고 맑고 희고 높이 떠 있었다. 집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녹나무 동백나무 후박나무 비자나무 소나무 전나무 느티나무 대나무들이 잠잠하게 시립하여 그녀를 전송하고 있었다. 우리는 고샅을 지나 초등학교 사택 뒤 쪽으로 난 논길을 따라 거리로 나갔다. 동네 우물곁에 있는 가게에서 사과 하나를 사서 그녀의 손에 쥐어 주면서 그녀가 자기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발걸음을 되돌렸다.

  그 다음 날밤은 행랑채 옆에 조그만 밭떼기 경계에 있는 소나무 밭으로 가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 곳은 큰 소나무들이 10여 구루 서 있어서 낮에도 운치가 좋은 곳으로 달밤에는 교교한 달빛아래 앉아 정담을 나누기 좋은 곳이기도 했다, 우리는 어제와는 달리 반공중에 떠있는 달을 쳐다보면서 미래를 꿈꾸는 연인이 되어 난생 처음으로 달밤의 야외에서 사랑을 속삭였다.

  이렇게 행복하기만하는 나날이 가는 새 벌서 휴가일정인 일주일이 다되어가니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이틀 남았는데 떠나는 날은 새벽버스를 타야 하니 그전 날은 시간이 없고 마지막 밤은 내일이 되는 셈이다. 첫 날밤을 탄생했던 안 사랑방에서 마지막 송별의 밤을 보내기로 했다. 그녀는 송별의 밤에 흐느껴 울었다. 참으로 슬피 울었다.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미래의 박명을 예견이라도 하는 것이었을까?

  다음 상실의 계절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