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숙자
ㆍ작성일	2014-10-12 02:06

ㆍIP: 108.xxx.86

뉴저지의 겨울나기

뉴저지에서 김숙자

초겨울엔 눈이 내리지 않던 뉴저지는 1월 말경부터 하루걸러 눈이 온다.
봄을 여는 3월이 왔건만, 내린 눈이 녹기 전에 쌓이고 쌓여 산처럼 얼어붙어 있다.
대부분 밤사이에 소복이 눈이 내린다.

이곳 관공서, 도서관, 학교는 눈이 내리면 임시 휴일이 된다.
새벽 5시경 제설차가 요란스럽게 도로를 활보하며 눈을 치우고 있을 때 학교에서 전화가 온다.
날씨 관계로 임시 휴일이라고 녹음된 음성으로 자세히 안내한다.
이러길 1월 말부터 2월까지 일곱 차례를 휴일로 보내고 있다.

지금 3월 초(3/5일)인데 창밖에는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 온천지가 눈 속에 묻혀있다.
어제 학교에서 돌아온 큰손자는 내일 폭설이 내릴 것이며 또 임시 휴일이 될 것 같다고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셨단다.
밤새 후두둑 후두두 비가 오더니 새벽부터 눈이 나리기 시작한다.
딸이 뉴욕 포댐 대학에서 강의가 있는 날이라 새벽 밥을 짓고 있는 중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다.
손자의 학교에서 온 전화다. 임시휴교를 한다는 녹음된 안내의 말이다.
딸은 인터넷으로 이곳저곳에 정보를 알아본다. 포뎀대학은 오후 3시부터 Open 한다고 한다.
그러나 잠시 후에 이 대학교도 휴강을 한다고 다시 연락이 왔다. 도서관이나 관공서도 모두 휴무일이다.
이곳 미국사람들은 바쁠 것이 없고,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매사에 안전을 최고로 치고 미리미리 예방하며
느긋한 대처로 사고 없이 여유로움을 누리고 산다.

1월 말경에는 대폭설이 몰려온다고 방송과 언론에서는 며칠 전부터 시시각각 안내하였다.
그날은 뉴욕시장까지 방송하며 근무지에서 모두 일찍 귀가하라고 권고하였다.
뉴욕 도심은 사상 처음 공허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오후 6시경에는 사람을 구경할 수 없는 유령의 도시가 되었단다. 그러나 그날 뉴욕의 골목길에 찬바람만 휘몰아칠 뿐 눈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미리미리 예방하여 우리의 안전을 취하는 것이 최고가 아닐까요? "
다음날 뉴욕 시장은 호들갑을 떨던 자기의 실수를 사과 비슷하게 방송을 한 적도 있었다.

"내일은 일 학년의 수업일 수가 180일 중 90일을 마친 Half Day 래요."
며칠 전에 1/2을 상징할 수 있는 의상이나 장신구를 갖추고 등교하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고
설명을 하던 손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같은 크기의 줄무늬 옷이나, 위아래 옷을 다른 색으로 입던지, 짝작이 운동화를 착용하거나, 귀걸이를 한쪽만 하고 오라고 하였단다. 학교수업이 좀 수선스럽다고 느꼈지만,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와선 할미에게 설명하는 손자가 대견하여 끌어안아 주었던 일이 얼마 전이었건만, 또 임시 휴일이라니,
'쉬는 날이 이렇게 많아서 수업 일수를 어떻게 채울까?'

평생을 꽉 조인 나사처럼 여유 없이 살았던 나에게는, 학교 교육이건 행정기관의 업무건 도대체 바쁜 것이 없고
작은 일에도 허풍스러운 이곳의 정서가 어느 한 부분의 나사가 풀린 것처럼 느껴진다.
학교에서 돌아온 손자의 가방을 열어 보아도 교과서가 없는 빈 가방이며 한국의 교육과정보다 수준이 너무 낮은
수학 시험지 한 장과 아주 얇은 책 한 권 읽기가 그날의 숙제이다.
할미는 조급증이 나서 손자에게 읽힐 책을 도서실에서 더 많이 빌려오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집안에 갇혀서 손들과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겨울내 백설의 요술 궁전이 펼쳐진 뉴저지 거리엔 눈이 내리는 날엔 꼭 새벽부터 제설차 두 대가 폭음을 내며
큰 대로를 활보한다. 앞서가는 차가 소복이 내린 눈을 길옆으로 밀어내면, 뒤차가 염화칼슘을 뿌리며 따라간다.
양쪽 길가엔 산더미처럼 눈이 쌓인다. 때로는 길가로 몰아붙인 눈을 아주 무서운 맹수 같은 제설차가 쓸어서 담아갈 때도 있다. 눈덮힌 벌판에 순식간에 대로가 뚫리고 탱크 같은 제설차 두 대는 아파트 앞길로 들어선다.
이 제설차가 지나가야 아파트나 주택가의 골목길도 터널처럼 눈 속에서 검은 아스팔트 길이 뚫리는 것이다.

남편과 딸은 창가에서 제설작업 광경을 보며 대로 가에 추차한 차를 옮길 준비를 한다.
눈이 내리는 경우엔 요일마다 주차 장소가 달라진다. 평상시엔 마음 놓고 주차를 할 수 있는 장소지만,
눈이 오면 이곳은 No Parking 장소이다. 제설 작업에 거치적거림이 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이른 아침에 앞의 동 아파트 주민이(동양인) 견인차에 매달리는 승용차를 끌어내리는 황당한 모습을
우리 가족은 창문에서 내려다보며 얼마나 걱정을 하였던가?
경찰관에게 주차 위반의 딱지를 끊고, 허겁자겁 차를 옮기던 그 여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삼, 사 일을 집안에 갇힌 채 창문 밖 눈 덮힌 저택을 바라보지만, 차들만 간간이 오갈뿐 사람을 구경할 수 없다.
눈을 돌려 사방을 바라보아도 눈속에 묻힌 하얀 저택들만 하루종일 문이 닫힌채 빈집처럼 늘어서 있다.
어쩌다 우체부가 길가에 차를 주차하고 우편물을 들고 간다.
'그집 주인이 나와서 우편물을 받아갈까?'
유심히 창문 밖을 보지만, 모자를 깊숙히 뒤집어 쓴 우체부는 우편물을 놓고는 재빠르게 되돌아 나와서 급히
차에 오르는 모습만 종종 본다.
'이곳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하루의 시간을 보낼까?'
뉴저지 River Edge는 사람이 살지 않는 하얀 유령의 도시 같다.

손들과 눈속에 덮인 긴긴 겨울을 보내고 있는 노부부,
어느 날 눈썰매를 차에 싣고 집에서 가까운 Van saun park를 찾아갔다.
공원 안엔 온통 두꺼운 하얀 요를 깐 듯 눈으로 덥혀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울창한 나뭇가지만 눈 속에 꽂혀있는 듯한 아주 고요한 설국의 풍경이다.
공원 둘레에는 눈 속에 묻힌 하얀 집들이 깊은 침목에 빠져 있다.
넓은 공원을 가로지른 여러 갈레의 길만, 말끔히 눈을 치워서 가르마처럼 공원을 갈라놓았다.
한가롭게 애완견을 데리고 나와서 운동을 시키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아아, 유령의 집이 아니고 사람이 살고 있구나!'.
골든리트리버, 말라뮤트, 셰퍼드, 비글 등 조랑말처럼 큰 애완견을 몰고 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이 통통 찐 중견도 쫄랑쫄랑 주인을 따라간다. 하나같이 애완견의 주인은 비닐봉지와 집게를 가지고 다닌다.
개들은 좋아서 주인 앞을 앞질러 간다. 어떤 개는 운동이 끝났음에도 집 앞에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다,
여자 주인은 개의 목줄을 짧게 잡고 끌어도 뒷걸음치는 애완견을 이길 수 없는지 다시 목줄을 늘려가며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이 애완견들도 눈 덮인 긴 겨울이 심심하구나'

할아비는 손자 둘을 눈썰매에 태우고 눈 위를 달리고 있다. 손들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른다.
"야호!, 야호".
집에서 마음 놓고 말하지 못하는 가엾은 손들의 목소리가 하얀 백설의 Van saun park 에 울려 퍼진다.
아래층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이 어찌나 예민한지, 노부부는 손자들이 큰소리로 말하지 못하게 주의 시키는 일에
너무 지쳐있었다.
난 벤치 위에 덮인 눈을 쓸어내고 앉았다. 모자를 눌러쓰고 웅크리고 앉아서 할아비와 손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쫓는다. 겨울왕국의 요술할멈이 된 기분이다.
갑자기 내 앞에 늑대처럼 긴 털에 묻힌 말라뮤트 애완견이 어슬렁어슬렁 주인을 따라간다.
'이곳 사람들은 긴 겨울 동안 집 안에서 커다란 애완견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온 몸이 간럽고 냄새가 날 것 같다.

외국의 생활은 참 단조롭다. 특히 나이 먹은 노인들은 할 일이 없고 누구와 쉽게 어울릴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곳저곳을 쇼핑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노인들이 즐길만한 위락시설이 어디에 있을까? 누구와 어떻게 어울려 시간을 보낼까?
게을러서 나다니길 썩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집안에서 단조로운 생활을 하다 보니 무료한 겨울나기가 된다.
오직 도서관에서 대여해온 책이 유일한 소일거리의 낙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뉴저지의 어느 도서관을 가도 많지는 않지만, 한국의 도서 진열 코너가 있다,
Paramus Library와 River Edge Library를 요일 별로 가서 손자들 책과 내가 읽을 책을 한 보따리(보통 18권~20권)씩 빌려온다. 도서관에 가야만 사람을 구경할수 있다. 많은 노인이 책을 읽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시간을 소일한다.
넓은 주차장엔 차도 가득하다.
'아하!, 이들도 이렇게 겨울나기를 하고 있구나'

  독서를 좋아하는 손자들과 할미는 빌려 온 책을 읽으며 긴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손자들이 곁에 있기에,
식탁, 소파, 침대, 거실.....
노부부는 사방에서 책을 읽는 손자들을 돌보며 단조로운 생활을 극복하는 것이다.

눈 속에 파묻힌 적막의 도시 뉴저지,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있다.
머지않아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녹이는 새봄이 나를 맞이할 것이다.

                                                    2015년 3월 5일 Kimsj

  3월 5일에 눈내리는 뉴저지

뉴저지의 겨울 풍경

주응규 2014-10-16 14:19	김숙자 작가님 잘 계시는지요 건안건필하십시요 즐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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