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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2-31 14:23
ㆍIP: 124.xxx.149
슈킹 (106회)

 "비록 제가 감옥을 가더라도 자식들이 하고픈 공부를 마칠 수만 있다면 저는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만약 자식들이 학비 때문에 자기들의 꿈을 포기하거나 부모를

원망한다면 아마 저는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게 될 겁니다."

 그의 사정이 이러한 만큼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저는 각오하고 왔습니다. 그러니 편하게 제가 할 일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요."

 생각 외로 사내의 뜻이 확고하게 나오자 오히려 동인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동인이 소파에 기댄 등을 떼어 가슴을 탁자 앞으로 당기며 가만히 입을 열었다.

 "혹시 잔고증명이라고 아십니까?"

 "예, 뭔가 입찰 받을 때 자금 여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저희는 아저씨를 잔고증명해 주는 사채사무실로 보내어 아저씨 명의로

잔고증명을 의뢰할 겁니다. 그러면 사채업자가 아저씨 명의의 통장으로 돈을 입금할

것이고 우리는 그 돈을 빼낼 계획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그때그때 알려줄 것이니

거기에 따르시기만 하면 됩니다."

 "잔고증명 금액이 얼마인데요?"

 "10억입니다."

 "예!"

 그는 깜짝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잠깐의 침묵이 마치 오랜 시간처럼 흘렀다. 이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사내였다.

 "그러면 저에게 1억을 더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예?"

 이번에는 동인이 놀라서 큰 키의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갑작스런 사내의 대담한

행동에 그는 잠깐 얼빠진 듯 멍했다. 동인의 얼굴에 쓰디쓴 미소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몇 년을 살지 모르는데 2억의 보상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협의 여지가 없는 칼 같은 말투였다. 처음에 사내는 1억도 감지덕지 하는 것 같더니

작업금액이 10억이라고 듣고는 1억을 더 요구한 것이다. 이 일에 자기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벌써 파악하고 자기 몫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이 사내는 동인을 만난 후 가족을 위해 희생하리라 결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목돈만 생긴다면 교도소까지도 갈 각오를 한 사내의 처지로서는 일의 대가를 최대한

받아 내는 것은 현명하고 당연한 것이라 현우는 생각했다.

 '스스로 감옥을 선택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가족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려는 비쩍 마른 이 사내에게 현우는 불현듯 진한 연민의

정이 일었다.

 "좋습니다. 2억을 드리겠습니다."

 동인이 결심한 듯 경쾌하게 말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의 대답이었다. 디데이는 며칠 안 남았는데

마땅한 바지가 없어 그는 겉으로 표현은 안 하고 있었지만 조바심을 내고 있던 차였다.

 "언제 일이 시작됩니까?"

 "다음 주 수요일인 26일 입니다. 그 전에 준비할 일이 있으니 저를 몇 번 만나셔야 할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여기 약소하지만 50만 원 넣었습니다. 저렴한 양복 한 벌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래도 잔고사무실에 가셔야 하니까요."

 동인이 봉투에 만 원권으로 50만원을 넣어 내놓았다. 그것을 보고 사내는 눈이

위둥그레졌다. 그는 머뭇거리다 돈을 챙겨 잠바 안주머니에 넣고 동인과 함께 사무실을

나갔다

 조금 후에 들어온 동인이 소파에 앉자마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저 바지한테 정말 2억이나 줄려고 그래?"

 동수가 수고비를 너무 많이 주는 것이 아니랴는 볼멘소리를 냈다.

 "응, 준다고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어쩔 수 없잖아. 그러면 형은 좋은 수가 있어?"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상대가 민망할 정도로 쌀쌀하게 말했다. 동인도 내심 아깝고 불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동수 형, 저 사람에게 그 돈 주는 거 아까워하지 말아. 형,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큰 것을

잃는다'는 한자성어가 뭔지 알아?"

 뜬금없는 질문에 그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지었다.

 "소탐대실이지. 만약 저 사람의 요구를 묵살하고 일을 진행하다 어는 순간 자기가 받는

수고비가 적다고 느껴 10억을 다 챙기면 어떡할 건데? 저 사람은 자기가 그 돈을 전부

가로채도 우리가 신고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리어 잠수 탈 거라고 생각할 걸. 물론 자기

뜻대로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내가 보기엔 영리하고 대포가 있는 사람이야. 특히 저

사람은 최후에 감옥까지도 감수할 정도이므로 그가 요구하는 수당을 주고 안전하게 가는 게

우리에게도 유리한 거지. 그러니 절대 아까워하거나 안타깝게 생각하지 말아."

 그의 설명이 이해는 가나 그래도 억울하다는 듯 동수가 툭 튀어나온 입술을 삐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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