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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4-01-02 09:22
ㆍIP: 124.xxx.149
슈킹 (107회)

 "저 사람 잔머리 굴리고 약삭빠른 것 같은데 괜찮겠어."
 
또 동수가 못마땅하다는 식으로 그를 표현하며 물었다.

"아니야, 어쩌면 답답하고 멍청한 사람보다는 훨씬 나아. 그런 사람을 사채사무실에

보내면 주눅이 들어 작업을 못할 수가 있어. 그런데 저 사람의 형편과 사회경험으로

보아 잔고사무실에 가서 우리가 시킨 대로 잘할 사람 같아."

 "그런데 그 사람에게 전과는 왜 물어봤어?"

 "그건 이유가 있지. 전과가 있는 사람은 두 가지 습성이 있다고 봐. 다시 교도소에

가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과 그 반대의 경우지. 아무래도 전과가 없는 사람이 그곳에

가는 걸 더 겁내고 무서워하여 엉뚱한 생각을 가질 확률이 적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

그런데 이것은 단지 내 생각일 뿐이야. 작업이 끝나면 저 사람은 분명히 조사를 받을

텐데 그때 전과가 없으므로 그의 진술이 신빙성을 더 갖게 되겠지. 우리는 그가

조사를 받을 때 이렇게 하라고 미리 고육시켜 수사에 혼선을 줄 필요가 있어."

 "빈틈없이 완벽한 시나리오야."

 그의 말이 끝나자 동수가 감탄의 함성을 지르며 팔을 뻗어 맞은편에 있는 그의

손바닥에다 하이 파이브를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2억의 배당만큼 사내가 당연히 징역을 살 거라는 데는 누구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변수가 생길지는 그들 모두 예측지 못했다.

 단 현우만 제외하고 말이다.

       
             - 작업준비 끝 -


 12월 21일 (금)

 오전에 마지막으로 서류 접수한 서울과 한양금융의 서류가 도착하였다. 어제를

끝으로 온 대양의 서류는 예상대로 비번과 입금은행이 변하지 않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서울금융의 서류도 마찬가지로 비번이 같았다.

 한양은 바지 작업을 할 것이므로 비번만 알아내면 되나 경험이 있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조금 전에 도착한 한양의 서류는 두 번째 보낸 것이면서 동시에 마지막으로

비번을 확인한 서류였다. 첫 번째 손님을 보냈을 때 비번이 1718이었고 은행은

J은행이었다. 오늘 두 번째 도착한 서류의 비번과 은행도 똑같았다.

 J은행은 한양금융과 같은 건물에 입주한 은행이었다.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은행을 거래함으로써 업무가 수월하다는 이유가 있겠지만 어찌됐건 현우의 입장에서는

대양금융처럼 골머리를 썩지 않고 작업을 하게 된 셈이다.

 처음에 1718이라는 비번이 왔을 때 동인이 다음에도 경험상 같은 번호일 거라고

했으나 혹시 모르니 한번만 더 보내자고 했던 것인데 역시 그의 말이 맞았다. 한양은

잔고의뢰인이 직접 사무실을 방문해야 하므로 그쪽에서 안심하여 비번을 자주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이유였다.

 한양의 비번을 알아내기 위해 손님 중 고분고분한 사람을 골라 수수료와 함께 그

사무실로 보냈던 것이다. 그 손님들에게는 잔고증명 해주는 전주가 미국에 있는 자녀를

만나기 위해 며칠 여행을 갔는데 전주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대출기간이 그만큼

늦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양금융에 가서 잔고증명을 해오면 통장에 실적이 그때부터

쌓이므로 대출기간을 더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대출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보통 대출이 정말 나오는가, 얼마나 빨리 받을 수

있냐에 모든 관심이 집중돼 있다. 수억이 입출금된 통장 수십 개를 보여주면서 상담하면

그들은 사무실에서 시키는 일은 거의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작은 대출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대부분 무지하다는 것이다.

 점심을 밖에서 먹고 들어온 후 동인이 회의를 소집했다. 금요일 오후라 사무실을 올

예약 손님이 없었다.

 탁자를 가운데 두고 그를 마주 보며 소파로 둘러앉았다. 동인이 비장한 음성으로 입을

떼었다.

 "그동안 형들 고생했어요. 오전을 마지막으로 작업할 4곳의 잔고업체 정보파악이 모두

끝났어요. 이제 실제적으로 작업할 시간은 오늘과 월요일밖에 없어요. 고려금융부터

작업과정을 하나씩 검토해 보고 빠진거나 문제점이 있으면 다시 확인하기로 하지요.

 현수 형, 디데이 때 보낼 6명의 손님 서류는 완벽하게 준비되었지요?"

 동인이 디데이 때 작업할 서류는 중요하므로 불안한 동수보다는 꼼꼼한 그에게 맡긴

것이다. 현우는 사무실에서 보낼 것과 개인손님으로 접수할 서류들을 업체별도 다시

일일이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 서류들은 최근에 받은 것으로 아직 손님에게 돌려주지

않고 사무실에서 갖고 있어도 여유가 있었다.

 하나하나 서류 등을 정리하던 그의 눈에 검정색으로 코팅된 비닐 안에 있는 보안카드가

눈에 띄었다. 순간 현우는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그는

맥이 탁 풀리며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 그것은 다름아닌 돈을 이체할 때 보안카드에 있는

번호를 필수적으로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안카드의 숫자는 검은색의 코팅된

비닐로 씌어져 전혀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보안카드는 모두 잔고업체에 보내야 하지 않는가!

 평소에는 통장 사이에 끼워 넣고 잔고업체에 보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작업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동인이 이것을 잊고 있었다는 게 아무래도

믿기지 않았다.

 "동인아, 큰일 났어. 우리가 보안카드를 잊고 있었어. 보안카드를 전부 잔고업체에 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이체하지?"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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