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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임정수 수필소설작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임정수
ㆍ작성일 2011-12-02 12:02
ㆍIP: 58.xxx.46
몽정
몽정 / 임정수




몇일을 열대야로 잠을 설쳤더니 온몸이 쑤시고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잠은 잠대로 설치고 공부는 공부대로 진도가 늦어지다 보니
육체적인 피로보다는 정신적인 피로가 더 심했으리라.

육신이 피곤하니 정신도 피곤하고 만사가 귀찮아지기도 하다.
때로는 예전에 상동에서 공부를 할 때에 체험했던 유체이탈로
육신과 정신이 둘로 나뉘어져 따로 놀기도 한다.

이럴 땐 잠이라도 실컷 자고나면 피곤이 풀리겠지.
그렇게 쉬이 잠들지 못해 이리 저리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을 때
어느 여인이 나를 향해 방긋 웃고 서있는 걸 보게 되었다.

그 여인은 내가 그토록 찾고 기다리던 바로 그...
그렇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얼마나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인데 결코 잊을 수는 없지.

한참을 마주보며 서 있다가 슬며시 잡은 두손...
역시 그녀의 손은 부드럽고 따스했다.

비록 꿈속에서 만나는 그녀란걸 나자신 스스로가 더 잘 알고 느끼면서도
마음 같아선 허리가 으스러지도록 그녀를 안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있는 이 순간만큼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들만치 행복했다.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선 제발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 주길 빌고 또 빌면서
오래도록 그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녀를 품을 수 없는 안타까운 자신을 한탄하며
영원히 그녀를 기억하고파 두눈을 크게 떴을 때 무더운 새벽 열기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잠이 확 달아난 말짱한 정신임에도 그녀의 모습은 생생히 떠올랐다.
이런 덴장...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저 손 한 번 잡았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몽정을 하고 말았다.
그녀를 잊이 않으려 무의식 중에도 그녀를 떠올리다 그만 실수를 하곤 만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꿈속에서라도 끝까지 가보는 건데...

샤워를 하고나니 몸이 가벼워지고 개운하다.
참선으로 그녀를 묻었다.
내 가슴 속 깊숙한 곳에 그녀를 숨겨 두었다.

그리곤 작은 그릇에 담긴 번뇌들을 조금씩 떼어내었다.
무슨 미련이 남아서인지 하나하나 떨어지는 번뇌 속에서도 그녀의 흔적은 빛을 내고 있었다.

이것은 그녀의 맑은 두눈, 이것은 그녀의 미소...
내속에 담긴 무거운 것들을 하나씩 떼어낼 때마다
마치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그녀를 옮겨 놓았다.

그래, 잊자.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면 그녀를 위해 나를 비워야 한다.

잠시 어지러웠다.
내가슴 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그녀를 꺼내고나니 부끄러움이 엄습해온다.

그녀가 나를 노려본다.
사람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 것을 왜 그렇게 주물럭거리다 내동댕이 치느냐며
나를 한없이 원망하는 것만 같았다.

이제 그녀는 없다.
어디로 갔을까?

텅 비어버린 내 안에 그녀의 흔적은 없고 부처님의 미소만이 가득할 뿐이다.
내가 걸어야할 길이 스님의 길이기에 정녕 그녀는 내안에 머물 수가 없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느껴본 희열의 몽정...
그렇다.
어차피 인생은 덧없는 것이다.

사랑도 한 순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잊을건 한 시라도 빨리 잊어야 한다.


가자.
나의 두터운 업보를 다 짊어지고 험난한 가시밭길이 펼쳐지더라도
오랜 세월이 흐르고 흘러 잊혀진 나를 기억해줄 이가 없어도
주어진 운명의 길을 가고 또 가야만 한다면 그렇게 가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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