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공기 속에서 곱게 물든 은행잎, 단풍잎이 바람에 휘날려 눈꽃처럼 풀섶에 앉는다. 잡티 하나 없는
고운 아가 손처럼 보인다, 그 고운 잎들을 잡초와 함께 갈퀴로 긁어서 한쪽으로 모아 놓고, 눈을 멀리 돌려본다. 푸른 하늘 밑에 울긋불긋 화려한 단풍들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 모습이다. 현란한 단풍잎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면서도 왜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할까? 이 순간, 그것들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감이고,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이 지천이라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주어진 여건을 상황에 따라서 감정으로 다스리고 있다. 행복과 불행도 생각하기 나름이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친구와 지인들과도 단절된 오직 자연과의 생활이다. 서울에서는 자주 보지 않던 TV의 시청이 시골집에서는 오직 세상과의 교류 시간이다. 이곳의 생활은 3~4일 까지는 그런대로 지낼만하다. 일이 대충 정리되면 서울의 집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난 할아비 모르게 서울 집에 갈 준비를 서서히 한다.
'챙겨갈 밑반찬 거리가 뭐가 있을까? 광주의 농수산물 센터에서는 무엇을 사서 가지고 갈까?'

 집안의 먼 친척인 이웃에게 쌀, 고추, 들깨, 콩(메주), 팥, 현미 찹쌀, 찹쌀 등 많은 잡곡을 부탁한다.
그들은 여름내 땀 흘리면서 가꾸어 거둔 곡식을 카트에 실어서 가지고 온다. 많지 않은 토지세도 챙겨온다.
이들이 가지고 온 농산물값을 요구하는 대로 다 준다. 그들은 이 농산물 수확을 위해 여름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농사가 힘든 일이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 농산물'이란 것으로 아주 만족하다.

“자네, 새로 짠 참기름이네. 나물을 무쳐 먹게”
허리가 구부러져 거동이 불편한 집안 아주머니는 카트에 몸을 의지하시곤 참깨와 푸성귀와 참기름을 또 가지고 오셨다. 이런 이웃들의 모습에서 생전의 시어머님 모습을 회상한다.

 가을이 오면 햇곡식과 고춧가루, 들깻가루, 참기름, 들기름 등을 바리바리 챙겨서 서울로 올려보내시던 시어머니, 그때는 시어머니의 자식 사랑하시는 정성이 얼마나 지극하신가를 생각지도 못했었다. 오직 넉넉하고, 여유롭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오로지 자식이 전부인 어머님의 그 마음을 읽지도 못했으니.......
가슴이 아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머님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그 곡물의 소중함도 모르고 동료 교사나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인심 쓰기에 옹색하지 않았던 나, 이런 며느리의 속없는 행동을 아셨다면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어느덧 나도 시어머니가 되어 이런 잡곡들을 아들과 딸 집으로 보내려고 바리바리 사서 챙기고 있으니.

 이들은 이 어미 또는 시어미의 마음을 이해 못 할 것이다.
 '그저 어머니가 좋아서 하는 일, 어머니는 여유가 있으니까' .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전의 시어머님의 깊은 사랑을 이해 못 했듯이.......
곡식 세 가마(240kg)와 고추, 들깨, 참깨, 단감........
 큰며느리 집은 쌀이 많이 필요하다. 손들을 돌보는 도우미가 있으니 무엇이든 헤픈 듯하다.
 쌀과 잡곡들을 많이 보낼수록 아주 좋아한다. 차에 더 실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차 트렁크와 뒷좌석에 꽉 채워 실으니 할아비와 할미만 겨우 탈 수 있는 공간이 남는다. 아들, 딸, 며느리도 이 어미가 보내주는 가을걷이 곡물들이 시답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분명히,

이 어미의 심정을 이해할 때가 올 것이다. 시어머님께서 자식에게 무작정 베푸신 사랑을 이제야 새록새록 깨닫듯 그들도 언젠가는 이 어미의 마음을 이해하고 애달파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나 관계에서 처신해야 할 도리를 때 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서울에 올라가면은 고추를 닦아서 가루 내기, 들기름 짜기의 큰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몸은 고달프지만, 마음은 흐뭇하고 행복하다.  자손들에게 보내 줄 곡물과 이 어미의 정성과 사랑이 있으니.......                                                                                                                             

                                                                                                                  (2013년 10월 28일)
가을을 안은 시골집

 대봉 감나무 뒤에 있는 잎이 무성한 나무가 '사각호두나무'입니다. 할아비가 제일 좋아하는 귀족호두나무이지요. 난 ,할아비가 '뽀도독' 소리 내며 굴리고 있을 때는 화를 버럭 냅니다. '복' 달아난다고.......
특이하게 호두 껍질이 사각, 삼각, 이각의 모양이며 먹지는 못합니다. 이 호두나무 세 그루가 완전 밀림지역을 만듭니다. 할아비는 내 잔소리에 못이겨 여름에 사정없이 모두 쳐내어 모양을 냅니다. 할아비 왈
 "당신은 먹지 못하는 나무는 나무로 생각지 않는 오소리야?"
 그런데 앞으로 잔소리를 못하겠습니다. 신문과, TV방송에서 사각호두에 대한 가치를 자세히 방송합니다.
예술적 가치가 있는 귀족호두나무라나?  할아비는 의기 등등하여 내년에 호두가 많이 열릴 수있도록 앞쪽에 무성하게 자란 귀족호두나무 가지를 전지하고 있습니다.

 이사진 밑으로 가면 대나무 숲이 있습니다. 죽순은 먹기는 좋은데 번식력이 매우 높아 관리가 힘듭니다.
대나무 숲을 지나면 높은 절벽이 나오며 그 절벽 위에 정각이 있습니다. 정각 앞으로 개울이 흐르고 뒤로는 험한 산새가 있습니다. (背山臨水) 개울 앞으로 운주사로 가는 국도가 있어 차량 통행이 많습니다.
 일 년에 3~4회 가게 되는 시골집의 철마다 다른 아름다운 배경을 뒤로하고 떠나 올 때는 좀 아쉽기는 합니다. 일 끝내고 서울로 올라올 때 마다 애물단지 시골집이라고 걱정합니다.  
 깨끗이 정리된 밭입니다. 할아비는 안쪽 깊숙한 곳에서 대나무와 전지한 나무, 풀 등을 태웁니다.
 스포츠댄스 강사한테 할아비와 나에게 문자 메시지가 계속 옵니다. 해외여행 중이시냐고........
배운 것 다 잊어서 한참 고생할 것 같습니다. 힘들게 일하였어도 정리된 밭을 보니 개운 합니다.
풀 속에 묻힌 텃밭

 
대문 앞의 수호신 소나무

시골집 대문에 있는 소나무입니다. 수호신이 되어 빈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 늦도록 외등을 켜고 풀을 뽑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