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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2-11 16:01
ㆍIP: 124.xxx.149
슈킹 (99회)

 주민증으로 본인을 확인한 현우가 그녀에게 돌려주며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한번 살폈다. 그리고 나직막히 입을 열었다.

 "명의대여에 대해 아세요?"

 "아니요. 아까 간단히 설명을 들었지만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저는 고소득을

보장한다기에 연락드린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하고 싶어요.

사실 제가 요즘 무척 어렵고 급한 사정이 있어서..."

 어느새 그녀는 조급한 목소리에서 애처로운 음성으로 변해 말끝을 흘렸다.

그러나 얼굴에 나타나는 그에 대한 경계의 빛은 아직 숨길 수가 없었다.

 그는 오늘 여자를 만나러 나오면서 상대방이 이 일을 하게 된 동기와 이유에

대해 절대 묻지 않기로 자신에게 굳게 맹세했다. 사무실에 방문한 사람처럼

대화한다면 이야기가 길어질 뿐더러 무엇보다도 이 중요한 선택의 자리에서

자신의 감정이 동요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일에 합당한 사람을 뽑는 데

차질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객관적으로 보며

냉철해져야 한다고 사무실의 거울을 보며 몇 번이나 다짐했다.

 "저희는 비자금 세탁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예들 들면 나이트클럽 수입금이나

큰손들의 자금 등을 돈세탁하는 거지요. 한 사람 명의로 거액을 찾으면

금융기관에서 자금추적을 할 수가 있거든요. 더 자세히 말하자면 돈의

추적을 어렵게 하여 되도록 세금을 적게 낸다고 보시면 되요. 만약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돈을 입금시킨 사람이 실소유자이므로 그 사람이 안 낸 세금을

납부하면 되니까 아주머니는 전혀 피해가 없어요. 단지 아주머니께서는 수고비

조금 받고 통장만 빌려 주었다고 하시면 되요."

 그의 말은 다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요?"

 그녀는 마음이 안 놓이는지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작게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

수고비라는 말에 관심이 당기는 듯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금새 변했다.

 "첫 날은 저희가 3억 5천만 원을 아주머니 통장으로 입금시킬 겁니다. 그 돈을

현찰로 찾아 저에게 갖다 주시면 끝나는 겁니다. 수고비는 현찰로 1억당 100만

원을 드립니다. 그러니까 첫 날은 3백50만 원을 받으실 겁니다. 만약 아주머니께서

성의 있고 꼼꼼하게 일을 하신다면 계속 함께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희도 일을

잘하는 분과 꾸준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파트너가 자주 바뀌면 아무래도 일처리가

원만하지 않을 수가 있거든요.

 이 일은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있고 인출하는 금액도 차츰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 일을 외부로 발설하지 않아야 합니다. 소문내는 즉시

아주머니와의 일은 중단될 것이므로 남편에게도 비밀로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실 의향이 있으시면 그때 아주머니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그는 여자의 동태를 주의 깊게 살폈다. 그녀의 형편으로는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이고 확실히 매력적인 액수가 아닐 수 없다.

 여자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엇갈리는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다보았다. 그리고는

우물쭈물 망설이면서 얼른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녀는 마음이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저, 혹시 위험한 일은 아닌가요?"

 그녀는 현우에게 건네받은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물어왔다.

 "그건 전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희가 처음하는 일도

아니고 계속 이 일을 할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사전에 만반의 대비를 해

놓아서 염려하실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주머니께서는 지금 제가 말한 수고비보다 작게 받았다고만 하시면

됩니다."

 현우가 손사래를 치며 정색하고 말했다.

 여자는 긴장된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자신의 결정에 갈등하는 빛이 역력해 보였다.

이윽고 그녀는 불안한 기색으로  주위를 살핀 다음 가까스로 입을 떼었다.

 "일은 언제 처음 있는데요?"

 "다음 주 목요일인 12월 27일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다음 일은 내년 초에 있지만

날짜는 미정입니다. 저희 일을 하실 의향이 있으시면 내일 오후 7시에 연락드릴 테니

그때 확답을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도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필요한 사람이

제한되어 있거든요. 아주머니께서 안 하신다면 다른 사람을 빨리 구해야 되서요.

그리고 저희는 적지 않은 수고비를 주므로 결코 아무에게나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주머니가 선택된 것도 행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잠바 안주머니에서 준비한 50만 원이 든 봉투를 꺼내 여자 앞으로 놓았다.

 "50만원 입니다. 만약 결심이 섰다면 이 돈으로 옷 한 벌을 장만하셨으면 합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시고 아무래도 큰돈을 찾는데 멋지게 꾸미시면 보기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절대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 돈은 그날 일하는 수고비와는

별개입니다. 그리고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못하신다면 죄송하지만 이 돈은 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지막 덧붙인 말은 현우가 넌지시 그녀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던진 말이었지만

그녀는 눈치 채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승낙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에요, 할게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은데요..."

역시 50만 원을 날린 미끼의 효과가 바로 나타난 것이다. 그는 자기의 계획대로

진행되어 가는 것에 흐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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