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쓰시마섬(對馬島)에서, 두 사나이의 배신.

 우리가족이 오사카에서 열차를 타고 시모노세끼 까지 간 기억은 희미하고 시모노세끼항에서 병원선에 올라탄 기억은 생생히 난다. 부두에서 아버지가 승선 예약증을 보이고 커다란 병원선에 올라탈 때 계단을 어찌나 높이 올라가는지 어지러울 지경이여서 어린 동생들은 아버지가 일일이 안고 올렸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은 갑판에서 2층 내려간 창 쪽 방으로 침대가 2개 있는 비교적 우대받은 내실이었다.

 동생들(남동생 2명, 여동생 2명)과 누나 엄마는 밤이 되자 잠이 들어버리고, 아버지와 나만 남아서 바람과 파도의 세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지켜보고 있다가, 피칭이 심하여 배가 이물 쪽과 고물 쪽이 교대로 상하요동이 심해지자 갑판으로 올라가 보았다. 갑판 출입구 문을 열자 폭우가 엄습해 와 눈을 뜰 수 없었으며 서 있기도 어려웠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갑판위로 달려가 화물을 덮은 포장을 단속하고 오는 것이 아닌가? 이물 쪽이 아래로 피칭 할 때는 파도가 이물의 오른 쪽 난간에서 왼 쪽 난간으로 넘나드니, 그렇게 큰 병원선을 넘기는 파도는 얼마나 큰 파도였겠는가? 어린 심정에 꼭 아버지가 변을 당할 것만 같아서 ‘아버지! 아버지!’하고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갑판의 화물적재장 속에 아버지의 일본은행권인 태환지폐가 비장된 궤짝이 있었던 것이다.

 부산에 상륙하고 보니 일본에서 귀국하는 한국사람,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일본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런 난장판 속에서 미군의 검열은 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고 하지도 않고 있었다.

 아버지의 정보는 일본에서 일본은행권의 대량 반출을 막기 위한 방어적인 헛소문 이었던것 같았다. 가엾은 아버지는 부산에 상륙하자마자 큰 회한과 고뇌에 빠졌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었다.

 부산에 도착하여 온돌 아궁이에 장작을 태워서 방을 따뜻하게 하는 신기하고 처음 본 온돌방 여관에 짐을 풀고 기거하기를 열흘이나 지났으나, 오사카에서 출항한 대절 발동선은 도착하지를 않고 통신도 두절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란 기다리는 일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는 매일매일 부산부두에 나가 배 오기만을 기다리고 일본에서 오는 배마다 선장을 찾아가 수소문을 해보았으나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그렇다고 항만청이 제 구실을 해서 연락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속수무책이었다.. 부산에서도 일본사람을 태우고 시모노세끼로 출항하는 배가 그렇게 많았는데도 왜 한일 간에 항운 통신이 단절되고 만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난장판이었다.

 100여명의 직공의 안부도 모르는 채, 일본에서의 오랜 세월 동안의 노고의 대가인 태환지폐인 일본은행권을 비장한 고리짝들의 안전문제도 모르는 채, 일단은 요행만 바라고 부산역에서 고향 행 열차를 타야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여기서 이상한 장면을 보게 되는데 부산역 프랫트폼에서 조선은행권을 들고 다니면서,

 “열석 장이요! 열석 장! 일본은행권 한 장에 열석 장이요!”

 이 말은 일본은행권 천원 권 한 장에 조선은행권 백원 권 열석장이라는 뜻이었다. 앞에서도 잠간 이야기했지만 일본은행권 천원은 태환권이고 조선의 지폐는 태환권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으로 출국하려는 일본사람에게는 일본은행권을 조선에서 구하기가 퍽 어려웠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버지는 배에 감아 온 전대에서 일본지폐를 한 뭉치 꺼내 바꾸고 다음 대구역으로 가니 그 곳에서는,

 “일본권 천원 한 장에 열다섯 장이요! 열다섯 장이요!”

 대구에서는 댓 뭉치 바꾸고, 다음 대전역에 오니까,

 “열일곱 장이요! 열일곱 장이요!”

 여기서 아버지가 배에 감았던 전대의 일본은행권 천원권을 모두 바꾸고, 다음 조그마한 시골 역에 도착해서는,

 “열아홉 장이요! 열아홉 장이요!”

 여기가 마지막이라 (이곳에서 아버지 친구가 트럭을 대기하고 있기로 약속 되었으므로) 어머니 배에 두른 전대 분도 모두 교환하여, 남은 것은 궤짝에 들어있는 것이 전부인 셈이다.

 이 트럭 운전수 김 씨는 참으로 고마운 분으로 훗날 자유당시절에 국회의원 까지 지내게 된다.

 그러면 오사카에서 떠난 대절 발동선은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인가?

 문제의 그 배는 일본의 내해인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를 지나올 때는 무사히 순항하였으나 현해탄의 중간쯤에 와서는 큰 파도에 상당히 힘겨워 하더니 끝내는 강풍에 밀리기 시작하여 쓰시마섬(對馬島)으로 대피하기로 선장이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선장이 쓰시마섬에 첩을 살리고 있어서 고의로 대피했다는 얘기도 들렸으나 그것은 직접적인 이유가 되지 않고 폭풍에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해야 될 것이다. 다행히 해안선의 생김새를 잘 아는 선장이라 접안하기 좋은 모래톱을 골라서 이물의 닻을 내려 선객들을 한사람도 희생 없이 상륙시켰으나 고물 쪽의 닻이 없어서 고물 쪽이 밤 새 쉬지 않은 폭풍으로 인하여 좌우로 심히 요동치다가 여에 부딪쳐 배가 파선되게 되었다.

 많은 직공들과 어린이들과 몇 여자들은 모두 배에서 폭풍에 시달렸던 피로 때문에 바닷가에 있는 동굴 안에서 곤한 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고 선장은 배가 안전히 정박되었다고 착각하고 첩의 집을 찾아 밤길을 서둘러 갔다는 것이다.

 폭풍은 이미 잠자고 조용해진 어둑새벽에 잠을 깬 공장장 류옥천(劉玉川)이 밖에 나와 배를 돌아보니 아무래도 배 모양이 이상하다 짐작되어 눈을 크게 뜨고 찬찬히 본즉 배의 고물 쪽이 부서져서 벌써 기울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류 공장장이 동굴에 돌아와

 “모두들 깨어나! 배가 파선 되었다!”

 이 때 류 공장장부인이 소스라치며 달려 나와

 어메! 돈 돈 돈방석을 어쪘구나!“

 “무슨 돈? 방금 뭐라 했어?”  공장장이 다그치자, 다시 한 번 놀라고 정신을 가다듬고

 “이건 비밀인데, 작은아버지 하고 작은어머니 하고 나하고 셋만 알고 있는 비밀인데 저 배에 실은 옷 고리짝들이 대부분 돈방석 이라우”

 조용하게 귀엣말로 하면서 주위를 조심스럽게 돌아본다.

 공장장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 일을 어찌할꼬? 공개할 수는 없고.”

 “어떻거럼 해서든지 고리짝을 건져봐야 쓰겄소”

 공장장부부가 끙끙거리며 발을 구르고, 어디서 조각배라도 구해 볼까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날이 훤히 새고 말았다.

 해가 중천에 떠올라 들 물이 한창일 때 거룻배를 하나 구해 왔다. 노를 젓고 나가는 거룻배로 고리짝을 찾아 건져 올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다 가운데서 몇 개 건져 올리고 나서 밀려오는 고리짝을 해변 가까이에서 주워 모으는 것이 차라리 능률이 오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나의 외삼촌이 모래톱 저쪽 구석, 바위에 가려진 곳에서 고리짝을 갖다놓고 방석을 뜯어 일본은행권을 챙기고 있는 것을 공장장 류 옥천이 발견한 것이다. 이 사람이 어떻게 고리짝의 비밀을 알았을까? 어떻게 공장장부부가 소리를 낮춰 귀엣말 하는 것을 알아챘을까? 아마도 무의식중에 소리를 질렀을 때 벌써 눈치 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외삼촌은 삼형제 중, 가운데 삼촌인데 당초에는 아버지가 일본에 다리고 왔었다. 그러나 머리가 좋고 기술도 금 새 익히는데 손버릇이 나쁜 것이 탈이다. 아버지 금고에서 돈을 훔치는 것이 발각되어 주의를 받은 끝에 세 번째에는 아버지도 눈물을 머금고 공장에서 추방하고 말았던 적이 있는 사내였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공장장의 묵인아래 대절선을 타고 동행하게 된 모양이다.

 역시 악연은 끝내 악연으로 이어진 것일까? 이 외삼촌이 횡령한 금액이 얼마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고리짝 몇 개만 챙겼어도 거금이라 그 길로 일본으로 되돌아 가버렸다,

 괘씸한 것은 류 옥천이다. 징용에 끌려가지 않도록 아버지 공장에 데려와 공장장 까지 키어 주었으면 은혜를 못 갚을망정 배신은 안해야지 그 나쁜 외삼촌과 공모하여 아버지의 재산을 훔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의리를 저버린 짐승만도 못 한 행위가 아닌가 말이다. 공장장으로서 아버지의 재산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외삼촌이 절도행위를 하는데도 막지 않고 절취한 아버지 돈을 회수하지 않은 것은 무슨 사유일까?

 혼자 힘으로 회수 할 수 없다면 직공들을 불러서 강제 회수했어야 했거늘 그대로 일본으로 되돌아가도록 방치한 것은 무슨 사유일까?

 건져 올린 고리짝을 의류나 포목이 들어있을 때는 그것들을 꺼내놓아 볕에 말리고, 돈방석이 들어있을 때는 의류 등으로 가려 감추어 두었다가 직공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에 부부가 방석을 뜯어 일본은행권을 챙기기 위하여 직공들에게 비밀로 한 것이고 그러다 보니 외삼촌의 절도행위도 눈 감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래도 쓸란가(좋을지) 모르겄소. 작은 아버지가 아시면 얼마나 절망하실까잉?”

 “일이 이렇거럼 되어 버렸는데 어쩔 것인가? 인젠 엎드려진 물이요. 어쩔 도리가 없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직공들을 알게 했다면 조용했겠는가? 눈이 뒤집혀서 무슨 일이 날지 알 수 없는 일이라니까.”

 “그러기는 하지만 나는 작은 아버지나 작은 어머니 생각만 하면 도저히 얼굴을 못 들것 같당께. 방석 작업을 작은 어머니와 나 둘이서 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돈을 못 갖다 드리면 내 책임만 같아 견딜 수 없당께요.”

 “어야! 눈 한번만 딱 감고 넘기세. 작은 장인이야 재산가 아닌가? 이 돈 없어도 사시는데 지장 없을 분 이니께 염려 말고 우리 살 일이나 걱정 하더라고잉”

 공장장 류 옥천 부부의 대화를 듣자면 그래도 조카딸이 더 낫고 조카사위는 이젠 막보기로 일말의 양심도 없는 것 같다.  ‘동복형제고 보니 성이 달라 장인은 박 씨요 작은 장인은 김 씨가 아닌가? 족보도 함께 안 오르는데 무엇이 켕길게 있나?’ 하는 도둑놈 심보다.

 이리하여 류 옥천 부부는 돈방석사건은 아무도 모르게 하고 (외삼촌은 일본에 가버렸으니까 걱정 없고) 비단포목들은 대강 말려서 쓰시마 부락사람들에게 값 싸게 팔아넘기고 발동선을 한척 대절하여 부산으로 무사히 귀항하였다.

 7.고국의 첫봄.

  다음 (6)호로 끝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