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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0-07 08:15
ㆍIP: 118.xxx.38
슈킹 (53회)

      - 두 번째 아군과의 만남 -

  12월 11일 (화)

 출근하자마자 동인이 벽에 걸려 있는 화이트보드의 12월 일정표에 'C은행

김 차장과 저녁 7시 미팅', 'S은행 박 과장과 12시 점심약속',  'K은행 최 부장

모친 회갑연' 등으로 적어 나갔다. 그 내용은 한 주간 단위로 임의의 날짜에

3~4일 간격으로 반복적이었다.

 "현수 형, 손님 상담할 때 참고하세요."라고 동인이 한마디 뱉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현우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안다. 손님들에게 우리가 은행직원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의미로 쓴 것이다.

 '저놈은 자면서도 이 작업의 꿈을 꿀거야. 아마 나도 그 꿈속에 몇 번

나타나지 않았을까'라고 그는 생각했다.

 정각 10시가 되자 어제 전화상담한 카센터 사장 부부가 왔다. 남자는

50대 초반으로 목소리가 우렁차고 열정적이었으나 순박하고 단순해 보였다.

 그는 앉자마자 그 큰 음성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자기 가게 가까운 곳에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주유소가 새로 생겼는데 카센터 영업도 겸한다 했다.

자기는 부품 등을 도매상에서 갖고 오나 그쪽은 직접 본사에서 공급 받아

가격에서 불리하고 또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사은품을 남발하여 도저히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자동세차기가 있어 카센터 손님도 무료로 이용하게

하여 우리 가게는 더욱 힘들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래서 갈수록 손님도

줄어 1명 있던 직원도 내보내고 아내와 상의한 끝에 가게와 맞붙은 허름한

집을 사서 부수어 그 터에 세차장을 만들어 손세차를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옆집과는 전부터 잘 아는 사이고 현재 우리 사정을 알기에 땅도 시세보다

싸게 팔기로 했단다. 그런데 그동안 애들 키우며 먹고 사느라 지금 갖고 있는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했다.

 곁에서 얌전히 있던 아내가 비록 근처에 자동세차기가 있어도 손세차 손님은

따로 있어 성의껏 하면 고정 손님은 확보할 수 있다며 남편을 거들었다. 그리고

세차일은 자기가 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현우는 카센터 사장에게 등본과 인감을 3통씩 받고 3개의 은행을 지정해 주며

각 은행에서 2천만 원씩 대출이 가능할 거라고 말했다. 등본과 인감을 3통이나

받은 이유는 이 사람의 신분은 양호하여 3군데 잔고업체에 보낼 작업용으로

쓸 계획이라고 미리 동인이 사인을 주었다. 잔고업체에 보낼 서류 등을 작성케

하고 주민증과 사업자등록증 사본 등을 받아 놓았다.

 그는 역시 우렁찬 목소리의 성격만큼이나 현우의 설명에 아무런 의구심도

없이 대출만 빨리 나오게 해달라며 아내를 재촉하여 부리나케 은행으로 갔다.

 카센터 사장 부부가 나가자 동인이 정보지에 내라며 그에게 준 것은 색다른

광고 문안이었다. 거기에는 '명의대여자 구함, 고수익 보장, 30세 이상 남. 여'

등과 휴대폰번호가 적힌 단순한 내용이었다.

 "명의대여자? 이건 뭔데?"

 "돈을 찾으려면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우리가 할 수는 없지요. 여자는 돈을

찾을 거고 남자는 바지작업을 할 거예요."

 바지작업이라는 의미를 물어볼려는 찰나 노크소리가 나는 바람에 그는 얼른

입을 막았다. 들어온 사람은 오늘 11시에 방문하기로 한 덤프트럭을 운전한다는

아저씨였다. 그는 대출이 가능하다는 말에 기뻐서 어제 한잠도 못 잤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남자의 손에는 약국에서 파는 음료 한 박스가 들려 있었다. 그는 손수 뚜껑을

따서 세 사람의 자리로 가서 일일이 주고는 나머지를 직접 냉장고에 넣기까지

했다. 현우는 그런 아저씨에게 주객이 전도되어 미안하면서도 친근한 정이

갔다. 등본에는 50대 중반인데도 머리에 새치가 많아서인지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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