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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4-01-11 13:26
ㆍIP: 124.xxx.149
슈킹 (111회)

 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입에서는 절로 탄성이 흘러 나왔다. 동수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동인이 두 사람을 올려다보며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때의 시간은 3시 10분이었다.

 4시가 되면 사무실로 한 사람이 오게 되어 있다. 바지를 만나고 온 동수도

같은 시각에 밖에서 손님 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 두 명은 대출손님으로

대양금융 작업에 투입할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 작업에 이용되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른다. 대양의

작업 방법은 서울, 한양금융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시간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초 싸움을 해야 한다. 대양은 입금은행이면서 주거래은행이

W은행이다. 이 은행을 알아내기 위해 가장 고생했다. 동인이 포기하려는 것을

겨우 설득하여 마지막에 5억이라는 고액과 개인손님으로 잔고를 넣어 알아낸

은행이다. 이 두 명은 대출손님 중 순진한 사람들로 운전면허증을 소지한

사람이다.

 월요일에 미리 그들에게 전화하여 지금까지 W은행에 실적을 쌓아가던 통장을

실수로 분실했다고 말해 놓았다. 재발급을 빨리 해야 실적을 쌓을 수 있고

어쩌면 이번 달 안으로 대출이 가능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 손님이

그 시간에 달려올 것이 뻔하므로 일부러 은행마감 시간 후에 전화했다. 그리고

오늘 4시에 약속을 잡은 것이다.

 한 사람은 사무실에서 만나 길 건너편 W은행에서 현우가 작업하고 한 사람은

다른 W은행에서 동수와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동수는 조금 전에 사무실에서

먼저 나갔다. 대양금융이 돈을 입금하기 전에 잔고의뢰인 명의의 인터넷 뱅킹된

W은행 통장 발급 여부를 확인할 가능성은 100%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의 확인은 대양으로서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W은행 입장으로서 대양이

VIP 고객이므로 그 정도 편의는 충분히 봐줄 것이기 때문이다.

 저번에 동인이 대양의 입금은행을 확인하려고 임의로 손님이 거래하는

은행이라고 적어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대양에서 그의 사무실로 혼란을

주려고 입금은행을 돌렸었다. 그러나 실제로 잔고 의뢰인 명의의 인터넷

뱅킹된 W은행의 통장이 있었다면 아마도 보낸 서류가 의심과 함께 돌아왔을

거라는 것이 현우의 판단이다. 만약 그런 통장이 발급된 것을 안다면 대양은

절대 입금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대양이 W은행으로 입금한다는 것을 알고서 동인이 한양금융 작업처럼 돈이

입금되기 전에 인터넷 뱅킹된 통장을 만들어 놓자는 것을 그는 반대했다. 아니

극구 말렸었다. 그의 계획을 들은 동인이 그 방법은 시간이 부족하여 힘들다고

완강히 머리를 내저었었다. 그러나 그는 강행으로 밀어붙였다.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현우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작업시간이 빠듯하지만 돈이 입금된 후로 변경한 것이다. 이것은 현우의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만약 동인의 방법대로라면 넉넉하게 작업을 할 수

있지만 현재는 촉각을 다투며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그는 동인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었다. 그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가 경계하는 분위기여서 생각을 바꿨다.

물론 선의의 경계란 것을 안다. 그러다가 현우는 다시 생각을 고쳐 먹었다.

동인이 실패하는 것이 곧 자기가 실패하는 것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은행 안으로 들어가는 작업손님의 뒷모습을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는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담배에 손이 갔다. 시계를 보니 4시 5분이었다. 지금부터는 돌아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분 단위로 나누어야 한다.

대기하는 1분 1초가 너무나 길며 고통스러웠다.

 4시 30분에 은행영업이 끝나지만 이것은 은행 정문을 닫고 후문은

열려있다. 그리고 마감시간 전에 들어와 안에서 대기하는 고객들의 일은

늦어도 모두 처리해 준다.

 번호표를 부르자 작업손님이 창구 앞으로 다가가 운전면허증으로 인터넷

뱅킹된 통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얼른 은행을 나와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그에게 통장과신청서 등을 주고 다시 은행으로 들어갔다. 그때의 시간이 4시

22분이었다.

 통장을 받아 든 현우가 급히 사무실로 뛰었다. 이미 W은행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던 동인이 신청서에 기재된 내용으로 방금 전 대양에서 작업손님의 명의로

만든 통장으로 들어갔다. 벌써 5억이 입금되어 있었다.

 지금은 놀라거나 감격할 겨를이 없다. 현우는 그 통장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지금 은행 안에 있는 작업손님에게 불러주었다. 시간은 4시 28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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