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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09-28 15:20
ㆍIP: 121.xxx.25
슈킹 (49회)

 '똑 똑 똑...'

"여기가 다한컨설팅 맞지요."

 문이 빠끔이 열리며 중년의 여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문 옆의 현우가 얼른

일어나 그녀를 소파로 안내하며 동수에게 커피를 타오라고 눈짓을 했다.

밖의 매서운 날씨에 한참을 걸어왔는지 그녀의 두 볼이 붉게 얼어 있었다.

동수가 정수기의 뜨거운 물로 1회용 커피를 타서 내놓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는 이런 사채사무실이 처음인지 경계의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여자는 비록 남루한 차림이지만 깨끗하게 입으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

다소곳이 무릎 위에 올린 손등에는 그동안 험난한 세월을 살아온 듯한

인고의 주름살이 엉켜 있었다. 억지로 미소 지으려는 얼굴에 숨겨진 수심이

스쳐 지나갔다.

 "손님이 오시기 전에 저희가 거래하는 은행에 알아보니 3곳에서 각 천만

원씩 3천만 원까지 가능합니다. 얼마나 대출 받으실 건지요?

 "사실은 더 필요하지만 그만큼이라고 된다면 다 받고 싶어요."

 "전화로 간단히 말씀드렸지만 저희가 지정해 주는 은행에 가셔서 손님

명의의 통장을 만들어 오시면 여기 이 통장처럼 매일 수억의 돈을 입출금해서

실적을 쌓는 겁니다. 첫날에는 몇 억이지만 하루하루 입금액이 늘어나므로

은행에서 이 실적을 근거로 대출해 주는 거지요."

 그는 탁자 위에 있는 작업용 통장을 하나하나 보여 주었다. 그녀는 처음에

현우가 그랬던 것처럼 통장에 입금된 거액을 보고는 눈이 커지며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출이 더 빨리는 안 될까요?"

 "죄송하지만 그건 힘듭니다. 실적 대출이라 실적 쌓는 기간이 필요하거든요.

넉넉히 3주 정도는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는 최대한 시간을 길게 잡았다.

 동인이 말한 디데이는 오늘을 포함하여 16일 남았다. 만약 대출 기간을

2주나 16일 안으로 말한다면 그 이후에 손님들의 독촉을 엄청 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어쩌다 급한 성격의 손님이라면 불시에 사무실을

찾아와 자기에게 불평과 원망을 할 수도 있다.

 동인은 가능한 기간을 짧게 말해 통장 확보를 쉽게 한 후 은행 감사 등을

핑계로 연기하면 된다고 했으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고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손님들을 직접 상담한 사람은 현우이기에 그들은 자신에게

재촉하며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그들은 현우가 약속한 날에

대출금이 나올거라 생각하여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계획을 세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자에게 통장 신청 시 주의해야 할 1일 이체한도 금액, 인터넷뱅킹

신청방법과 은행의 위치 등을 자세히 일러 주었다.

 "형, 저 여자 것은 이체통장만 쓸 거예요. 업자에게 보내는 작업용이 아니니

다른 서류작성은 필요 없어요."

 여자가 나가자마자 동인이 말하는 의미를 그는 알 것 같았다. 그녀에게는

잔고업체에서 온 열 장에 가까운 서류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여자의

등본에는 본인과 아들만 등재되어 있었다.

 손님이 사무실을 방문하면 먼저 현우가 그들의  등본과 인감증명서와 주민증을

받는다. 준비서류는 대출광고에 이미 나와 있다. 곧이어 그는 손님의 등본 한

통을 동인에게 슬쩍 건넨다. 그 등본을 보고 난 동인이 손님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면 작업할 업체에 보낼 서류이고 옆으로 흔들면 이체통장만 쓸 손님으로

그들만의 사인이었다.

 동인이 등본을 보아 정상적으로 가족이 모두 등재되어 있고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을 선택해서 보내야 잔고업체에서 의심을 덜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등본에 혼자 또는 동거인으로 돼 있거나 나이가 적은 사람은 그쪽에서

사고를 염려해 까다롭게 하거나 기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여자보다는 남자의 서류를 보내야 혹시 잔고업체에서 의뢰인에게 물어볼 일이

있어 연락이 와도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사무실은 모두 남자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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