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첫 사랑이여 안녕.

  그 후, 5년의 세월이 지난 초여름, 나는 M시에 출장을 다녀오느라 M시와 강해군을 오고 가는 정기여객선을 탔다. 약 40분쯤 타면 금호도에 중간 기항을 하는데 이 금호도에서는 소수의 인원이 오르내리는 것이 관례였다. 나는 고물 쪽 객실 출입문 가까이 앉아 있었다. 금호도의 손님이 모두 타셨는가 보다고 여겼을 지음에 한 화사한 옷차림의, 얼른 보니 보랏빛 치마에 연보라 저고리를 받쳐 입은 훤한 모습에 맵씨 있어 보이는 미인이 사뿐 내 앞 빈자리에 앉지 않은가?

  “실례합니다.”

  실로 깜짝 놀라 숨이 막힐 지경이 되고 너무나 뜻밖이어서 꿈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내 앞에 무릎이 맞닿는 거리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여인은 내가 비탄해 마지않던 첫 사랑의 그녀였던 것이다.

  “아~,안녕하세요? 잘 계셨어요? ”

  그녀도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 응~ ~”

  나는 짧은 한마디로 대답 할뿐 가슴이 막혀서 뭐라고 말을 해야겠는데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응답 할 수 없었다.

  “.동생이 금호도의 초등학교에 근무 중이라 만나보고 오는 길이에요.....,애들은 몇이나 되세요? ”

  “둘, 네 살 머슴애 하고 한 살짜리 계집애하고.”

  “사모님도 잘 계시고요?”

  “응~”

  역시 말이 입 밖으로 안 나온다, 그녀의 썩 아름다운 얼굴을 응시 할뿐 말은 안 되는 사이 여객선은 선창가로 벌써 닥아 와버렸다.

  “오늘 사무실에 입금해야할 현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M시에 함께 갈 수 없으니 내일 전화 좀 해주셨으면 해요.”

  “예. 알았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나는 모든 일을 물리쳐서라도 회사에 돌아가는 것을 하루 연기하고 그녀와 함께 M시에 되돌아가고 싶었지만, 당시 내 가방 속에는 거금 20만원이 들어 있었다. M시에서 양조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서 회사 예금실적을 올리기 위하여 빌려 오던 참이었다. 그때 나의 월급이 5,500원이였으니 가방 속에 들어있는 돈이 얼마나 큰돈인가를 쉬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하는 수없이 사무실  전화번호를 수첩을 찢어 얼른 적어주고 배에서 내렸다.

  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이물 쪽으로 걸어 나와 아리따운 자태로 서 있다가 나를 보자 다시 한 번 얌전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나의 눈에는 눈물이 머금었다.

  ‘ 5년만에 꿈같이 해후하게 된 첫사랑의 여인을 단 10여 분만에 또다시 이별이라니.’

  그 다음날 초여름의 햇살이 시들어지는 오후, 기대하지도 안했던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닥아 오는 토요일에 아침 첫배로 그녀가 사무실로 나를 만나로 오겠다는 내용이었다.

  토요일 오전 배 시간에 맞춰 부두에 마중을 나갔다. 배에서 내려오는 그녀의 자태는 너무도 아리따웠다. 치자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그녀는 가는 허리와 큰 키에 하얀 고무신을 신고 사뿐사뿐 걸어 나오는 예쁘고 고운 맵시는 정말 눈이 부셔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부두 출입문에 서서 그녀에게 바른 손을 높이 들어 신호를 보내고 그녀가 알았다는 응신을 받은 후에 버스에 올라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가 부두 출입문에서 나와 버스에 오르자 바로 옆자리에 앉히고 우리는 다시 옛날의 연인으로 부활하여 그 길로 읍내에서 가까운 산사로 직행 하였다.

  산사는 산문 앞 부근부터 여전히 고즈넉했다. 일주문 앞 계곡이 좌우 양 방향에서 흘러 내려와 합류되는 지점에 석교가 있고 그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동백나무와 후박나무와 비파나무가 울타리를 두르고 있으면서 계곡과 인접해 있는 아늑한 여관이 있었다.

  유서 깊은 이 여관은 토요일인데도 그 시간에 찾아오는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6,7년 전 육군 정보학교의 번역 병 시절 첫 휴가를 받고 귀향하여 그녀와 밀월을 즐겼을 때의 추억이 불현듯이 떠올라 그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대문 안으로 끌어 들였다. 그녀도 같은 상념에 젖었던 것일까 얼굴이 상기되면서 뿌리치지 못하고 급히 따라 들어 왔다. 나는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계곡 쪽으로 돌아 갓방을 청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서 있는 채로 부둥켜안고 격렬한 포옹과 입맞춤을 했다. 그리움과 아쉬움과 슬픔과 괴로움 속의 비통과 탄식의 온갖 감정들이 조각조각 찢겨져 만신창이가 되어있던 것을 한 조각 한 조각 이어 맞춰 바느질 하며 우리들의 새로운 조각보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조각보는 인고의 세월 속에 살아나온 우리 두 사람이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만들어낸 가슴 속 깊은 곳의 이력의 증표였다.

  산채나물에 점심식사를 맛있게 끝낸 우리는 뒤란으로 돌아 계곡을 가로 질러 큰 소나무 그늘 아래 널따란 바위에 나란히 앉아, 꿈같은 기분에 잠겨 흐르는 시내 물을 내려다보며 시냇물 소리와 새 소리에만 귀 기울이면서 침묵의 시간을 음미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그녀의 잠긴 목소리였다.

  “저~저를 나쁜 년이라고 욕하셨지요?”

  “아-니, 전혀 나쁘게 생각해 본적이 없어! ”

  “소문이 나쁘게 낫죠? 뭐라고들 하던가요?”

  “방 사혁이라는 자가 당신 고질 병 고치러 간다고 대전으로 데리고 갔다던가, 그자가 당신을 재취하기로 하고 병을 고처 주러 데리고 갔다던가, 뭐 그런 내용이었지.”

  “그랬을 거예요. 그자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이야기를 하자면 오늘 밤 날 새 가며 해도 못 다할 거예요. ”

  그녀는 치자색이 고운 저고리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가면서 슬프고도 괴로웠던 지난날의 인고의 삶의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두어 시간 남짓 지난 후 나는 그녀의 슬픈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기가 하도 괴롭고 그녀도 지친듯하여 일어섰다. 계곡을 지나 산문을 통과해 비자나무와 동백나무 숲과 깊은 계곡을 천천히 돌면서 서로가 두 손을 꼭 잡고 산책하다가 계곡과 숲이 능선의 그림자로 인하여 쉬 어둑해지자 우리는 서둘러 여관으로 돌아왔다.  여관 주인아줌마는 호롱불과 초를 갖다 놓고 석유 냄새가 싫거든 초를 밝히라고 말하고 저녁상을 들여 놓는다. 저녁상은 역시 산채나물에 청국장 맛이 구수 했다.

  방 사혁이라는 호색한이 그녀를 갖은 수단방법을 다 동원해서 재취로 삼으려 애를 썼지만 그녀가 안 꺾이니까 끝내는 마수를 들어내고 그녀를 요정에 팔아넘겨 버린 것이다.  그런 어려운 화류계생활 속에서 가장 힘든 일은 돈과 고독의 유혹으로 부터 몸을 간수하는 일이었음은 말할 나위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부모님께는 염려될까 연락도 못 하고 M시에 있는 이모를 통하여 교대를 졸업했을 동생에게 전해 주십사고 편지를 동봉해 보냈다.

  술 접대하는 자리에서 고분고분 아니한다고 얻어맞기도 하고 술자리가 끝난 후 호텔에 안 따라간다고 얻어맞기도 하는 화류계 생활이 어느덧 여섯 달이 될 무렵 동생이 돈을 마련하고 대전으로 찾아왔다.

  요정 사장과 정산해 본 결과 빌린 돈은 방 사혁이가 처음 가져간 돈이 30,000원 한복 2벌과 란제리 값이 5,000원 화장품대가 2,500원 기타 용돈으로 빌린 것이 500원 도합 38,000원이고 월급으로 갚을 수 있는 금액이 3,000원의 6개월분이 18,000원, 나머지 갚아야 할 금액 20,000원을 병아리 선생인 동생이 가지고온 돈으로 정산을 보고 한 많은 요정을 벗어나 M시의 이모네 집으로 찾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 하는 동안 그녀는 몇 번이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는지 곁에서 듣고 있는 나도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는 여기서 쉬었다 갈 겸 맥주를 한 잔씩 하기로 했다. 그녀는 역시 반 컵만 마셨다.

  이모네 집에 몇 달 놀고먹고 보니 너무 낯짝이 없을 뿐 아니라 어디 일 할만 한곳을 알아보아도 마뜩찮고 요정이나 다방 같은 곳에서만 큰돈을 선금으로 주고 데려가겠다고 하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참에 지금의 남편으로부터 중매가 들어와 한두 번 만나보니 점잖아 보이고 약사이고 지성인이다 싶어 욱한 심정으로 결혼을 하고 말았는데 알고 보니 본처와 생이별한 이력이 성격상의 결함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였다. 그것은 의처증 이였다. 일상에서 매사를 이상하게 보고 약국에 찾아오는 손님과 말만 길게 해도 당장 못마땅하게 여기고 단골손님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만 해도 추파를 던졌다고 오해하곤 하는 괴팍한 이상 성격의 소유자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잠자리에서의 성생활에 만족을 못하고 노상 불만을 가지면서 그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니 어떤 여자가 이런 상황에서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고 그녀는 묻고 있었다.

  초여름의 밤은 일 년 중 가장 짧은 밤이라서 어느새 자정이 자나고 바깥은 시내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 괴괴하다.

  우리는 잠자리에 누울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지난 세월 동안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들을 꺼내 놓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녀가 내 가슴에 그녀의 머리를 묻고 지나간 인고의 세월 속에서 털어 놓지 못했던 슬픈 사연들을 하소연 하다가 흐느끼다가 할 때에는 나도 따라 눈물을 흘리고, 그녀가 허리를 펴서 바르게 앉으면 내가 그녀의 무릎위에 내 머리를 베고 눈물이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탄식하곤 했다.

  “오빠! 아니, 선생님! 아니, 여보 당신이라고 불러 볼래요. 저..,정말 이번에 죽을 각오로 당신 만나로 왔어요. 죽어도 좋다고, 이번에 만나서 가슴에 맺힌 사연들을 모두 털어 버리고 하소연하고 당신에게 진실을 알릴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결심 했어요. 그래서 강해읍에 사는 여동생이 해산한데 다녀 오겠다하고 거짓말 하고 당신한테 온 거예요.”

  “당신의 순결을 나는 지금까지 굳게 믿고 있었고...,추호라도 당신이 부정한 여인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 결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는 당신 외에 누구도 사랑해 본적이 없어요. 지금의 남편하고 결혼한지도 2년이 되어가지만 그 사람을 사랑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본적은 한 순간도 없었어요. 분명히 말씀 드려서 저는 당신만 사랑하고 당신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면서 외롭게 살아 왔어요. 녜? 아시겠어요, 이것은 꼭 알아주셔야 해요!” 

  촛대의 초도 다 타버린  캄캄한 방안에서 호롱불이라도 밝힐 생각은 아니하고 앉은 그대로 어둑새벽이 되어서야 우리는 눈을 붙였다.   

  늘어지게 아침 늦잠을 자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을 뜬 우리는 뒷문으로 나가 시원한 계곡 물에 세수를 하고나니 정신이 맑아졌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영계백숙을 끓여 달라 부탁하고 냄비 채 들고 상륙 계곡으로 올라갔다. 계곡은 상류에 갈수록 하늘도 냇물도 더 맑은 것 같았다.

  우리는 영계백숙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서로 보고 웃었다, 그러나 그것뿐 우리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닥아 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선생님, 저는 다시 지옥 같은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당신과의 행복했던 지난날의 짧은 나날들을 추억하면서 살겠습니다. 마는 현실이 희망이 안 보이고 체념하고 살기도 어렵게 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을 뵙고 다시 옛날의 사랑하는 연인으로 부활하여 뜨거운 사랑을 받고 행복함을 잠시라도 느끼고 보니, 저에게는 절망이 한걸음 더 빨리 닥아 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선생님! 나는 어찌해야 좋을까요?”

  “세상없어도 절망은 말아요! 절망 끝에도 희망은 있는 법. 체념하고  살다 보면 새로운 세상이 반드시 꼭 올 거예요. 인생이란 짧은 것 같지만 길잖아요? 아직도 우리는 젊고 앞날이 창창 하잖아요? 우리 또 만날 날이 많이 있으니, 자주 만나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아가야 해요!.”

  나는 눈물을 머금고 그녀를 꼭 껴안아 뜨겁게 불타는 그녀의 뺨에 내 뺨을 붙이면서 가슴 속으로 흐느껴 울었다.

  하루 밤 사이 훨씬 수척해져 보인 그녀를 M시에 가는 여객선부두까지 배웅하고 나서 돌아오는 길이 너무도 착잡하였다.

  그녀와 나는 무엇인가?

  우리는 젊은 날의 초상 속에서 순결하고 깨끗하고 맑고 밝은 첫 사랑의 두 연인이었던 것은, 확실하고 분명하고 틀림없는 사실이며 이것이 곧 우리만의 이력이며 우리만의 역사라는 것이다. 곧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젊은 날의 우리 두 사람만의 이력이며, 돌아보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더욱 찬연해지는 우리 두 사람만의 역사인 것이다.

  그 후, 며칠 후, 금호초등학교에 근무한다는 그녀의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누나가 돌아가시면서 써놓은 편지를 형님께 동봉해서 우송해 드립니다. 이것이 누나의 유지니까 우선 먼저 알려드립니다. 누나는 자살하셨습니다.’

  ‘그럼 장례는 어디서 치루고 , 장지는 어디인지 알려주게.’

  ‘장례는 어제 끝냈습니다, 그만 끊습니다.’

  그녀의 동생의 전화를 받고서 사흘 지난 후 도착한, 그의 편지 속에 동봉한 그녀의 편지를 뜯어보았더니 그녀의 편지는 백지 한 장이었다.  끝

                        중편소설/  송 담  김  일  선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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