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한영택
ㆍ작성일	2021-02-2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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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빛난 덕유산 설원의 상고대

유난히 빛난 덕유산 설원의 상고대

한영택

겨울에 피는 꽃이 있다. 따뜻한 기온의 남쪽 나라에서는 동백이 피고 한란이 향기를 더하겠지만 잎이 마르고 뿌리가 생장을 멈추는 혹한에 어떻게 꽃을 피우는 것일까? 그 꽃은 오히려 기온이 따뜻해지기라도 하면 금세 지고서 사라져버린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는 위로 가만가만히 피어오르고 세찬 바람에는 바람의 결을 따라 꽃을 피우며 자란다. 붉은 장미가 있다지만, 분홍, 노랑, 보라, 파랑, 하얀 장미도 있다. 하지만 이 꽃의 색깔은 변절 없는 오로지 하얀색이다. 인간이 조합해서는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무채색의 백색 꽃, 바로 바람과 눈이 만들어 피워내는 雪花이다, 하얗게 핀 너무도 아름다운 꽃 그 꽃을 보러 덕유산을 찾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오지는 영남의 BYC(봉화, 영양, 청송) 호남의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 라 칭하는데, 한번 눈이 내리면 4월까지 녹지 않는다는 전북 무주군 설천면 덕유산 설경은 겨울 산행의 백미로 꼽힌다. 덕유산(향적봉 1,614m)은 경남 거창과 함양, 전북의 장수와 무주에 걸쳐 펼쳐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특히 설천봉과 향적봉까지 600m 구간은 한겨울 가장 춥고 맑은 날에만 볼 수 있는 순백의 눈꽃과 상고대는 정말 아름답다. [높은 산 순위(남한) : ❶ 한라산 1,905m ❷ 지리산 1,915m ❸ 설악산 1,706m ❹ 덕유산 1,614m ❺ 계방산 1,577m ❻ 함백산 1,573m ❼ 태백산 1,566m ❽ 오대산 1,563m ❾ 가리왕산 1,560m ❿ 화악산 1,468m]

겨울 산행은 삭막하다. 잎이 지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휑하게 몰아치는 칼바람에 온몸이 추워지는 느낌이라 그렇고 낮이 짧아 원하는 만큼 산행을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예전과 달리 장시간의 무리한 산행은 하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 3~4시간 정도 산행하려면 마땅한 곳이 별로 없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시점에 집안에만 박혀있기엔 너무나 무기력한 일상이다. 그래서 좋은 기회가 있으면 같이 가자고 한 날이 오늘이다.

아침 8시 30분 대구에서 출발 설천면 스키장까지 120km 약 2시간 걸려 10시 30분에 당도했다. 평일이라 좀 한산할까 했는데, 웬걸 주차장엔 들어서니 뒤따라 차량이 연이어 들이닥치고 순식간에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재빨리 곤돌라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지만, 그 사이 승강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긴 행렬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필자도 친구 3명과 같이 1시간이 지나서야 곤돌라에 탑승할 수 있었다. 곤돌라로 설천봉까지(길이 2,659m 속도 5m/s) 20분 정도 걸리는데,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기에 설경을 보러온 많은 사람이 이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곤돌라를 타고 오르는 중 설원 위를 활강하는 스키어들이 보이고 1,200m 고지쯤부터는 산 아래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아침햇살에 반사되어 비치는 순백의 상고대가 정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보였다.

설천봉(1,520m)에 다다르자 눈앞에는 파란 하늘에 드넓은 설원이 한눈에 펼쳐진다. 수백 년의 세월을 이겨온 주목은 가지마다 순백의 눈꽃을 피웠고, 팔각정 쉼터 상제루는 마치 얼음 성처럼 하얀 눈으로 덮여 장관을 연출하였다. 어디를 둘러봐도 흰 눈으로 뒤덮여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다. 일반적 산행코스는 구천동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4.4km) → 백련사(2.2km) → 향적봉(0.6km) → 설천봉(약 4시간)까지 와서 곤돌라를 타고 하산하기도 하는데, 단순 트레킹의 눈꽃 구경이라면 설천면 스키장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 설천봉에서(0.6km) → 향적봉(1.1km) → 중봉까지 갔다가 되돌아가는 방법을 대부분 선택한다.

평일인데도 설천봉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상제루 옆 돌담을 따라 눈을 뒤집어쓴 구상나무가 만들어낸 눈꽃터널을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급하다. 오늘같이 날씨가 맑으면서 눈꽃이 핀 날은 더욱 그럴 것이다. 서둘러 향적봉에 올라 덕유산의 황홀한 설경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필자는 차근차근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시간이 걸린다. 이어 향적봉으로 향하는 곳곳에 포토존이 있어 멋진 풍경을 담아가려는 사람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전번 주에 많은 눈이 내렸고 어젯밤에 살짝 눈이 더 내린데다 날씨가 맑아서 주목의 상고대는 유난히 아름답게 하얀빛을 반사한다.

향적봉을 둘러 산 상고대는 하늘에 떠가는 구름과 맞물려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가파른 계단을 통과해 정상에 오르자 사방으로 펼쳐진 설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향로봉(1,614m)에서는 사진을 찍으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으로 꽉 찼다. 얼마 후 인증 샷을 남기고 왔던 길 되돌아갈까 하다가 이왕이면 중봉까지 갔다가 되돌아가는 것이 더 나을 거 같아 곧바로 발길을 재촉했다. 중봉으로 향하는 내리막 100m 지점에 향적봉휴게소에서는 많은 사람이 앉아서 각자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마땅한 자리도 없고 12시 30분이라 일행은 일단 중봉에 오른 후 점심을 먹자고 발길을 재촉한다. 중봉으로 오르니 덕유평전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에는 원추리(백합과 식물)가 군락을 이루고 자라고 있고 6~8월이면 온통 노란 세상이 된다는데 겨울이라 볼 수 없었지만, 몸을 낮추고 봄을 기다리고 있는 진달래와 철쭉. 조릿대 잎들을 눈꽃이 덮고 있다.

가장 좋은 시기에 가장 멋진 사진을 남기기도 쉽지 않은데 오늘은 타이밍이 정말 좋은 거 같다. 중봉에서 사방으로 불어 닥치는 바람이 매섭다. 곧바로 되돌아오는데 한낮이라 햇살을 집중적으로 받은 곳에는 바람은 차지만 눈이 조금씩 녹는 거 같다. 중봉에서 되돌아오는 길옆 가장자리에 동굴처럼 눈으로 덮은 소나무 아래에 앉아 점심을 먹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자리가 멋지다며 자청해서 인증 샷을 담아준다. 설천봉에서 향로봉을 거쳐 중봉까지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 능선을 따라 설원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데, 경험하지 않고는 그 기분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설천봉 상제루가 있는 승강장에 당도한 시간이 오후 3시, 내려갈 때도 30분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서야 곤돌라를 탈 수 있었다. 하산 후엔 갈 길이 멀어 곧바로 대구로 향한다.

2021년 1월 13일 맑고 쾌청한 날 잠시라도 ‘코로나 19’로 지쳐있는 심신을 달래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끝나지 않는 ‘코로나 19’와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오고 꽃도 핀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듯 때가 되면 혹한에 피어올랐던 찬란한 눈빛 雪花가 또 그리워질 것이다.

21.01.13.

정대수 2021-03-20 18:02	`한영택`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한영택 작가님 안녕하세요. 덕유산의 "설화" 가 상상이 됩니다. 겨울산행은 그것도 고지대는 고생을 각오해야 하지만 자연이 내어주는 보상은 실로 대단하지요. 남겨진 사진은 곧 작품이 되고 오래도록 자랑이 됩니다. 풍경을 담은 사진을 보지 못함이 좀 아쉽지만 산행기를 자세하게 집필해주셔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오지 BYC(봉화, 양양, 청송) 무진장(무주,진안, 장수)라는 표현에 참 재밌게 배독했습니다. 코로나19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날린 계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고 만사에 형통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한영택 2021-03-21 09:51	《Re》정대수 님 , 정태수 작가님 반갑습니다. 잘 계시지요? 눈꽃 산행지로 한라산, 태백산, 함백산 등등 좋은 곳 많지만, 고지 산행은 교통수단도 그렇고 접근하기가 쉽지 않지요. 덕유산은 스키장과 연계된 곤돌라를 이용해 쉽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기에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거 같습니다. 산 아래는 눈이 녹아도 정상부엔 기온이 낮고 잔설이 있어 주목과 어우러진 상고대가 어느 곳보다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해가 빨리 떨어지고 앙상한 나무에 찬 바람이 횅하게 불어대는 삭막한 겨울산행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지만, 하얀 눈으로 덮인 날 가장 좋은 시기에 눈꽃 산행은 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있어 친구들과 다녀왔는데, 타이밍이 잘 맞은 거 같아요. 쌓인 눈에다 맑은 날씨에 나뭇가지에 활짝 핀 상고대가 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니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실내 외부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가끔 산행이라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건강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하루 빨리 예전에 일상을 찾았으면 합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3월 되십시오. 휴일 잘 보내세요.

‘코로나 19’로 빼앗긴 ‘카이로스의 시간’이 그립다

가야산 만물상능선을 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