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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임정수 수필소설작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임정수
ㆍ작성일 2011-12-02 11:57
ㆍIP: 58.xxx.46
마지막 남은 고추
마지막 남은 고추 / 임정수




언젠가 경북 안동으로 귀농지를 알아보러 갔을 때였다.
배도 고프고하여 요기라도 할겸 안동 시장엘 들렀는데
마침 장날인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실 안동 시장이라해도 손바닥만하니 올 적마다 텅 비다시피 했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시장엘 가니 그날이 바로 장날이었다.

마땅히 요기할 곳이 없어 두리번 거리다
리어카에다 고추를 수북히 쌓아놓고 파는 아저씨를 보게 되었다.

귀농에 관심이 많고 농사에 기술을 습득하려던 때라
싱싱한 풋고추를 보니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 옆에서 지켜보니까
아줌마들이 비싸다고 하면서도 잘들 사가는 것이다.

마침, 바로 옆에 조그마한 수퍼가 있어 생수 하나 집어들고 벌컥벌컥 마셔댔다.
어느정도 갈증이 해소되자 땡볕에서 고추를 팔고 계신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생수를 하나 더 사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많이 팔았슴미꺼?"
"예? 예..그런대로 팔리니뎌."

"목마르실텐데 시원한 생수라도 드시이소."
"예? 고맙니더.."

"어데로 가는 길이니껴"
"예...귀농을 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니는 중입니더."
"그러니껴? 우리 동네에도 도시에서 귀농을 한다고 많이 와서 사는데..."

아저씨는 고추를 팔면서도 틈틈이 도시에서 귀농하여 들어와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얘길 들려주었다.
"단순히 시골을 동경하며 살려고하면 안되니더. 고생없인 아무것도 안되니 하는 말이니더."
"예..맞습니더. 귀농이 어디 놀러가는 것입니꺼."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그많던 고추들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급한 볼일이 있다며 잠시 좀 봐달라고 그러면서 화장실로 뛰어 가셨다.

아줌마 몇이서 마지막 남은 고추들을 전부 싸게해서 달라고 하여
내맘대로 싸게 주고 보내었더니 좀 있다 다른 아줌마 하나가 뛰어 온다.

"고추 다 팔았니껴?"
"어데예...하나 남가 놨다 아입미꺼."
"안보이는데예..."
"아줌마를 위해서 꼭꼭 숨겨놨다 아입미꺼."
"....."

"그런데 마지막 남은 건 절대로 팔면 안되는데..."
"예?"
"우리 마누라가 이것마저 팔고 왔다고 그러면 제가 집에서 쫓겨난다 아임미꺼."
"예? 호호호..."

무슨 말인지 금새 알아차린 아줌마가 의미있는 웃음으로 조용히 말한다.
"아저씨! 선수시니더.."
"선수는예...아줌마가 하도 이쁘서 그렇지예..."

언제왔는지 고추 장사 아저씨가 뒤에서 큰소리로 웃는다.
"하하하...세상에 살다보니 우리 마누라 한테도 작업을 거는 사람이 있었네 그려.."
"예?"

아줌마는 다른 곳에서 팔다가 고추가 다 팔려서 가지러 왔다고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날은 재수가 좋아 빨리 다 팔수 있었다며 같이 식사하러 가자는걸
둘이서 오붓하게 식사하라며 눈치껏 빠져 주었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어딜 가서 배를 채우지?'

몇 번이나 와 본 곳이지만 안동 시장이라고 해도 마땅히 갈만 한 곳이 없다.
도로변 휴게소에도 먹을만한 것이 없고...

내 입맛이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워낙에 작은 시장이다 보니 그런 것이다.
개인적으론 중국 음식을 별로 가까이 하질 않기에 더욱 먹을게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아까 그 고추장수 부부에게 크게 실수를 한 건 없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만약에 그 아줌마가 손님이었고,
마지막 남은 두 소쿠리 중 한소쿠리를 낑가달라고 그랬다면 어땠을까?

사과는 깎아달라면 그자리에서 내가 손수 깎아서 줄 수는 있었어도
낑가달라고 했더라면 고추를 팔다말고 잠시 모텔로 가서 낑가주고 올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난감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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