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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09-30 15:23
ㆍIP: 121.xxx.118
슈킹 (50회)

 잔고업체에 서류를 보내기 전에 연락처를 그의 사무실에 있는 대포폰 번호로

기재한다. 귀에 익은 목소리의 동인은 빼고 현우와 동수가 받아 잔고증명

의뢰자의 역할을 대신하면 문제가 없다. 그들은 의뢰자의 인적사항이나

주변상황을 상담을 통해 잘 알고 있으므로 잔고업체의 전화를 받아도 무난히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무실에 인감 등을 맡기는 것에 불안하게 생각하는 손님에게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앞으로 손님 통장으로 거액이 입금되는데 만에

하나 손님이 마음대로 돈을 인출한다면 우리로서는 속수무책이다.

나중에 법적으로야 하겠지만 당장 자금회전이 안 되어 피해가 엄청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은 지금 받은 인감들과 각서를 보관하고 있다가 대출이 나가고

수수료를 지급하는 날 즉시 돌려주니 안심해도 된다고 한다.

 각서는 잔고업체에서 팩스로 보내준 서류 중 하나로 잔고증명을 의뢰한 손님이

만약 입급한 돈을 임의로 인출할 경우 민, 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체통장만을 확보하려는 손님에게는 잔고업체에서 보내준 열댓 장의

서류는 무의미하다. 다만 그의 사무실에서 하는 대출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심어 주기 위해 받아 놓은 것에 불과 한 것이다.

 그는 상담하면서 이런 말을 하고 서류를 받는 자신이 참으로 뻔뻔하다고 가끔

느끼곤 했다. 그러나 실제 잔고증명을 의뢰하는 사람이라면 이 서류 등을

준비하여 잔고업체에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정보를 빼내기 위해 잔고업체에

보낼 작업손님에게는 이 서류 등을 필히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은행에 갖다 온 여자는 통장 3개와 신청서, 보안카드 등을 내놓았다. 신청서의

내용을 흝어본 그가 만족한 표정으로 일어나 동인에게 건네주고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대출금은 어디에 쓰실 건데요?"

 사실 이 물음은 손님을 위해서 물은 것도 아니고 사무실과도 무관한 단지 짧은

시간의 여자와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는 의례적인 것이었다. 그는 말하고 나서야

나중에 괜히 물었음을 깨닫았다.

 그녀는 동수와 동인의 자리를 힐끗 보더니 고통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최근 아들이 심한 통증을 호소하여 급하게 병원에 갔는데 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어요.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랍니다. 불과 두어

달 전만 해도 별다른 이상이 없어 몰랐지요. 20여 년 전 남편을 잃고 집안 생계를

꾸리기 위해 새벽마다 우유배달, 아파트 청소, 파출부 등을 하며 아들과 서로

의지하며 살았어요. 그래서 지하셋방에 살면서도 이렇게 절망으로 빠진 적은

없었어요."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곧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저는 배운 게 없어 몸으로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어요. 그러나 이제 3개월 남았다는

의사의 말에 남은 시간을 아들 곁에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었어요.

그런데 최근 어느 병원의 간이식 권위자가 아직 젊으니 수술을 해보자고 권유해서

희망이 생겼어요. 수술비가 우리 형편에서는 엄청나지만 꼭 수술을 받고 싶어서

은행 등에 알아보았지만 거기서는 제가 자격미달이라 모두 퇴짜를 맡고 고민하던 중

정보지의 광고를 보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요."

 그녀는 감정이 복받치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손등으로 닦았다.

 "젊은데 어떡하다가 간암에 걸렸어요."

 반사적으로 그가 물었다. 등본을 언뜻 보니 그녀의 아들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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