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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4-01-30 06:47
ㆍIP: 124.xxx.149
슈킹 (117회)

 현우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마치 자신이 도망자가 된 것처럼 초조하여

목이 타들어 갔다. 그는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그녀의 문자를 기다렸다.

20여 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녀에게 무슨 사고가

일어난 것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는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소름끼치는 전율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

 “나, 화장실에 좀 갖다 올게.”

 도저히 불안하여 참을 수 없었던 그가 떨리는 음성을 감추고 차에서 나왔다.

 휴대폰 버튼을 누르는 그의 손끝이 알콜 중독자처럼 흔들렸다. 그런데 언제

그런 위급한 일이 있었냐는 듯 그녀는 은행 직원을 멋지게 따돌리고 임무를

완수했다며 명랑한 소리로 보고했다. 그 말에 그는 취기에서 깨어난 듯 갑자기

시야가 탁 트여 보였다.

 그는 겁에 질려 은행 문을 뛰쳐나오는 그녀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은행에 들어선 그녀는 출금 청구서에 현금 1억 1천만 원, 수표 1천만 원권

24장을 적고 통장과 함께 창구에 내밀었다. 앳된 창구 여직원이 그녀가

거액을 인출하자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기다리는 시간에 자기도

모르게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곁눈질로 주위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 여자의 행동을 창구 직원 뒤에 앉아 있던 남자 차장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차장이 일어나더니 창구 직원 가까이 가서는 인출내역을

보았다.

 차장은 오늘 현금으로 3억 5천만 원이 입금되었는데 한꺼번에 모두 찾는 것이

여자의 행색으로 보아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마 은행

근무 경력 20여 년의 예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돈을 지급정지할

정당한 사유가 아직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으니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

줄 수밖에 없다.

 이제 차장은 지켜보는 눈빛이 아니라 감시의 눈초리로 바뀌었다. 그리고

돈을 찾아 갖고 나가는 그녀의 뒤를 미행했을 것이다. 그 차장은 꼭 어디까지

따라가야겠다는 계획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는 수사권이 없을 뿐더러

단지 직감에 의존하여 행동에 옮긴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우가 기진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돌아왔을 때 차 안에는 여전히 무거운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동수가 담뱃불을 비벼 끄면서 이 침묵을 깼다.

 “동인아, 지금 이 마당에 바지에게 2억을 다 줄 거야?”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야. 동수 형은 이따가 바지 만나서 10억

작업이 절반만 성공했다고 말해. 그래서 1억밖에는 줄 수 없다고 해. 그는

자기 것만 한 건인 줄 알고 있으니까 일체의 다른 말은 하지 말고.“

 동인이 팔짱을 끼고 차 정면을 응시했다. 바지에게 1억만 주겠다는 그의

결심이 굳은 것을 보고 현우는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동인은 눈을 스르를 감으면서 담배 연기를 깊이 들여마셨다가 후우하고

내뿜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그의 얼굴에 경련이 스쳐 지나는 것을 본 현우는 그가 속으로 울부짖고

있다고 느꼈다. 조금 후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평정을 되찾은 듯 담담한

말투로 꺼냈다.

 “현수 형, 우리 다시 한 번 하면 안 될까요? 약속한 대로 마지막으로

생각했었는데 형도 알다시피 작업이 제대로 안 되어서...“

 그가 힘없는 말끝을 흐렸다. 마치 현우의 선처를 바라듯 그의 음성은

애처로웠다. 그는 현우의 승낙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용기를 내어 말한 것이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난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선우는 대답하기 실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입술을 한번 질근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난 이제 안 할 거야. 네 말대로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야. 그걸 알면서 또

한다는 것은 어리석다고 봐. 너희도 여기서 그만두었으면 좋겠어. 물론 결정은

너희가 하겠지만 난 이 시간 이후로 빠지겠어. 그리고 나를 냉정하다고 생각 안

했으면 해. 네가 분명히 성공 여부를 떠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약속했으니

입장 곤란하게 더 이상 나를 붙잡지 않길 바래. 부탁이야.“

 그의 목소리는 차가우면서 단호했다.

 현우의 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삭풍보다 더

매서운 바람이 차 안을 한동안 휘감았다.

 동인의 눈 사인을 받은 동수가 차 밖으로 나갔다 돌아왔다.

 “현수 형, 3천만 원이에요. 이것밖에 주지 못해 미안해요. 형이 우리 사정을

잘 아니까 더 이상 말은 안 할게요.“

 현우는 숨이 컥 막혔다. 바로 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 계산기가 돌아가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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