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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2-25 10:36
ㆍIP: 124.xxx.149
슈킹 (104회)

 두 번째는 거래가 전혀 없던 새 통장으로 2억이라는 거액을 한 번에 현찰로 찾는다는

것은 은행에 의심을 받을 소지가 있다. 그것도 잔액을 0원으로 남기고 말이다. 돈을

인출하는 사람은 각기 다르지만 하루에 현찰로 2억씩 두 번과 1억이 빠져나간다는 건

은행에서 본다면 매우 드문 일일 것이다. 그의 방식대로라면 예상치 못한 은행의 신고나

미행 등에 철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

 사무실 밖에서 몇 번의 기침소리와 함께 노크소리가 났다. 들어온 사람은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노인과 한쪽 다리를 저는 중년의 사내였다.

 동인은 손님을 만나러 나간다며 그를 향해 머리를 흔들면서 나갔다. 이 사인은 작업서류로

받지 말라는 신호였다.

 비록 노인은 후줄근한 양복에 유행 지난 넥타이를 맨 주름진 얼굴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인자하고 평화로웠다. 함께 온 사내는 떠듬거리는 말을 할 때마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원하시는 대출금액이 얼마세요?"

 노인에게 그가 물었다.

 "재봉틀 사고 작업장 공사하려면 3천만 원 정도 들 거예요."

 노인의 발음은 생각보다 또렷했고 정확했다.

 "재봉틀을 사다니요?"

 재봉틀이라는 생소한 말에 그가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우리는 지체장애인 자립작업장이 있는 파랑새집에 있어요."

 장애가 있는 사내가 경직된 얼굴의 근육을 움직이며 힘들게 말했다.

 "이 친구가 말하는 파랑새집은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로 인한 차별로 자립하지

못하는 이들이 일을 하며 희망을 키우는 장애인들의 직장이자 보금자리입니다. 이들은 모두

한두 가지 장애를 갖고 있지요.

 안면에 큰 화상을 입고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말을 못하는 장애인도 있어요.

또 뇌경변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과 후천적인 지체장애로

직장을 잃은 사람도 있지요. 대부분은 40~60대로 모두를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사회로부터

차별 받고 소외당한 아픔만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경험이지요."

 노인은 한참 막내아들뻘인 그에게 말끝마다 꼬박꼬박 존칭을 쓰며 부드럽고 차근하게 말했다.

 "파랑새집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데요?"

 조심스럽게 그가 물었다.

 "이곳에서는 20여 명이 성직자의 의류와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료용 포와 환자복 등을

만들고 있지요. 언뜻 단순한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생산품이지만 물품 하나하나에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이들의 의지가 배어 있어요."

 여전히 차분하고 교양 섞인 음성이었다. 그때 사내가 끼어들어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몸이 불편해 작업이 빠르지 않지만 다른 회사처럼 재촉하거나 차별이 없고 모든 일을

장애인에게 맞춰 배려해 주셔서 만족해요. 그래서 여기 계신 아버지면서 다니엘 시설장님께

늘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노인이 자기들을 가족처럼 대해 주어 일을 하기에도 더할 나위없이 기쁘고 즐겁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노인을 다니엘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시설장은 직책이고 다니엘은 세레명으로 아마도

노인은 천주교 신자인 것 같았다.

 "저희는 지금 단독주택 지하에 작업장이 있어 장애인보호법상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시설을 갖춰야 하지만 공사할 여력이 없어요. 남들은 '얼마나 어려운

시설이 많은데 그래도 여기는 자립장이고 돈도 벌지 않느냐'라는 말에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아요."

 노인이 신부나 수도사가 아닌 평신도로서 시설을 맡다 보니 극히 일부 신자들은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운영하는 곳에 봉사하러 갈 필요가 있냐는 이야기까지도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작업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데 이런 편견 섞인 말을 들을 때마다 함께

있는 장애인들에 미안한 심정이라고 했다.

 "이런 어려움으로 파랑새집은 한때 문을 닫기도 했지만 제가 맡아 다시 문을 연 후에는

종교계의 도움과 인맥을 활용하여 천주교와 몇 개의 병원에 고정적으로 납품하는 길이 열렸지요.

장애인들이 생산하는 물품이라고 판로가 보장된 것은 아니에요. 그렇기에 자동화 설비로 대량

생산하는 동종업체와 어쩔 수 없이 경쟁해야 하지요.

 저희 파랑새집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기에 열 개를 만들 시간에 3, 4개밖에 생산할 수 없지만

현실은 열 개를 만들어 내라고 해요. 지금의 낙후된 작업환경과 장애로 인한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작업장의 편의시설 공사와 노후화된 재봉틀을 바꾸는 게 시급하지요.

 이 물품들은 단가도 낮고 작업속도도 느려 큰 수익을 얻을 수 없는 형편이에요. 그러나 이들에게

노동의 즐거움과 더불어 장애를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인생의 황혼기에 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고자 하는 노인의 소신있는 음성이었다.
이름아이콘 주응규
2013-12-28 20:00
회원사진 		이인철 작가님 시간날 때 틈틈히 읽어 가겠습니다
몇일 남지 않은 올 연말 행복으로 마무리 하시고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주십시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이름아이콘 이인철
2013-12-29 07:16
회원사진 		《Re》주응규 님 ,
관심과 격려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낍니다.
주 시인님께서도 2013년을 멋지게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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