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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09-14 14:31
ㆍIP: 118.xxx.93
슈킹 (42회)

 동수와의 두 번째 바둑이 시작될 무렵 전화국 직원이 왔다. 직원은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처럼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는 마침 근처에 일이 잡혀 하루만에 전화가 설치되는

것이니 당신들은 운이 매우 좋은 편이라 했다. 연로한 나이에도 빠른 손놀림으로

부지런히 일을 하는 그를 보며 현우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설치가 끝나기를 기다려 현우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건네자 그는 고맙다며

눈인사를 하고는 마셨다.

 "가입자 김성수 씨가 어느 분이에요? 전화 설치를 완료했다는 확인을 받아야

하거든요."

 그는 용지 한 장을 꺼내 놓았다.

 "김 성수 씨요? 저희 직원인데 지금 외근 중이거든요. 제가 대신 해 드릴게요."

 현우가 그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서명란에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하였다. 직원은

몇 시간 후에 전화는 개통될 것이라고 하고는 가방에 작업도구를 챙겨 넣고 나갔다.

 "현수 형, 센스가 대단한데요."

 동인이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워 내밀었다.

 끝자리가 연이은 두 대의 대출광고 전화는 현우와 동수의 책상이 맞닿은 가운데

놓고, 한 대는 동인의 자리에, 나머지는 팩스에 연결하였다.

 "전화 설치와 광고도 마무리됐고 이제 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면

되겠네요. 내일과 모레는 특별한 일이 없으니 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 모두 쉬기로

하지요. 동수 형, 오늘 저녁에 어디 가서 한잔하는게 어때요?"

 조금 전 그에게 화를 냈던 것이 미안했던지 동인이 부드럽게 물었다.

 "나야 좋지. 그러면 우리 단합대회 하는 거야? 현수 너도 오늘은 무조건 가는거야."

 언제 동인에게 핀잔 받았냐는 듯 술 마시자는 말에  그는 어느새 들떠 있었다.

 "그러지 뭐. 내일 쉬니까 오늘은 술 마셔도 부담이 없을 것 같아."

 그도 조금 취하고 싶은 마음에 흔쾌히 승낙했다.

 뱃가죽과 등가죽이 키스하기 직전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재촉하는 동수에 떠밀려

그들은 사무실을 나왔다. 밖의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현우의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들은 근처의 횟집으로 갔다. 작업 준비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 기분이 좋다며

동인이 평소보다 과음하는 것 같았다. 동수가 어느정도 취하자 "아무리 내가 잘못했어도

형한테 소리를 지르면 되냐"고 아까는 섭섭했다고 동인에게 말했다. 그는 다 형을 위한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손바닥을 비비며 잘못 했다는 시늉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가운데 가끔은 동수의 응담패설도 이어졌다.

 그들이 횟집을 나왔을 때는 밤 11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동인아, 모두 기분도 좋고 단합대회이니 2차 가는 게 어때, 응?"

 그의 목소리가 애걸하는 음성으로 변하며 동인을 졸랐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대리운전을 이용해 현란한 네온사인

간판이 붙은 어느 룸살롱 앞에 도착했다.

 그들이 문을 들어서자마자 젊은 웨이터가 다가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큼직한

룸으로 안내했다. 룸살롱 안은 실내장식과 인테리어가 화려하여 한눈에 봐도 매우

고급스러운 술집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수에게는 부장님, 동인에게 실장님이라 부르며

아는 체를 하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은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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