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숙자
ㆍ작성일	2014-03-29 07:18

ㆍIP: 59.xxx.101

할머니

연희동 김 숙 자

'할머니' 편안하고 정이 가는 낱말이다. 할머니는 거짓과 욕심이 없고 항상 베풀기만 할 것 같다. 어떤 잘못도 이해와 용서를 쉽게 해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좀 만만해 보인다. 또 각기 다른 능력과 학력을 소유하고 있어도 '할머니'는 좀 무지할 것 같고, 능력과 의욕이 없고,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무력한 존재처럼 생각된다. 스스로 문제 해결을 다 못하고 가족이나 타인의 보호를 받아야만 힘이 있을 것 같은 할머니-

2~3년 후면 70세가 되는 난 분명 할머니이다. 나이뿐만 아니라 체력적인 면에서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다. 9년 전부터 친손 외손 다섯 손의 할머니가 되었고, 그, 전부터(50대 후반) 어린아이들한테 할머니의 소리를 들었지만 난 아직 나이가 꽤 있는 성인에게서까지 '할머니'이란 호칭을 듣고 싶지는 않다. 이런 나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올해 들어서 두 번의 '어르신' '할머니' 소리를 듣고 마음의 상처도 컸지만, 그 상처만큼 그런 말을 하는 그들을 무지하게 욕을 하였다.
"자기들도 머리가 허옇게 늙은 주제에 누구를 보고 할머니라니, 못된 인간들"

4월 6일(토)은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남편 일찍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초등학교 친구의 막내아들을 여우는 날이다. 독거노인을 만들까 봐 노심초사하던 친구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나는 노총각의 혼인 날짜를 잊을까 봐 눈에 보이는 달력에 크게 표시해 놓고 수시로 확인하며 이날을 기다렸다.

비도 오고, 예식장은 처음 가보는 1호선 제기동역 부근이다. 주차 형편을 알 수가 없어서 차를 가지고 가기엔 자신이 없다. 남편은 지하철을 이용하란다. 버스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며 결혼식에 참석했다. 혼기가 늦은 결혼식이지만 반듯한 신랑과 신부의 모습을 보며 마음속 깊이 행복한 가정의 탄생을 축원하였다.
예식장 앞에는 '약령시장'이다. 밤, 대추, 채소. 과일.......
모두 모두 사고 싶다. 약식을 만들 재료만 사고 최소한 짐을 줄인다.
구매충동을 억제하며 지하철 1호선으로 시청까지 왔다. 다시 2호선으로 홍대 입구까지 가서 버스로 갈아타야한다. 무임승차 카드를 잘 사용하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게 결재를 하고 지상의 버스정류소 쪽으로 나오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여보세요, 홍대 입구역에서 버스를 갈아타려고 하니 연희동의 버스정류장으로 나오세요,"

큰 소리로 남편에게 전화하며 버스에 오른다. 승차하려는 승객들도 많지만 이미 버스 안은 많은 승객으로 아주 혼잡하다. 승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만 했다.우산, 핸드백, 약식재료, 결재지갑 등 복잡하다.

요금 결재 기기에 카드를 대고 빈자리를 찾는다. 염치도 없이 양보하는 자리에 얼른 앉는다. 몇 정거장을 지나자 갑자기 운전기사가 큰소리로 방송한다.
"할머니, 요금 내세요, 결재 잔액이 없잖아요."
'누구보고 하는 소리야?'
난 할머니가 아니므로 태연하다. 더구나 결혼식에 다녀오니 옷차림새나 외양이 할머니는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운전기사는 답답하다는 듯 다시 더 큰 소리로 말한다. 운전석 백미러에 보이는 운전기사의 눈빛이 나와 마주친다.
"나 보고 하는 소리에요? 결재 잔액이 없다니요......."
버스는 흔들리고, 난 중심을 못 잡고 비틀 거리며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카드지갑을 갖고 결재기로 다가갔다. 많은 승객은 나만 쳐다보고.......
지갑 안쪽에 둔 교통카드를 보고서야 겉에 있는 지하철 무임승차 카드를 결재기기에 댄 실수를 알은 것이다.
'그렇다고 나를 보고 할머니라니, 자기도 오십 보 백보로 늙어가지고(내 생각)......'

어느덧 연희동 자치회관 정류소가 가까워진다. 창피하고, 화는 부글부글 끓고, 하차 출입문 앞에서 또 결재기기에 카드를 댄다. 차창 밖으로 우산을 쓴 남편의 모습이 스친다. 내리는 승객은 나뿐인 것 같다. 버스는 정차를 할듯할 듯 주춤주춤하더니 그냥 지나친다.
"내려주세요!"
짜증스럽게 말하였지만 그냥 지나치는 못된 운전사, 안타까운 듯 출입문 쪽에 앉아 있던 승객이 운전사 입장을 대변해준다.
"하차하겠다는 벨을 누르셔야지요."
'아니, 내리려고 문 앞에 서있는 승객이 눈에 보이지도 않나? 못된 운전사!'

한 정거장 위에서 짐을 들고 내려오자니 화가 나고 분통이 터졌다. 무지한 할머니에, 거동이 불편한 귀찮은 노인 승객의 대접을 받다니......,
남편이 짐을 들고 우산을 받쳐준다. 난 운전기사의 횡포와 폭언(할머니란 말)에 못된 인간으로 몰아세우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여보, 우린 2~3년 후면 70 세야. 틀림없는 할머니, 할아버지야. 노인임을 스스로 인정하며 그 나이의 위치에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며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세"
남편은 흥분하여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나를 다독여 준다.

그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틀림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다. '할머니'란 말은 앞으로 죽을 때까지 들어야하는 나에 대한 '호칭'이다. 그 호칭을 듣지 않으려고 외양을 억지로 꾸미거나 감추려고 하지 말자. 누가 나에게 그 호칭으로 부르더라도 분노하거나 서글퍼하지 말자.
'어르신' '할머니'의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의 자세와 품위를 유지하도록 노인다운 체통을 지키려는 노력만을 아끼지 말자. 그리고 무기력한 이 할미의 힘이 되어주고 보호해주려는 남편이 곁에 있어서 행복한 줄 알며 서로의 건강을 챙겨주자. 더욱 더 건강을 지키며 늙음을 늦추려는 노력은 게을리 하지 말자.
壽命이 100세 시대에 진입하는 중늙은이의 마음가짐을 다져본다.

2013년 6월 22일 연희동에서

이순향 2014-03-29 19:44	이런..이런..ㅠㅠ...유난히 매너가 꽝인 운전사를 만나셨군요....100세 시대의 60대는 완숙한 멋이 드러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충분히 아름다우세요...~~~

주응규 2014-05-01 11:08	오월 첫 날 작가님의 옥고에 편히 머물러 감이 행복합니다 안타깝고 잔인한 4월을 치유할 수 있는 오월 되시고 신록의 계절 가정의 달, 댁내에 행복 가득하십시요.^^

늦가을 시골집에서

3월의 큰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