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기로에서 진짜 기절 할 번 한일이 있었다.

 7월에 접어들자 무서운 폭탄이 제조되어 곧 미 공군이 전국에 투하하게 되므로 모든 국민들은 방공호를 튼튼하게 만들어 대피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지시가 내렸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미 해군의 함재기가 너무나도 자주 출몰하였다. 그날도 아버지가 집 옆에 있는 감나무과수원 끝자락의 산기슭에 공장직공들 몇 사람을 데리고 방공호를 파고 있는 것을 내가 구경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 예의 함재기가 나타나 우리를 보고 기총소사를 가했고 아버지는 나를 껴안고 땅에 엎드렸다. 그때 감나무 잎에 총탄이 스치는 소리가 몸서리치게 요란했던 것을 기억한다. 간담이 서늘했다.

 그 다음날 동네 아이들과 줄을 서서 학교를 가고 있을 때, 언덕길을 올라 전원지대 중간쯤 접어들었을 무렵 그 함재기(그라망 전투기라 불렀음)가 건너편 대밭 위에 느닷없이 나타나더니 우리를 향해 자세를 낮추는 것을 보았다. 그곳은 전원지대이고 약간의 고지대에 속함으로 기총소사하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였을 것이다.

 “모두 흩어져라! 적기와 일직선이 되게 엎드려라!”

 우리는 조장의 명령에 따라 신속히 흩어지고 두 손으로 이목구비를 단단히 막으면서 엎드렸다. 적기와 일직선이 되는지 눈치를 보는 것을 명심하면서.

 적기의 기총소사는 우리들의 후방에 총탄을 퍼붓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고 끝났으며 기수를 올린 두 대의 적기는 다시 공격하지 않고 사라졌다.

 “대일본 공군은 무엇 하고 있는 거야? 그림자도 안 보이잖아 ”

 6년생인 조장이 제일 먼저 일어나 바지가랑이 흙을 털며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여기고 웃는 얼굴로 학교로 향했다.

 4년생은 나하고 여학생 둘인데 둘은 모두 귀엽고 밝은 소녀들이었다. 그 소녀들의 이름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침에 줄서서 학교에 갈 때는 그녀들이 나란히 내 앞에 서고, 귀가 할 때는 내가 앞장서서 걷고 그녀들이 내 뒤를 따라오는 식으로, 그러니까 내가 달리면 그녀들도 달리고 내가 천천히 걸으면 그녀들도 천천히 걷는 식으로 항상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녀들은 즐겁게 재잘거리면서 호호 히히 웃으면서 따라왔고 내 집 앞에 오면 ‘잘 가! 안녕! 내일 또 봐!’ 하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무서운 폭탄이 떨어진다는 소문도 잠잠해지고 한여름의 지열이 더워지기 시작하여 여름방학을 간절히 기다리게 하는 7월의 중순 무렵, 우리들은 여느 귀가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앞장서고 그녀들이 바싹 뒤를 따르는 작태로 교문을 나서 두 번 째 대밭을 막 들어서려는 찰라 느닷없이 미 해군 함재기가 나타나더니 우리를 보고 요란한 굉음과 함께 기수를 낮추고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대 밭으로 숨자!”

 내 외침에 따라 소녀들이 일사불란하게 대밭으로 뛰어 넘어 들어가자

 “타타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타.”

 “엄마야! 살려 줘! ”

 대밭 한 가운데 한길이 나있고 길 양편에 막대기로 지주 삼고 기다란 대나무를 베어 가랫대로 지주에 얽어매어 우리들 가슴 높이로 울타리가 처졌는데 그 높은 울을 소녀들이 어떻게 넘었을까, 하여간 우리들은 큰 대나무사이에서 셋이서 한데 엉켜 두 팔에 힘을 주어 꽉 껴안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함재기들의 기총소사는 우리가 엉켜 주저앉아 있는 바로 옆 대나무 울타리에 총탄을 퍼부으면서 굉발하였으니 우리들이 숨이 막힐 지경이 되고 기절하여 한 동안 꿈인가 생시인가 몽롱하게 되어버린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적기는 두 대였으며 재차 공격은 하지 않고 전원지대에서 기수를 올리고 서쪽으로 날라 가 버렸다. 맨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나였으며 귀여운 고수머리 소녀는 눈을 뜨고 나를 본가 싶더니 ‘엄마야!’ 하고 팔에 더욱 힘을 주어 우리를 꽉 껴안으며 놓지 않고 계속 덜덜 떨고 있는 것이다.

 서로 마주본 남은 한 소녀와 나는 동시에 뺨에 꽃 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그 소녀는 슬며시 눈을 뜨며 팔에 힘을 풀면서 역시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워했다.

 “내가 정말 총 맞아 꼭 죽은 줄 알았어.”

 “나도 꼭 내가 맞은 것 같았어.”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꼭 내가 맞은 줄 알았어.”

 대밭에서 나올 때 나는 두 소녀를 모두 손을 잡고 대나무 울타리를 넘겨줘야 했고 우리는 여느 귀가 때 보다 한결 명랑한 기분이 되어 돌아 왔고 이날 이후 우리는 더욱 친절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친절해지고 허물없어지자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여름방학 중에 그들과 만날 일이 별로 없을 것이었다.

 그 해 8월 6일, 그날도 아버지는 직공 몇 사람을 불러다 무서운 폭탄에 대비하기 위해 방공호를 계속해서 파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정보는 정확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끝낸 뒤였을까 ?

 “저길 보아! 무서운 폭탄이다!“

 아버지가 마당에 나가 서 쪽 하늘을 가리키며 외치는 소리를 듣고 온 식구가 다 마당에 나가 바라보았다. 버섯구름이 하늘 높이 피어오르고 밑 부분은 검붉은 불길이 솟아오르고 버섯 꼭지 부분은 흑 회색으로 시시각각 변색이 되고 있었다.

 우리가족은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치를 떨었으며 그 무서운 폭탄이 원자폭탄이란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투하된 곳이 히로시마시(廣島市)라는 것은 그날 밤 뉴스에서 알고 깜짝 놀랐다.

 우리는 고베시(神戶市)정도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보다 훨씬 먼 도시였으니 그 버섯구름이 얼마나 장대했으면 그렇게 가까이 보였던 것일까?

 아버지공장에서는 정상적으로 작업이 진행되어가고 별 어려움이 없었으나 직공들의 정신상태가 해이되고 있는 것이 아버지로서는 큰 걱정이었다. 왜 그러냐하면 화투놀음이 심하여 월급을 탕진하는 직원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앞으로 고국에 돌아 갈 때 빈손으로 가게 되는 직공이 나오지 않도록 단속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여름 밤의 10시경 나는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보로 나가 사호 강 제방을 따라 그리고 가쓰오지 강과 두 강이 만나는 합류점을 지나 드디어 공장에 도착했다. 공장 2층 직공 기숙소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반쯤 올라갔을 때 후다닥 하는 소리와 당황 하는 소리들이 들려 왔고 2층에 올라갔을 때는 아직 치우지 못한 담요와 화투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안하겠다고 약속했으면 약속을 지켜야지, 얼마 안 있으면 고국에 돌아갈 것 아니냐? 내가 아오모리와 홋까이도의 탄광이나 군수공장에서 너희들을 빼내 내 공장으로 데려올 때 .너희들이 도박이나 하면서 빈털터리로 고국에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였겠느냐? 내가 너희들의 생명을 오늘까지 지켜주기 위해 너희들을 지금까지 데리고 있는 것은, 나에게 눈물로 호소한 너희 부모의 덕인 것을 모르느냐? 정신을 차려라! 고국에서 기다리는 부모님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알아들었어? ”

 “예, 알았습니다. 사장님! ”

 무리 중에는 흐느끼는 자도 있었다.

 직공기숙사인 2층 한 쪽 구석방에 할머니와 며느리와 두 손자로, 하나는 여덟 살짜리 계집아이고 나머지는 다섯 살짜리 머슴아이 네 식구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양계장 연수원 강사의 가족들로 양계장연수원이 해산된 후에도 갈 곳이 없어 나가지 못 하고 있다가 전 소유자에 의해 강제퇴거 되어 길가에 내팽겨 쳐지고 있었다. 새 건물주인 아버지의 눈에 띄어 할머니의 비참한 사정을 알게 된 아버지가 지금의 방 한 칸을 내 주고 있는 형편이었다, 할머니의 아들은 농업전문학교출신으로 양계장 연수원강사로 근무하던 중 태평양전쟁에 출정하여 전사하였고 그 아우도 소년비행학교를 나와 가미가제(神風) 특공대로 출격하여 미 군함의 기관실 연통을 목표로 돌격 하여 전사하였다.

 이처럼 어려운 전몰 유가족의 가정에 식량이 얼마나 부족했으면 맨 좁쌀로 밥을 지어먹다가 그 탈이 났을까? 다섯 살짜리 머슴아이가 좁쌀 밥으로 항문이 막혀, 우는 아이를 할머니가 보듬고 어미는 그 아이의 항문을 까서 성냥개비로 굳어진 채 꽉 막힌 변을 비벼 파내고 있었다. 그 할머니도 젊은 어머니도 좁쌀로 밥을 지으려면 먼저 좁쌀 껍데기를 벗기고 나서 밥을 지어먹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기숙사 계단을 다 내려올 때까지 그 머슴아이의 울음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보 웅덩이에서 멱 감는 일이 드물어지기 시작 할 무렵에 나는 자전거를 타고 논길을 한 바퀴 돌고 있을 때 물둑 옆 농가 앞을 지나다 일본천황의 어둡고 비장한 연설을 듣고 무엇인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집으로 핑~들어와 자전거를 팽겨 치고 어머니께로 달려갔다.

 “엄마, 엄마! 무슨 중대한 일이 벌어진가 봐, 천황이 연설을 하데.”

 어머니는 내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공장장 부인과 이야기한다.

 “아이구! 이젠 발 뻗고 편히 잠자겠구나.”

 “고향에도 곧 돌아가겠지요?”

 “암, 가고 말고, 그리운 고향산촌 볼 날도 얼마 안 남았제.”

 어머니의 이야기가 하도 미심쩍어 나는 밖으로 달려 나가 동무들을 찾아보았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고 조용할 뿐, 그런데 형들이 몇이서 걸어가면서

 "왜 항복을 하지? 상륙을 시켜 싸워 보지 않고 .“

 “모르는 소리 말어, 원지폭탄 두 방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 된 줄 모르고 하는 소리냐? 천황도 우리국민을 살리려 항복한 것이고 이건 아주 잘 한일이야. 상륙시켜 싸워보자는 군부는 국민이 다 죽어도 좋단 말인가?”

 그날 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한국 사람이고 전쟁이 끝났으니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과 아버지의 많은 돈을 한국으로 비밀히 운반해야 하는 일이 큰 문제라는 것을 막연히 알게 되었다.

  그날 밤 이후 아버지는 정보를 입수하려 돌아다니시는 한편 거금의 운반수단을 강구하느라 오만가지 궁리를 다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여름방학이 어떻게 지내 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학교에 나가 생활했는지 4년 동급생인 두 여학생하고 퍽 친해진 뒤인데 어떻게 학교를 오고가고 했는지 전연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그 근처의 해군 기지에서 해군수병들이 쓰던 긴 줄이 달린 가방을 배급받았고 그것이 신기하고 좋아서 매일 메고 다니던 것과 두 여학생 친구들과는 이제는 나란히 서서 집으로 돌아오던 것이 퍽 즐거웠던 기억뿐이다

 여름의 열기가 가시고 감나무의 잎도 초록의 짙은 빛이 윤기 없이 퇴색되기 시작할 무렵, 그날 오후 나는 집 앞길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담임선생님이 지나가시다, 가까이 오시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야쓰짱! 조선에 가도 훌륭한 학교가 많이 있으니 공부 열심히 하고 건강하게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해요.”

 “예!”

 선생님은 웃음 띤 얼굴로 손을 흔들면서 상류 쪽으로 향한 길로 가셨는데 그 때 선생님의 모습이 얼마나 아리따웠는지 이별 후 오랫동안 잊지 못 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 까지 그 유명한 모나코 왕비인 영화배우 ‘그레이스 케리’를 닮았다고 기억하며 사모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은 선생님의 모습을 헤어질 때 단 한번 기억되는 것이 이상하고 학교에 가서 작별인사를 한 기억이 없는 것이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아버지가 전학수속을 모두 밟아 학교에 나가지 않고 떠나버린 것도 같다

 이렇게 해서 모두 작별을 하고 떠날 날만 기다리는데 부모님은 너무도 바쁜 일과 속에서 출국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공장직공들을 위해서는 선박 한척을 대절하기로 계약을 했고, 우리가족은 특별히 당국에서 알선해주는 병원선에 승선할 예약증을 받아 놓고 있었다.

 다만 가장 큰 일은 일본지폐를 어떻게 반출할 것인가의 문제만 남은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일본지폐 중 1945년 8월에 발행된 최고단위의 고셍엔 권(甲千圓券)은 1942년 4월에 양식고시 된 태환문언이 부기된 최후의 천 원짜리 화폐였으므로 금화(金貨)와 같은 가치가 있어서 패전 후 해외 반출을 단속하였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간다.

 추석이 다가오는데도 음식 준비는 아랑곳없이 어머니는 다마가와 누님(공장장부인)과 단둘이 비밀히 깊은 밤으로 철야하여 작업이 시작되었다.

 청회색이라 할까, 청색은 연하고 남색이 가미된듯한 비단 천으로 만들어진 방석이 수백 개가 작은 방에 쌓여지고 그것을 안방에 수십 개씩 가져다가 단 둘이서만 작업하는 것이다

 먼저 실밥을 뜯어서 방석안의 네 귀퉁이와 가운데 도합 다섯군데에 천원 권 다발을 한 뭉치씩 집어 놓고 다시 실로 봉합하는 일이였다. 이렇게 지폐를 넣은 방석을 여남은 개씩을 고리짝에 넣어 작석하기를 총 43 개를 만들었으니 그 중에 비단 포목과 옷가지를 넣은 고리짝이 3분의 1이였다 가정해도 지폐를 비장한 고리짝은 얼추 30여개가 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방석에 들어 있는 지폐가 {1000엔☓100=100,000엔}×5=500,000엔이 되니까 한 고리짝이면 500,000엔×10=5,000,000엔이 된다. 지폐를 넣은 방석 고리짝이 30개로 보면 전체 지폐량은 5,000,000엔× 30=150,000,000엔이 된다. 그 당시 공장노동자의 일급이 3,718엔(일본장기통계총람, 총무청통계국 감수)이였으니까 월급은 111,540여엔이 되고 연봉이 1,338,480여엔이 된다면 공장노동자의 급여로 비교해서 112년 치가 넘는 거액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드디어 공장직공들은 공장장의 인솔아래 최신식 모타 2대와 그 비밀의 금환지폐가 숨겨진 옷 고리짝 43개를 싣고 오사카 항에서 부산을 향해 출향하였고, 우리 가족은 기차로 시모노세끼 항까지 가서 예약된 병원선을 타고 부산을 향해 출항하였다.

 6.쓰시마섬(對馬島)에서, 두 사나이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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